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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5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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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사는 사람들

김병구 || VIEW : 1136/141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작년에 3ㆍ1 파업 이후 징계국면 때, 수색에서부터 불어 온 차량작업거부 투쟁이 청량리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조합원이 동지들을 위해 투쟁에 동참하였는데 불참한 조합원들이 있었다. 설득하러 간 나에게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므로 상관없겠지만, 나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괜히 작업거부 했다가 피해 받기 싫다”고 항변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왜 그렇게 서럽던지. 쪼들리며 살아온 아내와 아이들에게 못된 가장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똥 친 작대기

공무원 시절에는 그렇다하더라도, 공사가 되었는데도 해고자들은 복직되지 못하고 여전히 경력직 신규입사자로 채용되었다. 사측뿐 아니라 노조도 버젓이 이것을 투쟁의 성과물로 치장한다. 그리고 그만이다. 이들이 복직 후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똥 친 작대기 취급이다.
2000년 공투본 투쟁으로 해고된 후 5년 만에 철도에 다시 입사한 나에게 맨 처음 닥쳐온 것은 생활고였다. 해고 기간 동안 다 털어먹은 살림 때문에 받은 신규대출금 상환 부담, 해고 기간의 경력이 전혀 인정되지 않은 임금, 공무원연금은커녕 이제 국민연금 1년차로 불안한 노후, 매월 커지는 적자폭. 함께 입사한 L동지는 부인과 함께 대리운전에 나서고, 나는 해고 때 했던 세차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7ㆍ26, 6ㆍ23 선배들의 고통이 새롭게 느껴졌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그래도 가끔은 인정 많은 조합원들이 있어 위로가 되기도 한다.


6급 6호봉

우리 지부의 6ㆍ23 해고자 중 최 연장이신 욕쟁이 N선배는 숲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산으로 들로 개천으로. 83년 입사했는데 작년에 5급으로 승진하면서도 기뻐하던 모습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K선배는 파업 때 규율부장까지 할 정도로 열심인데, 지금 제안제도를 이용해 돈을 벌 수 없나 연구 중이다. 내 동기였던 M이 가장 활동성이 높다. 비록 낙선하였지만 위원장후보까지 나섰으니. 언젠가 M의 급여명세서를 본 적이 있다. 6급 6호봉. 평달 실수령액 130여만 원. 피가 뜨거운 이들이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스멀스멀 느껴지는 상실감과 빈곤은 점차 이들의 영혼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공허한 노조활동

철들고 나서 세상의 중심에 항상 내가 있었다. 주변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희생을 치르더라도 올바르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기쁨을 맛보았다.
지난 5년간의 해고 기간은 내 삶의 조건을 무척 힘들게 만들었다. 가슴에 불덩이가 타고 있어도 삶의 굴레는 완강하다. 가슴 속에는 세상을 바꿀 웅지를 품었다 하더라도, 당장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하나가 된 인생은 무척 행복할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노조활동을 통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지금의 철도노조는 자신들의 고용과 임금만을 지키기 위한 틀에 갇혀 있다.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면서도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허한 노조활동에서 삶으로서의 노동운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원직복직과 원상회복을 위한 투쟁은 우리의 혼을 살리는 일이다

삶으로서의 운동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아껴가는 과정 속에서 꽃 피울 수 있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 까지는 길게는 18년에서부터 짧게는 5년까지 해고생활을 한 동지들,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은 동지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여전히 47명의 해고동지도 있다. 앞서간 이에 대한 배려와 존중 없는 철도노조의 활동은 영혼이 없는 강시처럼 기계적이고도 공허해 보인다. 더욱이 이들의 원상회복 건을 단순히 돈의 문제로만 치부하여 모르쇠로 일관하는 노조간부들의 가식을 보면 가엽기까지 하다. 자기 삶에 떳떳하고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삶으로서의 운동을 할 수 있겠는가?
해고동지의 원직복직과 원상회복을 위한 투쟁은 철도노동자들의 혼을 살리는 일이다. 넋이 빠진 우리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년부터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했다. 올 봄에는 마라톤도 시작하였다. 무척 유쾌한 생활이다. 눈앞에 보이는 부조리에 눈을 감고, 뜨거운 피를 차갑게 식힐 수만 있다면.

김병구 / 청량리차량지부

제 577호
2007년05월15일 11: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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