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현실세계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에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러면서도, 그러면서도 참으로 불순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예정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바로 그 일이 일어났던 지난 18일 서울지하철공사에서 나온 ‘사장 지시사항’이라는 공문이 얘기해주고 있었다. 전동차 정비 민간위탁추진 및 정비인력절감 방안 검토, 역무분야 근무제도 3조2교대에서 2조2교대와 매표실 통합운영, 2호선 신호방식 시스템 개량으로 1인 승무체계 마무리 등이 그 내용이었다. 노무현 당선자는 지난 시절 무리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국민통합을 국정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는데, 이 공문은 세상 흐름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자고 하는 판국에 비정규직을 늘리려 하고 있다. 지금도 노예노동처럼 장시간 일하는데, 노동 시간을 더 연장하겠다는 무식함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우리 미래에 조심스런 희망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하철 최고경영자 인식에서 노무현식 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어디에 있는지 눈치챌 수 있다.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고경영자 출신 시장이 취임해 더 철저한 시장마인드로 의식개혁을 하고 수익사업 확대·비용 절감을 더 철저하게 추진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시장 공약사항이라며 지하철 1시간 연장운행을 무리하게 추진할 때, 그로 인해 예견될 수 있는 문제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할 지하철 경영진들은 어떠한 이의제기도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안전이나 사람, 공익적 가치 등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이런 일들이 한나라당 소속 이명박 서울시장 체제니까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민주당 소속 고건 시장 시절에도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 않았다. 당시 지하철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영혁신, 구조조정, 책임경영이었다. 그 결과는 무리한 감원과, 지하철을 타면 확인할 수 있듯 빈 공간 하나 없이 들어찬 광고다. 대합실 이곳저곳을 뜯어고쳐 신발 가게, 옷 가게, 화장품 가게를 하도록 임대사업을 벌인 것이 구조조정 모습이다. 아예 커다란 벽걸이 텔레비전을 걸어놓고 광고하는 판에 귀를 막고 있어야 할 정도로 지하철이 어수선하고 복잡해졌다. 오로지 돈을 위해 사람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구조조정에서 비롯된 이런 일들이 고객만족인 것이다.
구조조정을 무리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노조를 무력화시키든가 정부 말을 잘 듣는 노조를 세워야 했다. 그것이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신노사문화정책’이다. 기업은 이 정책을 따라야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입찰 자격을 얻고 금융지원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공기업 경영진은 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조합원들에게는 ‘상생적 노사관계’, 즉 그 해에 노동쟁의를 일으키지 않으면 연말에 가장 높은 등급으로 성과급을 주어, 산업현장에서 건강한 기능을 할 수 있는 노조집행부가 들어서지 못하게 했다.
정부 정책만이 절대 교리였기에 어떤 다른 얘기는 있을 수 없었다. 훌륭한 정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감사원은 공공부문 경영혁신, 올바른 노사관계 정립과 책임경영체제 확립 및 국가경쟁력 제고에 중점을 두었고, 이에 경영진은 경영혁신·구조조정 실현과 협조적 노사관계 유지에 사활을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이나 편리나 공공이익은 그냥 공문서상 의미 그 이상도 아니었다.
지하철 경영진들은 ‘고객중심 경영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강박적이며 경쟁적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도시철도에서 성탄열차를 운행하면 지하철에서는 신년열차를, 저쪽에서 문화열차를 운행한다면 여기서는 어린이열차를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불필요하게 많은 인원임에도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며 야단치던 언론들은 변화하는 지하철에 박수를 쳤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는 늘 구조조정 대상이었으며, 예산을 축내는 불필요한 잉여 인원이었다. 지난 ‘국민의 정부’에서 ‘국민’이 되지 못함에 분노를 느꼈다. 잘못된 처사에 대한 분노는 때론 저항이 되었고 이 저항에 대해서 정부는 번번이 열패감을 안기고는 했다. 저항이라는 형식의 참여요구가 이 체제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체념하게 되었고, 체념은 직장에 무관심하게 했다. 이는 곧 노동자 개개인이 갖고 있을 창조적 잠재능력을 회사와 사회를 위해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하철 안전시스템은 이상 없는데, 현장 직원들이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에 더욱 피해가 컸다는 대구지하철공사 사장 말에서, 우리 사회 상층공직자들이 어떤 인간됨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경영진이나 노조를 가리지 않고 각 영역에서 최고 자리를 모두 소인배들이 차지하게 만든 것은 바로 김대중 정부였다.
학교, 일터 등 사회 곳곳에 그나마 남아있던 인간 영역은 시장 질서로 획일화됐다. 개인이 지닌 잠재성을 말살하는 광풍 한가운데 돈이 있었고, 사람은 효율적인 경제체제를 위해 조정할 수 있는 한 요소였을 뿐이었다.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돈만을 위해 끊임없이 뛰어다녀야 했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심각한 좌절감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탈락자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자신이 탈락했음을 인정하기 어려웠고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지만 이 사회는 그 이의를 받아들일 제도도 갖추지 않았다.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정치적 자원을 동원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무력감을 더해주는 커다란 벽이었다. 사회구조에서 받은 심한 박탈감이나 절멸감을 순기능으로 해소할 수 있는 온정주의적 풍토나 제도가 없을 경우, 그 분노가 어떤 방향으로 분출될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좌절의 직접 원인을 인식할 수 없었던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노숙자가 되거나 비슷한 처지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사람들조차 아무런 수를 써볼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강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번 참사와 같은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비극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기풍이 만들어낸 일이다. 엽기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잔악한 폭력성은 선천적인 성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학습·축적된 측면이 강하다. 지나친 경쟁 강요는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증가시킨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를 각박하게 만들고 긴장상태를 일상화한다. 대구 참사는 바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정치·사회적 풍토에서 일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전동차를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바꾼다, 겁에 질린 기관사를 구속한다, 지하철역 구조를 바꾼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좌절의 원인인 사회 불의를 줄이는 것이다.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사회에서 사람대접 받고 있다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회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동료들은 복권이 당첨되면 우선 직장에 사표를 쓰고,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들 마음 속에 이런 불신과 무력감이 자리잡고 있는 한 어떤 처방도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할 수 없다. 무엇이 이런 참사를 불러일으켰나 차근차근 되짚어볼 때다. 참으로 돌아가신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어떤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장경태/서울지하철공사 1991년 입사·현재 신림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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