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휴머니즘의 동물학』의 저자 ‘비투스 B. 드뢰셔’가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 9급 공무원시험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차를 타고 서울 응시장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광경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검찰 청소직에 대학졸업자가 대거 응시했다는 뉴스는 이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기관사 선배 한 분과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분의 큰아들이 결혼하고서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오랫동안 애태웠는데, 그 아들이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눈물을 쏟아내며 서럽도록 울다가 웃다가 했습니다. 단지 안정된 직장,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유로말이지요.
이처럼 공무원·공기업 공채시험에 고학력 젊은이들이 수없이 몰려드는 현실은 이들이 앞으로 살아야할 삶이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이 전쟁과 독재 같은 격동의 세월을 감당해내고 우리에게 바통을 건네주었던 사회에 비한다면, 우리 세대가 일자리를 구하는 젊은이들에게 건네준 사회의 현실은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그 예전엔 집집마다 물질적 풍요로움 없이도 대여섯 이상의 많은 형제를 거느렸고, 또한 각자가 세상 한 자리에 자리 잡으며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사회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이들은 형제가 하나 둘밖에 없으면서도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이른 새벽부터 늦은 새벽까지 과외다 학원이다 방과 후 학습이다 해서 십여 년 동안 죽기 살기로 공부만 해야 하는 혹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나긴 입시지옥을 견뎌내고 숨통을 여는가 싶더니 더욱더 혹독한 취업전쟁의 나락에 내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선배 세대가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젊은이들에게 공무원·공기업 취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살육 전쟁’ 같은 사회를 바통터치 해주는 것이 몹시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안쓰러울 뿐더러 무척이나 민망하고, 어른 세대로서 무책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이 ‘전쟁’ 같다는 것은 기존 일자리에 대한 무자비한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 취업할 일자리도 계속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다양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나 취업의 문이 확대되어야 마땅한데 그러하질 않는 게 현실입니다. 공·사(公私)기업을 불문하고 비정규직의 확대가 젊은이들이 평생을 걸고 일할 만한- 결혼해서 자식 낳아 제대로 된 교육받게 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일자리를 크게 줄여놓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른 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넘겨준 아비규환의 취업 현실은 신자유주의에 굴복 당하고 정신마저 압도된 우리 세대의 자화상입니다. 평생 일할 만한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비정규직의 무차별 확대’와 ‘노동자를 공격하는 구조조정’에 굴복 당하고 압도된 우리의 비참한 현실인 것입니다.
다른 이들과 비추어 고용·노동조건·복지 등 조금이라도 누리는 게 있는 우리가 그저 “이대로만!”을 생각하고 복지부동한다면 미래 세대에 대한 선배 세대의 사회적 의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과 자식 세대에 닥쳐올 고통을 외면하고 스스로 패배자가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부모 세대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미래 세대에게 이어주기 위해선 당장에 ‘연대와 투쟁’을 담담하게 해내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닐는지 여겨집니다.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그들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원칙이 옳다면 지금 세상에는 크고 막강한 괴물들만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벌새’는 적으로부터 더 잘 도망칠 수 있도록 점점 작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고 연약한 ‘나비’들과 작은 ‘황금햄스터’도 털북숭이 애완견도, 토끼도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지 않은가?…무리를 이루어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들의 생존 전략이 서로 돕고 희생하는 사회적 능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동물이 영리해서가 아니라 창조주가 심어준 탁월한 생존의 법칙, 수십억 년의 지구 역사를 통해 효력이 입증된 행동 규범을 준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니즘의 동물학』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