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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5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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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상을 깨운 사람...
김운철 선배를 만나다

편집팀 || VIEW : 1682/185
 

편집자 주 : 1994년 6월 23일 새벽 04시 세상을 깨운 당시 전기협 수석부위원장이며 부산기관차지부장이었던 김운철 선배님이 10년의 해고 기간 뒤 복직된 지 2년 6개월 만에 정년퇴직을 하였다.


6.23 당시 전기협 수석부위원장 겸 부산기관차지부장이었던 김운철 선배님
-선배님 정년을 축하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심정은 어떠신지요.
시원섭섭하다. 복직투쟁을 할 때 전망을 쉽게 보지 않았다. 명예가 회복되어 다행이고 뜻이 깊다. 동료들은 마음이 아프고 섭섭하다고 한다. 내 할 일 충실히 했다.

-어떻게 철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까?
우연히 이사간 곳이 성북역장 집이었는데 그 것이 계기가 되어 철도전수부 시험 보고 들어와 2지망으로 신청한 곳이 가야기관차(지금의 부산기관차)이다.

-선배님이 근무할 때의 노동조건은 어땠습니까?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스팀기관차가 있었다. 증기버너로 벙커C유 떼는데 압력을 잘 맞추어야 한다. 잘못하면 매를 맞는다. 난 기관사도 늦게 되고 승진도 안 돼 불행한 사람이다.(웃음)

-당시는 3중간선제인데 선거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3중간선제에서 선거는 대단하다. 대의원들을 감금시켜놓는다. 선거 하면 집 한 채가 날아간다. 지면 타격이 크다. 그런 것이 악순환 되어 대의원을 안 하려 한다. 권력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기를 쓰고 하려 한다. 선거에서 지면 불이익이 컸다.

-왜 전기협을 만들게 되었습니까?
전기협수석부위원장과 부산기관차지부장이었다. 당시 철노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깊고 노동조합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많았다. 조합이 사용자 편에 서는 기형적인 형태였다. 지부장 하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전기협을 만들게 되었다.
달리고 싶은 철길... 그러나 단절된 시간이 너무길었다


조합이 사용자 편에 서는 것을 방관할 수만은 없어 전기협이 탄생되었다

-요구사항과 노동조건, 파업상황을 이야기 해 주십시요
서울 부산 직통열차 2박 3일 다이아 운행으로 월 250시간은 보통이다. 변형근로 철폐, 24시간 맞교대 폐지 등을 요구했다. 04시 공권력이 들어와 자동파업이 되었는데, 오줌을 누다 끌려간 사람도 있었다. 지도부는 잡혀가면 안된다 해서 동아대로 갔는데 나중에 부산역에 나와 보니 정말 열차가 안 다니는 거야. 우리는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해고된 후 무엇보다 가족의 고통이 컸을 것 같은데요?
조계사에 있는데 징계의결서가 날아와 7월 26일 파면 되었다. 가족과 의논할 여력도 없고 현장탄압이 들어오고 기가 차더라. 부산기관차에서 해고자가 너무 발생하여 지부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꼭 복직시켜 노조 민주화 하겠다고 약속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해고10년 동안 복직투쟁, 이후 겨우 이루어진 복직 2년... 너무도 짧은 기간이었다.
선배가 떠나는 자리는 후배들이 채우지만 빈자리가 너무 크다

KTX와 3.1 파업의 배제징계를 보면서 철도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후배들을 보면 가슴이 아퍼...

-해고기간 중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못했고 집사람을 직업 전선으로 내보내야 했다.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집사람이 아이들 잘 키우며, 살아주어 고맙다.
복직하자 이별인데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아내와 1남 2녀에 거동이 불편한 노모가 계시다. 노후대책을 세우지 못해서 집사람은 걱정이 많다.

-철도공사관계자에게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제 가정을 파탄내는 해고는 없어야 한다. KTX와 3.1 파업의 배제징계를 보면 철도공사의 잔악성이 보인다. 우리를 그렇게 많이 자르고... 아직도 사람이 되려면 멀었다. 선배로서 철도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후배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철도노조가 민주화 되었을 때의 심정이 남달랐을 텐데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정말 역할을 다 했다는 생각도 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철도노동자로서 해고된 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꼈다.

-정년 이후 계획은?
남은 인생 사회문제, 고용문제, 비정규직 문제, 민족의 아픔,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 나이가 있어 할지 모르겠지만 체력은 자신있다.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는 노조밖에 없어...
노조를 중심으로 조합원의 의무만 다 해도...

마지막으로 제복을 입고 열차앞에 서는 그의 모습에 그 동안의 회한이 느껴진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는 노조밖에 없다. 개별적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싸워서 안 된다고 하는 후배들도 있는데 그러면 다 불행해 진다. 노조를 중심으로 조합원의 의무만 다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

-함께 투쟁했던 당시의 동지들과 부산기관차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죠
의로운 투쟁을 하였다. 철도노조가 잘하길 바란다. 어려울 때 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지혜롭게 잘 풀어야 한다.
투쟁의 시작은 쉬워도 정리는 힘들다.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 혹시 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부산기관차 동지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다 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제 563호
2006년07월18일 23: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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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것이겠지요..
200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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