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초면의 어색함도 없이 앉자마자 소주잔을 부딪치며 서로 알고 지내온 듯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들의 따스한 인정 때문이었던지 두툼한 삼겹살도 빠르게 익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기담 영주지방본부장(47세·제천기관차), 윤한원 영주시설 지부장(49세), 공창선 영주차량 조직부장(41세), 세 사람 모두 불혹을 넘긴 40대이고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 아빠라는 공통점이 있다. 각박한 현실 속에 보육의 어려움과 자꾸만 늘어나는 자녀의 교육비 부담 탓에 둘째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며, 셋째는 부의 지표라는 말이 젊은 부모들 사이에 씁쓸한 우스갯말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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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동지들과 복직동지들의 애끓는 삶
“노동조합 전임자라고 급여가 적은 편이라 그런지 소득의 3분의 2가 아이들 교육비로 나가는 것 같아요. 인간다운 삶을 위한 문화생활과 노후에 대비한 준비는 꿈도 못 꿉니다. 온 가족이 그냥 먹고만 사는 거죠”
6·23 해고자였다가 2004년 복직된 이기담 본부장은 연금의 손해는 말할 것도 없이 비슷한 시기에 철도에 들어온 동료들보다 월등히 낮은 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래도 저는 형편이 나은 편이에요. 불안한 노후 대책을 위해 연금특례를 선택한 복직동지들은 급여에서 기여금을 떼고 나면 실수령액이 100만원도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공사라는 허울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 그 돈으로 생활한다는 것을 보통사람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해고동지들과 복직동지들의 애끓는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기담 본부장은 연거푸 쓴 소주잔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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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원 / 영주시설 |
이기담 본부장의 말에 이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윤한원 지부장이 ‘해고동지들에 대한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책무’를 이야기 한다.
현장의 여름은 유황불 지옥
바야흐로 생명의 활기가 가득하고 녹음이 짙푸른 6월이다. 6월의 멋과 아름다움에 여유부릴 새도 없이 현장의 철도노동자에겐 마냥 뜨겁게 느껴지는 여름의 시작이다.
“철길엔 이미 여름이 와있어요. 지금도 철로 위에 계란을 떨어뜨리면 후라이가 될 정도로 뜨거운데 지긋지긋한 여름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네요. 한낮의 작렬하는 뙤약볕 아래 의지할 그늘도 없이 선로순회를 해야 하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선로수의 당연한 업무라지만 너무 안쓰러워요. 우린 이맘때부터 탈수증을 방지하기 위해 자비로 이온음료를 사 먹거나 간장을 물에 타 먹는데요. 휴대가 편하고 좀 더 효과 있는 전해질 용액 같은 것을 공사에서 당연히 지급해야 마땅한 거 아닌가요?”
유난히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건재한 골격, 근육질의 옹골찬 팔뚝을 보며 윤한원 지부장의 건강미를 엿볼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의 업무가 고되다는 걸 말 해주는 것이다. 수없는 함마질(망치질)과 곡괭이질로 단련된 몸과 함께 그의 다부진 말투에는 강고한 뚝심까지 담겨 있었다.
“혹서기 동력차 정비는 정말 끔찍합니다. 동력차 차체는 육중한 쇳덩어리인데 한 낮 열기에 달궈지고, 게다가 온종일 가열된 디젤기관에 의해 기관실은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뜨겁습니다. 한여름 중에 기관실 안의 실제 온도는 7∼80도 정도 되는데 체감 온도는 어떻겠어요. 여름에는 팔이 짧은 옷을 입기 때문에 기관실 내에서 작업에 몰두하다보면 화상을 입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흠뻑 흘린 땀 때문에 입은 옷이 비 맞은 것처럼 젖게 되는 거죠. 차 한번 보고나면 샤워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으나, 일은 항상 넘치고 동료들도 나처럼 다 같은 생각을 할 테잖아요. 여름 열기에 나만 시달리는 것이 아니니 참는 법밖에 달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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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선 / 영주차량 |
후덥지근함에 짜증날 지라도 여름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여행과 낭만의 계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윤한원 지부장과 공창선 조합원이 겪어본 여름에선 낭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의 맘이 가난해서 여름을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여름 내 일상은 분명히 유황불 지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철길 위 사람들은 가족의 생계와 책임을 위해 감내할 수 있지만 다른 평범한 이가 철도현장의 여름을 경험한다면 유황불 지옥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주 소고기, 풍기 인삼은 나의 힘
영주지역 조합원 동지들에게 영주 자랑을 부탁했다. 자랑할 것은 많아 보이나 사내대장부가 자기 자랑하는 것 같아 겸연쩍었던지 허허 웃기만 하다가 편집팀의 집요한 물음에 공찬선 동지가 말을 연다. “자랑할 것은 많지만 이런 건 보통 대표자가 하는 거잖아요. 본부장님 지역 광고 좀 하시죠!” 그는 넉살웃음을 하며 이기담 본부장에게 숙제를 맡긴다.
지역 광고의 중책을 맡은 이기담 본부장은 연신 허허 하며 머리를 긁적이기도 하다가 “삼겹살 대신 영주 소고기와 소주 한잔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라 말을 시작하더니 청산유수로 숙제를 술술 풀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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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담 / 영주기관차 |
제천기관차승무지부에서 근무했던 이기담 본부장은 승무선지인 서울·대전·천안 등지에 살고 있는 철도동료들과 지인들에게 영주 소고기를 손수 사서 전달하곤 했다 한다.
“사람들이 비싸더라도 한우를 찾는 것은 맛이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에요. 수입 소고기는 아무리 고급 육종이고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해도 냉동 상태로 수입되는 만큼 냉장 유통되는 한우와는 맛을 비교할 수가 없거든요. 한미FTA 협상 타결 이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비해서 영주지역도 절절한 노력들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참고로 한우는 선홍색을 띠며 수입 소고기는 암적색이라네요. 영주 소고기와 더불어 풍기 인삼도 단연 최고죠. 풍기 인삼 좋은 건 말 안 해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잖아요. 맛과 향이 뛰어나고, 건강에 당연히 좋고, 정력에도…….”
이기담 본부장의 영주 소고기 자랑을 이어받은 공창선 부장의 지역사랑과 특산물 자랑도 시원시원하다.
더불어서 윤한원 지부장의 향토 자랑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 부석사, 국내 최초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자연의 숲 소백산’ 등에 대한 간단하면서 명쾌한 소개를 다부진 그의 말솜씨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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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자연 그대로인 영주를 천천히 느껴보자
먼 길 떠나온 김에 영주 조합원들이 소개해 준 곳을 한번 둘러보고 싶었고, 영주지역의 철도 오지에서 근무하는 조합원을 만나서 진솔한 삶을 들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쉽지만 영주에서의 또 다른 만남은 다음으로 기약한다. 낯설지만 고향에 찾아온 것 같은 이곳이다. 언젠가 다시 찾아 올 때는 일정과 시간을 넉넉히 챙겨서 오리라 다짐해 본다. 영주 조합원을 두루 만나보고 또한 천혜의 자연 그대로인 영주를 천천히 느껴보기를 희망해 본다.




윤한원 / 영주시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