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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5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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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추억]
너를 찾으리라

김주태 || VIEW : 1573/140
 
피곤한 몸을 앉힐 자리도 없이 서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우연히 보게 된 그림이 오래 가슴에 남은 적이 있다.
감나무에 빨간 홍시가 하나 매달려 있는데 까치가 부리를 대고 그 홍시를 쪼아 먹고 있다.
그것을 보고 잠시나마 고향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일상에 지치고 부대끼며 살다 보면 그런 그림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지만,
한 번쯤은 가슴 깊이 아린 기억들이 묻어나올 것이다.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를 보고 어느 시인이 읊은 시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난다.
바람 부는/ 감나무에 홍시 하나 /까치밥을 남겨 놓을 줄 아는 / 조선의 마음이여/
까치밥 하나 남겨 놓을 줄 모르는 마음으로 우리는 너무 멀리 와 버리진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듯 나에게도 고향이 있다.
생활에 쫓기다 자주 찾지 못하지만 부음을 받거나 친척 결혼식 등의 이유로
가끔 고향을 찾는다. 밤차로 내려갔다가 볼일만 보고 황급히 올라오는 게 고작이다.
얼마 전 오촌 당숙이 돌아 가셔서 밤 열차를 타고 내려갔다가
장례를 마치고 오후 열차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은 보기만 해도 풍요롭고
또한 그 빛깔에서 묻어나는 애잔하고 서러운 감상에 잠시 젖기도 한다.
기차가 고향 마을을 지날 즈음 내 눈이 번쩍 뜨인다.
아, 저기 저 집 용출이 아저씨가 고추를 말리려 마당에 고추를 너시는 구나.
덕이네 집 마당에 올해도 호두나무 가지가 축 늘어 졌구나.
바우 형님네 논엔 올해도 어김없이 풍년이구나.
에구, 풍년이면 뭐하나. 그나저나 큰딸이 불치병에 걸렸다는데 지금은 어떨까.

어느새 기차는 윗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그 마을을 지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등학교 때 친구였다.
그 친구는 중학교 2 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그 때부터 농사일, 집안일,
줄줄이 동생에다 어린 나이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결국 학교를 그만 둔 게 고등학교 2 학년 때였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 입시 준비에 밤낮 정신없이 공부에만 매달렸는데,
학교를 그만 둔 친구의 손에는 언제나 낫이 있었고, 경운기가 있었다.
다음 해인가, 냇가에서 그 친구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꽤나 진지한 얘기를 한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했을까?
우리는 막걸리 독에 빠져 같이 논두렁을 구르기도 하고,
울적할 땐 먼 산 먼 들을 보며 달래기도 했다.

아, 그런데 내가 무심했다. 늘 한 번 찾아 봐야지,
하면서도 미룬 세월이 벌써 스무 세 해째 아닌가.
어느 결에 소식이 끊긴 나의 친구여.
열차 차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대추나무가 서 있는 너의 집을 지금 지나고 있다.
흙담에 오르는 담쟁이도 보이는 구나.
쓰러질 듯 납작 엎드린 지붕도 지나는 구나.
그래, 올 추석엔 기필코 너를 찾으마.
찾아서 너의 가슴을 힘껏 당겨 안으리라.
소형 중고 자동차 앞 범퍼에 금이 가서 너덜거려도,
야간작업에 잠을 못 자 움푹 눈이 들어가도,
손에 기름때 묻어있어도,
예쁜 네 마누라 남방 소매에 보푸라기 이는 것이 보여도

함박웃음으로 너를 안으리라. 친구야, 친구야


* 김주태는 1969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1997년 『작가정신』에 시 ‘화해’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주태 / 시인



제 567호
2006년10월06일 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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