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말 정년퇴임 한국철도 부산사무소 김문철 기관사
[부산일보 2006-05-30 12:12]
해고 10년 복직 2년… 파란의 선로 인생
우직했다.
앞만 보고 달렸다.
샛길은 없었다.
아니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그도 철로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32년이 흘렀다.
쉬이 흘렀다.
하지만 이제 떠난다.
누가 말려도 떠난다.
자랑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한국철도 부산기관차사무소의 김문철(58) 기관사. 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그를 부산진구 당감동 부산기관차사무소에서 만났다.
그는 웃었다.
싱글벙글거렸다.
그러다 울먹였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두툼한 손등으로 눈가를 긁어내는 횟수도 늘었다.
동석한 동료들은 애써 모른 척 했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눈치다.
누군가가 가끔 우스개 소리로 분위기를 바꿨다.
다함께 웃었다.
그때마다 그는 살짝 눈물을 훔쳤다.
아내와 자식 앞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까만' 눈물이었다.
'근속 20년…해고 10년…복직 2년…그리고 정년퇴임.' 한국철도에 남겨진 그의 이력이다.
2년의 복직과 정년퇴임을 위해 10년의 세월을 기꺼이 투자했다.
손익계산조차 되지 않는 투자였다.
하지만 그는 "노조활동을 통해 해고된 첫 사례이자 첫 복직의 영예를 누렸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가 파면된 것은 지난 1994년 7월26일. 당시 전국을 뒤흔들었던 '6.23 철도 파업'의 결과였다.
구속된 상태에서 '궐석 징계'를 받았다.
부산기관차사무소 노조의 지부장이었던 것이 이유였다.
78일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복직 투쟁에 나섰다.
"당시만해도 복직보다 철도노조의 민주화가 우선이었죠. 결국 6년만인 2000년도에 사상 처음으로 철도노조 위원장 직선제를 쟁취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 그러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부산과 서울에서 점거 농성과 노숙 투쟁을 밥먹듯이 했다.
"아내와 의견 충돌도 많았죠. 지금 복직해봐야 얼마나 더 할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당시 생계 책임은 아내에게 이미 돌려진 상태였다.
아내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다 나중에 작은 호프집을 열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됐지만 그가 도움을 준 것은 전혀 없었다.
자녀에 대해 묻자 그는 또 눈가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그의 두터운 어깨도 덩달아 들썩거렸다.
"당시 아들이 고3학년,딸이 중3학년이었죠. 가장 중요한 시기였는데…."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대신 군대를 갔다.
딸은 상업학교로 진학했다.
"그래도 운이 좋은가 봅니다.
탈없이 다 잘 자랐거든요." 10년은 참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조리사 자격증을 딴 아들은 지금 레스토랑에서 일한다.
딸은 대형 할인점에 취직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아빠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동안 직장도 많이 달라졌다.
"안전 장치가 크게 보강됐죠. 선로는 거의 다 직선화됐고…참,KTX가 운행된 것도 큰 사건이겠죠." 그래도 아쉬움이 크다고 그는 말했다.
기계가 좋아진 대신 노동환경은 더 악화되고 있다고 그는 후배들을 걱정했다.
"지난 3월의 철도 총파업을 기억하시죠. 벌써 18명이 해고됐고 100여명이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또 앞으로 2천200여명이 추가 징계를 받을 예정입니다.
KTX 여승무원의 고용문제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지도부가 지금 서울역에서 단식농성 중인데도…."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해고와 복직,그리고 또다른 해고가 반복되고 있었다.
멀리 무심한 KTX가 '차가운' 철로 위로 힁허케 내달렸다.
백현충기자 choong@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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