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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신문] 106년 한국철도를 논하다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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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03일 16시 53분 38초

106년 한국철도를 논하다 - Korail의 어제와 오늘
고속철도 개통·남북철도 연결로 한국철도 도약 ‘전기’맞자!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였던 지난 18일은 한국철도에게도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바로 철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꼭 106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때론 일제의 도구로, 때론 국가 경제의 끌차로 애면글면 한 세기를 살아온 철도의 모습을 돌아보며, 미래를 점검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오전 9시에 떠나 인천으로 향하는데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뢰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독립신문 1899년 9월 19일 3면)”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인 1899년 9월18일 열린 경인철도 개통식을 독립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개통당시 증기관차의 평균 속도는 시속 20~22km/h, 최고 시속은 60km/h였다. 노량진~제물포 사이 33.2km를 1시간 30분 만에 주파했다. 속도로 치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교통수단이었던 셈이다.

1899년 9월18일 경인철도가 시초

한국철도는 이 경인철도 개통식 날을 철도의 날로 삼아 지금까지 기념해 오고 있다. 경부선은 1905년 1월, 1906년 4월 경의선, 1914년 1월 호남선, 같은 해 9월 경원선, 1936년 12월 전라선, 1942년 4월 중앙선이 연이어 등장했다. 이로써 한국철도의 주요 노선이 대부분 갖춰진다.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난 1945년 8월에는 총 영업거리가 6천3백63km, 역 7백62곳이었으며, 기관차가 1천1백66대, 객·화차 1만7천3백79량에 달했다. 당시 직원은 10만 5백27명이었다. 그러나 분단으로 남한 철도는 영업선 2천6백42km, 역 3백 곳, 기관차 4백88대, 객·화차 9천7백4대, 직원 5만5천9백60명으로 남게 되었다. 운영은 미 군정청의 3년간에 걸친 과도기를 거쳐 1948년 정부수립과 동시에 교통부가 철도를 운영하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을 맞아 철도는 군사수송의 대부분을 담당하며 전쟁수행에 큰 기여를 하였으나, 수송 장비의 70%와 시설물의 50%가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1953년 휴전 이후 철도는 파괴된 장비와 시설 복구에 착수해 태백·영동지구에 산업선을 건설하고 수송력 증강에 노력했다.

철도청이 처음 세워진 것은 휴전 후 꼭 10년만인 1963년 9월1일이었다. 교통부의 외청으로 발족해 철도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1963년에 영동선, 1966년에는 태백선과 경북선, 1968년에는 경전선을 차례로 개통하여 석탄·비료·양곡 등 대부분의 산업물자를 수송하며 국가산업과 경제발전의 기반을 다지는데 기여했다.

1974년 8월 경인·경부·경원선 수도권 전철을 개통하고, 1994년에는 분당·과천선을, 1996년에는 일산선 전철을 개통해 수도권의 교통난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증기 기관차에서 KTX까지

철도 역사에서 노선의 개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차량이다. 경인철도 개통 당시 운행한 최초의 차량은 모갈탱크형 기관차였다. 1899년 6월 수입되어 7월 경인철도회사 인천공장에서 조립한 이 차량은 중량이 35톤이었다.

그러나 증기관차도 1967년 8월31일 종운식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951년 운행을 시작한 디젤기관차가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51년 당시 차량은 UN군이 들여온 것으로 54년 4월 휴전으로 철수하며 SW8형(2000대형) 기관차 4량을 한국철도에 기증하면서 본격적인 디젤기관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통일호는 1955년 8월15일, 무궁화호는 1960년 2월 운행을 시작했다. 이어 1969년 6월10일 관광호가 최초로 서울~부산 간을 4시간 50분대를 돌파하며 새 시대를 열었다. 1974년8월15일 등장한 새마을호는 1985년 11월16일 서울~부산간을 4시간10분만에 주파하게 된다.

전기기관차는 1972년 3월17일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제작된 8001호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이 차량은 3개월 후인 72년 6월9일 증산~고한 간 10.7km구간에서 역사적인 시운전을 하며 전철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수도권 전철이 등장하며 전기 철도의 중흥기를 이었으며, 지난 해 4월1일 시속 3백km의 고속철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최고 시속을 자랑하던 새마을호가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6~70년대 국가 기간 교통망으로 이름을 떨치던 철도는 80년대 초반을 넘기면서 사양길로 접어들게 된다. 1974년의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시발점이라 할 수 있겠으나, 국가의 교통 중심이 도로 위주로 돌아선 것이 큰 요인이었다.

여기다 기름을 끼얹은 것은 2차 세계대전 후 등장한 항공 수송의 급속한 발달이었다. 이 때문에 유럽 등 철도 선진국에서도 철도는 경영난을 겪으며 쇠퇴일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던 철도가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환경 친화적이고 도로보다 안전하다는 점이 통계적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철도기술의 지속적인 향상으로 운행속도도 향상되어 왔기 때문이다.

KTX 개통, 한국 교통체계 바꿔

고속철도는 시속 2백km 이상으로 달리는 철도를 말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개발되고 있는 고속철도는 모두 이 기준을 넘는 고속운행이 가능한 차량들이다. 이러한 고속운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차량, 신호체계, 제어장치, 토목 기술 등이 복합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1992년 착공해 12년만인 지난해 4월1일 개통한 경부고속철도 1단계 서울~대구간을 달리는 KTX 역시 시속 3백km를 넘는 차량이다. 서울~부산은 2시간40분, 서울~목포는 2시간58분만에 주파한다. 한반도를 2시간 생활권으로 묶었다.

개통 초기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금년 들어 10분 이상 지연하지 않고 정시에 도착한 열차가 99%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높은 정시율을 자랑하고 있다.

당초 계획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승객 역시 개통 14일 만에 1백만 명을 돌파했고, 1백42일만에 1천만 명, 16개월 26일 만인 지난 8월22일 4천만 명을 돌파했다. 세계 5번째 고속철도지만, 성적으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다.

차세대 한국형 고속전철 ‘G7’

G7의 정식 명칭은 ‘HSR350-X(High Speed Rail 350 Experiment)’다. G7의 개발은 한국 철도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기술적 성과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부고속철도 천안~신탄진 구간에서 국내 최고 시속인 3백52.4km의 시험주행에 성공하며 한국 철도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우리의 독자적 기술을 세계에 보여준 쾌거였다.

남북철도 연결과 ‘철의 실크로드’

다음 달 말로 다가온 경의·동해선 열차 시험운행과 연말로 예정된 역사적인 남북철도 개통을 위해 남북은 지난 8월18~25일에 연결구간에 대한 공사실태 공동점검을 마쳤다.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물류비가 크게 절약되고, 개성 KTX관광의 가능성은 물론, 금강산 관광과 남북한 직교역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철도가 향후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돼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기지로 발전할 전망이다.

연내 개통 예정인 남북철도는 통일의 초석이자 가교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 이를 계기로 러시아·중국 대륙 철도와 연계될, 한국철도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북한 철도의 현대화가 선결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와 북한이 정상회담을 통해 철도연결에 합의한 것은 미래를 밝게 한다. 러시아가 현대화를 지원하기로 한 만큼 본격적인 현대화 작업에 돌입하도록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글로벌 넘버원’ 세계로 미래로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개통 이후 한 세기가 넘게 국민과 함께 숨쉬어온 한국철도. 세계 5번째로 고속철도를 개통하며 전성기를 맞은 한국철도가 다시금 대륙철도로 거듭나는 기회를 맞아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전후의 피폐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은 철도인의 정신으로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를 준비한다면 철도의 미래는 ‘실크로드’에 다름 아닐 것이다. 세계로 뻗어가는 명실상부한 국제철도로 거듭날 그 날은 꿈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훈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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