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3월부터 힘찬 투쟁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조합원들의 출근을 맞이하며 대전정비창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대전차량관리단의 반조직적 행위와 관리자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가칭)철산노 작업거부 선동자 처벌을 위한 천막농성 투쟁’이 130여 일 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조합원들의 출근을 천막농성장에서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6?28파업투쟁으로 파면되어 아직까지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전상운 전 대창지방본부장이 있다.
후배들은 지금도 전상운 전본부장을 상운이 형이라 부른다. 해고자, 노동조합 간부보다는 든든한 맏형으로 생각한다. 6?28파업으로 인해 4년이 넘게 해고생활을 하고 있는 상운이 형은 본래 투철한 노동운동가도 투사도 아니었다. 신망 받는 선배, 의리 있는 동료로 인정받으며 직장생활을 하던 그가 노동조합일을 하게 된 것은 동료에 대한 강한 의리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올곧은 성격 때문이었고, 그것이 그를 투사로 만든 것이다.
2000년에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기 위한 공투본 투쟁 때에는 대전정비창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노조민주화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객차지부장으로 당선되어 2?25파업을 이끌면서 조합원에게 신망의 대상이 되었고, 6?28파업에서는 대창지방본부 본부장으로 당선된 지 불과 보름여 만에 해고를 무릅쓰고 파업을 이끌었다.
그는 본래 말수가 적은 편이다. 회의 때에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고 의견이 모아져 결정되면 뚝심 하나로 묵묵히 추진해 나갈 뿐이었다. 지부장, 본부장을 하는 동안에 동지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쌓았으며 조합원을 하나로 묶어세우는 촉매 역할을 하였다.
2001년 12월로 기억된다. 퇴근 후 철도민영화저지 결의집회를 하던 중 관리자의 도발로 인해 여객차량국 사무실을 점거농성하게 되었다. 약 50여명 정도의 조합원이 농성을 하면서 관리장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던 중 관리자는 요구사항을 거부하였다. 밤 10시까지 시한을 주었음에도 거부하자 당시 지부장이었던 상운이 형은 ‘전 조합원 비상소집 지침’을 내렸다. 지침이 내려진 그 날 12시에 한 명도 빠짐없는 모든 조합원이 여객차량국 사무실 앞에 집결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며칠 후에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다. 지부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이루지 못 한 일이었다.
상운이 형은 지금도 말한다. “나는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조합원들이 밀어주고 이끌어 주었기에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고. 2?25파업과 6?28파업, 철도노동조합이 파업을 결의했을 때 이미 각오한 일이다. 나는 조합원들의 철도민영화 저지, 일방적인 철도구조조정 저지에 대한 열망을 저버리지 않고 앞장 서 싸우는 것이 나의 일이기 때문에 이미 각오한 것이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뜻과 의리를 배반하지 않을 때 노동조합이 올바르게 서는 것이다”라고…….
지금도 항상 그를 볼 수 있는 곳은 투쟁의 현장이다. 2006년 3월부터 8월까지 전개한 해고자 원직복직을 위한 정부 대전청사 앞의 천막농성에서도, 해고 동지들의 현장순회투쟁에서도 그 자리에는 항상 그가 있다. 투쟁의 현장에서 맏형의 역할을 하면서 묵묵히 후배들을 챙기고 조언하는 그가 있었다.
7월 2일부터 철도해고자 ‘원직복직·원상회복 쟁취’를 위한 전국도보순회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 투쟁의 현장에서도 그는 후배들을 챙기는 맏형의 노릇을 할 것이다. 빛나지 않을지라도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의리 그 하나로, 뚝심 그 하나로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의리에 화답해야 되지 않을까. 원직복직·원상회복 투쟁으로 현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화답해야 할 것이다.
이용기 / 대전정비창지방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