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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5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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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을]
온 몸을 쏟아 부어야

김현숙 || VIEW : 1837/220
사과과수원 열매 솎는 일을 한 열흘 다녔더니 우리집 농사일이 산더미처럼 밀렸습니다.
복숭아밭의 풀은 물론이고 옥수수며 고추, 땅콩, 참깨 밭의 풀들이 내 손을 기다리고 들깨 씨 부리는 일, 메주콩과 여러 가지 콩들, 팥 심을 일도 마음을 바쁘게 합니다.
호박과 오이도 심어만 놓고 똥 한바가지를 갖다 붓지 않아서 풀에 둘러싸여 목숨만 유지하고 있는 꼴을 보니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천수관음’의 천손을 빌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
천손이면 능히 하루 만에 이 모든 일을 하고도 남을 테지요. 하지만 내 손은 둘 밖에 없으니 어찌 하나요? 가장 급한 것부터 차근차근 하는 수밖에요. 혼자서 또 남편과 일주일 아주 되게 일 했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새벽 5시에 눈이 뜨여 잠이 안 오잖아요. 한 십여 분 뒤척이다 잠자기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오니 날이 훤합니다. 새들은 벌써 아침식사 하러 이곳저곳 떼 지어 날고 비둘기란 놈은 부부끼리 콩밭을 기웃거리지요. 이맘 때(콩 심고 떡잎이 나올 때) 비둘기는 몹쓸 짐승입니다. 내가 붙인 ‘도둑비둘기’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한 번 맛 본 콩밭은 남아나지 않습니다. 냅다 쫓아버리고 돌아서니 벌써 여름해가 하늘 위로 올라있고, 마을 통장님 방송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잠자리에 있는 사람만 밤이지요. 밖은 벌써 이렇게 경운기 소리, 약치는 소리, 풀 깎는 소리로 가득한 한낮 같습니다.
이 부지런한 아침에 자극받은 이 농부 호미 들고 풀과 마주했습니다. 낫 들고 풀과 마주했습니다. 전장에 나가는 용맹함은 아니더라고 나를 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약간은 비장한 다짐을 하면서….

흙먼지 뒤집어쓰고 땀투성이가 되도록 온 몸을 그냥 푹 담그는 거지요. 약게 굴어서는 일자리 표도 안 나거든요. 온 몸을 쏟아 부어야 내가 심은 작물들이, 땅의 자손들이 비로소 나의 것이 되어 줍니다. 내 땀으로 얻은 것이 아닌 것은 모두다 나의 것이 아니지요. 참말로는 남의 것이지요. 어디 농사만 그런가요.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겠지요.

제초제 뿌리고 약게, 농약 뿌리고 약게, 화학비료 뿌리고 약게 농사 지면 나의 것도 아닌 것이요, 남에게 줄 것은 더더욱 못되는 것이라 참 농사 바른 농사 참 어렵습니다.
참 농부 되기는 수확하고 나서가 더 힘들지요. 주름이 늘 지, 한숨만 쌓일 지…. 흘린 땀방울에 감사할 지. 그리하여 다음 해도 그 다음 해에도 바른 농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될 지….
도시에 사시는 벗님! 당신이 정말 농부의 벗으로서 바른 농사를 지원해 주고 응원해 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 다 사는 생명의 길이 아닌가요?

하루는 종일 콩 심을 밭 풀 매고 콩 심고 했더니 앉은뱅이 된 것처럼 두 다리 펴고 곧추 서기 힘들었습니다. 자꾸 구부러지는 허리를 펴고 앉아서, 안 펴지는 다리를 한 다리씩 번갈아 펴가며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밥 먹고 나서 두 아들놈이 다리 주무른다 어깨 주무른다 설거지 한다 야단이 났어요. 그래서 자리 펴고 누워 잤습니다. 그날 밤은 배짱 편한 어미가 되었습니다.
남편과 복숭아 밭 풀베기를 꼬박 이틀하고, 오늘은 복숭아 열매솎기를 종일 했습니다. 복숭아나무가 해마다 부실해집니다. 가지를 많이 자른 이유도 있지만 이번 결실은 지난해의 절반 정도 될 듯합니다. 꽃 솎을 즈음 나무벌레도 얼마나 열심히 잡았는데…. 그 공도 없이…. 여러 가지 고민이 밀려옵니다. 어떤 지혜가 필요합니다.
얼추 급하고 급한 일은 마무리 지었는데, 뒤로 밀렸던 일들이 출발선에 섰네요. 한 잔의 차로 여유를 빚으면서 또 ‘출-발’입니다.

김현숙 / 철도생협

제 578호
2007년06월26일 18: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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