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칼럼 2006-05-22]
[경향의 눈] YH와 KTX
의학용어 가운데 예후(豫後:prognosis)란 게 있다. 환자의 여러가지 증상을 종합해서 그 병의 경과 및 결말을 미리 알아내는 것을 뜻한다고 백과사전은 적고 있다. 따라서 예후를 잘 집어내는 능력도 명의(名醫)가 갖춰야 할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 사람의 병뿐일까. 어느 집단이나 단체, 나아가 한 사회나 국가의 경우에도 어떤 병증을 앓고 있는지, 그것의 경과와 결과는 어떻게 될지를 파악할 수 있는 예후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나는 박정희 유신독재체제라는 ‘후천성 민주주의 결핍 증후군’ 환자가 어떻게 파국적 종말을 맞게 될지를 가르쳐 준 의미있는 정치·사회적 예후가 바로 YH사건이라고 생각한다. 1979년 8월11일 새벽 2시. 1,000여명의 경찰이 서울 마포 신민당사에 전격난입한 뒤 이곳에서 사흘째 농성 중이던 YH무역 여성근로자 200여명은 물론 취재기자와 신민당 의원·당직자들에게도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간부였던 김경숙씨가 목숨을 잃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가발제조업체였던 YH무역은 가발경기 호황과 정부의 수출지원책 등으로 급성장해 한때 종업원이 4,00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창립자가 은행 빚으로 무리하게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외화를 빼돌린 탓에 경영사정이 악화되자 인원을 500명으로 감축한 데 이어 아예 폐업을 공고한 터였다. 이에 YH 여성근로자들은 회사운영 정상화와 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 들어와 농성투쟁을 벌이던 중이었다.
유혈폭력 유신체제 종말 징후
YH사건이 유신체제의 종말을 알린 예후였다는 사실은 그 뒤 잇따라 발생한 일련의 사건이 입증한다. 경찰의 유혈 폭력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의원직에서 제명됐다. 제도권 야당과 학생·노동 운동 및 재야세력은 반유신 연대투쟁에 나섰고 마침내 부마항쟁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으로 유신체제는 종말을 고했던 것이다.
지난 6일 선거운동으로 혼잡하던 열린우리당 강금실 서울시장후보 사무실에 정리해고 방침에 항의하는 KTX 여승무원들이 들이닥쳤다. 이미 지난달 19일 한명숙 총리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점거한 바 있는 이들은 복직을 요구했다. 이들은 11일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후보 사무실과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잇따라 찾아와 농성을 벌였으나 그때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찰의 강제해산뿐이었다.
YH와 KTX 사이에는 27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이 가로놓여 있으며 둘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상황과 조건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YH와 KTX 사이에 놀라운 유사점을 발견한다. 당사자들은 더 없이 절박한데도 정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냉대와 무관심만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KTX 여승무원들을 보라. 아무리 비정규직이 파리 목숨이라 하더라도 달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하나로 일터에서 목을 잘린 이들이다. 인권변호사·법무장관 출신 여당 시장후보가 내세우는 통합의 보라색과, 개혁 선거법 제정의 주역인 제1야당 시장후보가 주창하는 생명의 녹색도 이들을 포용하지 않았다. 자상한 어머니상의 총리와 인권의 보루인 인권위원회도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비정규직 고통 외면한 2006년
YH 때처럼 정권의 살인적인 탄압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향해 KTX 여승무원들은 점차 투쟁강도를 높여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제2의 김경숙’이 나오지 말란 보장도 없다. 7백만명에 이른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이 계속 외면당하면 어느 순간 임계점을 지나 파열음을 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KTX가 우리 사회의 총체적 파국을 알리는 예후가 되지 않을지 몹시 두렵다. YH사건 당시 ‘공순이’로 농성투쟁에 참가했던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의 말처럼 이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당장 민생의 바다에서 짠 바닷물을 마시며 고통을 나눠야” 한다.
〈손동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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