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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민영화 논란 속 한국철도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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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1월 11일 01시 50분 27초
붙어보자, 김대중 대 노동자 ‘최후의 격전’
[르포] 민영화 논란 속 한국철도
송은정『매일노동뉴스』기자


올해 마지막 정기국회 일정을 하루 남긴 지난 12월 7일, 국회의사당이 코앞에 보이는 여의도 국민은행 앞. 24시간 근무를 마친 4천여 명의 철도노동자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팔을 머리 위로 치켜올리며 “국민철도 팔아먹는 철도민영화 박살내자”고 외치고 있었다. 그 바로 앞, 무대 위에서는 총파업을 결의하며 삭발을 하고 있는 지방본부 위원장들의 맨머리 위를 여의도의 칼날 같은 바람이 싸늘하게 스쳐갔다. 김재길 위원장 등 쟁의대책위원 27명은 스스로 손가락을 칼로 베어, 흐르는 피로 신문지 크기의 흰 천 위에 ‘총파업’이라는 글씨를 새기고 있었다. 철도노조는 이날 피로 새긴 ‘총파업’ 깃발을 앞세우고 여의도에서 영등포역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모두가 “철도민영화법안을 국회에 상정할 경우 즉각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정부쪽에 보내기 위한 움직임들이었다.
며칠 후 용산역 근처에 있는 철도노조 사무실을 방문하기 위해 기자는 철도청이 운영하는 국철구간의 왕십리역에서 전철을 기다렸다. 쭉 뻗어 있는 선로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지난 5월, 54년 만에 처음으로 치러진 직선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김재길 위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당시 김 위원장은 당선 인터뷰에서 “철도노동자의 뼈와 살을 밟고 발전해온 철도를 재벌과 외국자본에게 넘길 순 없다”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그 ‘비장함’은 실천으로 옮겨져 있었다. “인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요금인상·민영화 반대’ 스티커를 붙인 열차가 서서히 들어서고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차량에 스티커를 붙이려는 조합원들과 이를 막는 관리자들 사이에서 승강이가 벌어지며, 매일 붙이고 매일 떼내는, ‘스티커 붙이기 투쟁’이 한창인 때다. 그러고 보니 그 차량 한쪽에도 스티커를 뜯어낸 흔적이 남아 있다.

용산역에 내려 철도노조까지 가는 길은 항상 마음이 편하질 않다. IMF 이후 고달픈 생활의 상징처럼 돼버린 노숙자들을 스쳐지나가야 하고, 타락한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보이는 홍등가가 보일 때쯤 철도노조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3주 동안 매주 일요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철도노조 간부들이 오랜만에 집회 없는 일요일을 맞아 대부분 잠깐 집에 들렀다 오는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 있는 가운데 지방에서 올라온 몇몇 간부들은 다음 날 있을 ‘쟁의복(투쟁조끼) 착용근무’ 상태를 점검하느라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손가락에 남은 두 군데 ‘상처’

54년 만의 직선제로 당선된 김재길 집행부는 달라도 뭐가 달라보였다. 신임 노조집행부는 당선 이후 전 집행부 때 호화로운 소파가 놓여 있던 위원장실을 회의실로 바꾸고, 호화로운 소파는 조합원 경매를 통해 팔아 없앴다. 그런데 이제 그 회의실은 스티로폼을 깐 밤샘 농성장이 돼 있었다. 이명식 사무처장(41)이 그 농성장 스티로폼 위에서 이불도 덥지 않고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중앙쟁의대책위원회의 상황실장이기도 한 이명식 사무처장은 ‘총파업’ 혈서로 손에 두 군데 상처를 입게 됐다.
다른 한 군데 상처는 철도노동자들이 놓여 있는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처장이 수색선로반에서 근무하던 지난 96년 7월, 당시 장마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이 처장은 기차운행이 중단되지 않도록 구내에 있는 다리에 물이 차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새벽 비상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선로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기차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손전등만으로 다리 위 선로를 살펴야 했던 당시 부소장과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약혼녀까지 있던 수색선로반 막내가 열차에 충돌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처장은 두 사람의 장례식이 끝나고 사고가 발생한 그 근처에는 눈도 돌리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이 처장은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를 잃은 직원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이, 관리자가 사고현장에서의 업무를 지시하는 데 그만 분노가 폭발해 사무실 창문 유리창을 맨주먹으로 내려치고 말았다. 치료하고 싶은 맘도 없었기 때문에 이때 내버려둔 손등 위의 상처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번에 혈서를 쓰다가 생긴 손가락 상처는 또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보선지부에서 노조 사무실로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쟁의복 착용근무’에서 보선원들이 안전을 위한 야광작업복 위에 쟁의복을 입어야 할지, 쟁의복 위에 작업복을 입어야 할지 지침을 요구하고 있었다. 보선원들에게 야광작업복은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올해 철도노동자는 현장에서, 또는 과로로 인한 지병악화로 인해 2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선로 위에서 야광작업복 하나에 의지해 작업하고 있는 보선원들이 가장 많았다. 97년부터 추진된 인력감축이 하위직 기능인력을 중심으로 이뤄져 약 7천 명이 철도청을 떠나야 했고, 그로 인해 남은 사람들은 ‘열차감시원’도 없이 현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노동자들은 ‘산재사망·사고’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선원들은 야광작업복 위에 쟁의복을 입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서재열 노조 시설분과국장은 “어차피 입는데, 작업복 속에 입으면 열차 안에서 보선원을 보게 되는 기관사 등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보선지부는 투쟁에 참여하지 않는 걸로 알까봐 우려하는 것”이라고 보선지부쪽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노조 집행부가 조합원의 안전보다 투쟁을 우선할 수는 없는 일. 작업복 속에 쟁의복을 입으라는 지침이 결정됐다.


계속되는 산재사망

기자는 철도노조를 방문하기 하루 전날에 또 한 명의 철도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자도 할 말을 잃었다. 『매일노동뉴스』에서 철도노동자 산재사망 기사만 벌써 몇 번을 썼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또 사망기사를 써야 하는가?

사건의 진위를 알아보니, 지난 12월 7일 오전 10시경 전라선 남원-주생 간 곡선구간의 화차 위에서 침목을 내리는 작업을 하던 이해근씨(44)가 침목과 함께 떨어지며 침목에 복부를 맞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복강내출혈로 그 다음날 사망한 것이었다. 주생 부역장과 금지선로반 선임장이 합의, 열차 차단시간 30분을 얻어 침목 1백 정을 내리던 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보선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이종렬 노조 홍보국장은 “선로작업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한다. 열차운행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짧은 차단시간을 얻어 번갯불에 콩 볶듯 급하게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전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5명이 하던 이 일이 인력감축 전에는 보통 7,8명이 하던 일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날 사망사고는 영등포지역 관리역의 신윤성씨(53)가 24시간 철야근무 뒤에 “과로로 인한 위출혈”로 사망한 지 11일 만에 발생한 일이라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종렬 국장은 “현재 철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망사고는 인력감축으로 인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덧붙여 이 국장은 “인력부족으로 현장에선 안전교육도, 안전수칙도 지켜지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철도노동자들이 왜 “철도가 멈춰야 철도노동자들이 살고, 철도가 산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서울차량지부 엄길용 지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민영화 문제는 곧 고용문제, 생존권 문제와 직결된다.”

그렇다. 현재 상황은 철도노동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민영화’의 폭풍까지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진행된 수천 명 인력감축도 민영화의 전 단계이며, 민영화될 경우 인력감축은 더 강화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철도노동자들의 ‘민영화 반대’ 목소리에 이런저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지만, 노동하는 사람은 안다. 몸으로, 피부로 느끼는 뭔가가 있다. 즉,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잘못 돌아간다는 판단이 들 경우 당연히 그들은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은 손해를 좀 볼 수 있지만, 지금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자기가 계속 이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특히 철도에선 작은 실수 하나가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민영화법안 국회상정시 곧바로 ‘총파업’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철도노동자들은 민영화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에 대해서 한 마디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철도노조가 대국민 선전용으로 만든 포스터 중에 일본영화 ‘철도원’의 한 장면이 들어가 있다. 그 영화는 민영화된 일본 철도회사가 외진 산골마을의 역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철도원으로 평생을 살아온 주인공이 역사 내에서 쓰러지며 쓸쓸하게 끝나는 영화다. 철도노조는 이 포스터에서 민영화된 철도회사는 수익이 나지 않는 역들을 폐쇄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그럼 또다시 대량해고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구나 최근 영국의 민영 철도회사가 파산했다는 사실은 철도노동자들에게 민영화 반대논리에 확신을 심어준 사건이었다. 영국 철도민영화 실패의 핵심은 철도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유지보수와 건설 부문이다. 민영회사는 이전에 정비된 시설을 이용만 했을 뿐 미래를 위한 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를 위한 보수도 하지 않았다.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탈선사고까지 났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정부가 민영화의 모범사례로 제시해 왔던 영국의 철도민영화가 실패한 마당에 정부의 논리를 누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하기야 캘리포니아에서 지난 3월 민영화된 전력회사가 전력공급을 중단해 ‘전력대란’이 일어났을 때도 전력민영화를 위한 발전부문 분할매각 일정을 추진하던 우리 정부였다.

‘다행히’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법안이 처리되지 않았다. 여야는 아직까지 당론을 확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민주당 한광옥 대표는 철도노조 집행부에게 “철도사업의 민영화 관련법안의 타당성에 대한 분석보고서가 내년 2월께 나오는 만큼 이를 충분히 검토한 뒤 (민영화 여부를) 결정해 처리하겠다”고 말해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에는 처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같은 날 기획예산처는 철도산업이 지금처럼 계속 운영될 경우 경영적자가 누적돼 부채가 2020년에는 28조 원에 달할 것이라며, 철도민영화를 계속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기획예산처는 내년 7월 철도산업의 운영과 시설을 분리해 시설부문은 공단화해 국가가 관리하고, 운영부문은 2003년 7월 정부출자회사를 세운 후 점진적으로 민영화할 경우 재정에서 약 1조 원만 부담하면 구조개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민영화 이후 요금인상, 적자노선 폐지 등과 같은 철도민영화에 따른 문제제기에 대해 대책마련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철도노조 내부에선 “노조가 너무 국회일정에 끌려다니는 거 아니냐. 정부가 민영화 계획을 전면 철회할 가능성은 없는 만큼 ‘공공철도를 위한 정부지원 강화’를 요구하며 투쟁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철도노조는 지난 12일 민주당 한광옥 대표에게도 “현재 철도청의 적자는 저가운임 정책의 결과이지, 경영부실에 의한 것이 아니며 비민영 또는 공영 철도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했다.

여야 건설교통위원회 의원들과 정치인, 기자들을 만나 민영화 반대논리를 설득하는 작업에 집중해온 철도노조는 지난 12월 13일부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사전조정회의에서 합의한 대로 철도청과 교섭을 벌이고 있다. 이종렬 홍보국장은 “이번 국회에 민영화 법안이 상정되지 않는다 해도 특별단체교섭에서 ‘민영화 철회’ 요구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특별단체교섭이 결렬될 경우 총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법안상정 여부와 상관없이 ‘민영화’에 대한 화두는 계속 가지고 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쪽의 한 관계자는 “연말연시와 설이라는 시기상의 문제가 있어 철도노조가 총파업에까지 들어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서울차량지부 엄길용 지부장도 “현재 현장 분위기는 고조돼 있지만 상황이 오래 지속된다면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고조되고 있는 투쟁 분위기에 특별히 ‘브레이크’를 걸 만한 이유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철도노조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철도노조의 ‘특수한’ 위치

철도노조의 특별단체교섭 요구안에는 민영화 철회와 근로조건 개선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해고자 복직요구’가 그것이다. 김재길 집행부에서 해고자들은 ‘민주노조를 건설하게 한 힘’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88년, 94년 현장조직의 힘으로 파업을 주도했던 이들은 10년 가까이 복직투쟁을 펼치면서 직선제 쟁취투쟁 등을 노동자들과 함께 전개해 왔다. 현재 집행부 주도의 강력한 투쟁이 가능하도록 터를 닦았던 사람들인 것이다. 철도해고노동자회는 대전 철도청 앞에서 80회가 넘는 집회를 연일 계속하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기관차승무원 결의대회. 후배 기관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동자 한 사람이 삭발을 하고 있었다. 94년 파업 당시 전기협 부산지역비대위 위원장을 맡았던 철도해고자 김운철씨(53)였다. 머리를 깎아주던 부산기관차지부 추덕호 지부장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불혹을 넘긴 노동자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복직투쟁 8년째, 이제 정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김운철씨가 삭발로 복직투쟁을 다짐했다. 그리고 이날 12명의 해고자들이 함께 삭발을 감행했다.

김운철씨와 같이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해고자들의 경우 이제 복직만으로 8년간의 시간을 보상받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억울한 일이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88년, 94년 파업에 따른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더 주요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복직의 당위성을 온몸으로 절규하듯이 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 해고자와 관련해 전체 노동계에서 철도노조의 위치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철도노조 현 집행부는 민주노총의 성향을 갖고 공공연맹에 가입해 직선제 투쟁을 벌여온 조직이다. 김재길 집행부가 출범할 당시 철도노조의 상급단체 변경 여부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현재까지 한국노총 소속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사유화)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에 소속돼 있는 양대노총은 현재 철도노조의 투쟁에 적극적 지지와 총력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조직적 차원에서 볼 때 조합원 2만3천여 명을 갖고 있는 철도노조를 끌어당기기 위한 노력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노동계 관계자들은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노동계가 계속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폭넓은 연대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때문에 이 같은 철도노조의 위치는 김대중 정부 집권 후반기에 마지막으로 구조조정을 둘러싼 한판 ‘대격전’을 치러볼 만한 조건을 만들고 있다. 철도노조는 11월 18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11월 25일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대규모로 참석하는 등 양대노총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얼마 전 정치권의 한 관계자가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간다고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겠냐”는 질문을 기자에게 던진 적이 있다. 기자가 이 물음을 다시 철도노조 김재하 정책실장에게 던지자 그는 “실제로 파업에 들어가면 노정 직접교섭의 창구가 열릴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만만한 답변이었다. 하긴 집행부도 아닌 현장조직이 벌인 지난 94년 파업 당시에도 파업지도부는 정부쪽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낸 적이 있었다.


늙은 철도노동자들의 애타는 설득

기자는 김재길 집행부가 들어서고 얼마 안 돼 철도노조 사무실에 들렀다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장난기 많은 한 간부가 다른 간부의 월급내역서 밑에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고액임금 웬 말이냐’라고 써서 게시판에 붙여놓은 것이었다. 그것은 격렬했던 직선제 쟁취투쟁을 거쳐 당선돼, 노조 전임간부로서 월급을 받게 됐다는 감동의 반어법적 표현이기도 했지만, ‘고액임금’이라는 표현은 실제 철도 내에선 어느 정도 통할 수 있는 말이었다. 기자가 더 놀란 건 그 ‘고액임금’의 액수였는데, 나이 40대 초반에 근속년수가 10년이 다 돼가는데도 월급은 1백50만 원에 못 미쳤다.

그랬다.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공공부문이라며 ‘민영화’라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곳에서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24시간 맞교대와 저임금으로 철도노동자들은 철도를 지켜왔던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철도노동자들에겐 일부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보통 보여지는 엘리트의식 같은 것이 없었다. 기자에겐 “철도를 멈출 수 없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더 많이 엿보였다.

지난 11월 25일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사유화) 저지 공동투쟁본부’가 청량리역에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갖고 한쪽 방향의 차선을 모두 이용해 동대문역까지 거리행진을 하던 도중 한 늙은 철도노동자가 보여준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조그마한 가게의 50대 남자주인에게 어눌한 목소리로 “철도민영화 막을려고 하는 거예요. 잘 봐주세요”라는 말을 건넸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노동자가 얼마나 절절하게 말했던지, 그 광경을 지켜본 기자 역시 철도민영화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을 정도였다.

연말연시 혹시 철도를 타고 여행갈 계획이 있으신가? 그러면 쟁의복을 입고 근무하는 철도노동자가 유인물 한 장 건네거든 그것을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에 한 번쯤 꼭, 찬찬히 읽어보시길 바란다.


제 187 호 2002 년 1 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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