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소식마당 > 언론보도

 

[한겨레21] 한반도 ‘복덩이’가 놓인다
운영자
360 613  /  0
2002년 09월 16일 11시 25분 50초
한반도 ‘복덩이’가 놓인다

군사적 긴장완화의 상징 경의선 착공… 개성공단-인천공항 연결로 경제적 이익도 어마어마

사진/ 북한의 동족 바닷가를 달리는 동해연선. 이제 이 열차로 강릉과 삼척, 울산과 부산을 갈 수 있게 된다. (조선)

“경의선 철길을 잇자. 군이 서로 바라보고 있으면 주적 개념을 갖게 된다. 공사에 남북한 유휴 군인력을 동원하자.”(2000년 6월14일 남북정상회담)

“상급회담에서 경의선 착공일자를 빨리 합의하라. 착공일만 결정되면 2개사단 병력 3만5천명을 즉시 투입하겠다. …판문점은 50년대 유산이며, 경의선을 따라 남북을 오가는 새 길을 내야 한다.”(2000년 8월12일 남쪽 언론사 대표단과의 만남)

지뢰밭 비무장지대가 비단길로

경의선 복원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들이다. 그가 김대중 대통령과 언론사 사장단에게 약속한 지 2년이 흐른 지금 경의선 연결은 성큼 현실로 다가섰다. 추석을 이틀 앞둔 9월19일 남북은 동시에 경의선·동해선 철도, 도로를 잇는 첫 삽질을 시작한다. 경의선 철도는 올해 말, 도로는 내년 봄까지 잇기로 남북은 뜻을 모았다. 동해선 철도와 도로의 일부 구간은 1년 안에 잇기로 했다. 이에 앞서 금강산 육로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등에 쓰일 동해선 임시도로 1.5km 구간은 11월 말에 모습을 드러낸다. 서해와 동해에서 끊어진 국토의 허리를 다시 이음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둘로 갈라져 있지만 물리적으로 ‘분단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앞으로 남북이 뜻을 모아 통일열차를 기쁘게 타고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남북한의 통일기찻길이 열리면 남북한 상호교류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기는 남쪽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경의선 연결은 남북교류사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에 틀림없다. 이는 모두가 갈망해온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155마일에 걸친 지금의 비무장지대에는 100만발이 넘는 대인·대전차 지뢰가 묻혀 있다. 경의선 남쪽 복원구간 일대 7만3천여평 지역에만도 10만여발의 지뢰가 더러는 숨겨져, 더러는 고개를 내밀고 있다. 북한에도 남쪽 못지않은 지뢰가 널려 있을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지뢰밭 천지였던 비무장지대가 일부 구간이나마 남북한 인적·물적 왕래를 위한 비단길로 화려하게 변신하게 되는 셈이다.

지뢰 제거는 남북 양쪽 군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지뢰 관련 자료도 교환해야 하고, 대전차 지뢰 등과 같이 폭발력이 큰 것을 파내려면 핫라인을 통한 사전 통보절차 등도 있어야 한다. 처음으로 군 상호간의 실질적인 교류가 성사되는 장면이다. 또 경의선 연결 공사는 비무장지대에 과도하게 집중된 양쪽 군 시설이나 재래식 병력과 화력의 후방 분산 배치를 불러온다. 이 과정에서 북한 군부와의 고위급·실무급 대화 채널도 가동돼 대화·화해 분위기가 받쳐준다면 남북 군비 축소까지 기대할 수 있다. 남북 군부가 이렇게 사이좋게 나가면 부시 행정부도 북한을 마냥 구석으로 몰아세울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산가족들의 염원부터 먼저!

경의선은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 철도나 도로를 잇는 지점은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로 쓰일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북한은 금강산에 상설면회소를, 남쪽은 금강산에 임시면회소, 경의선 연결 지점에는 상설면회소를 각각 세우자고 줄곧 주장해왔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금 완강히 버티고 있지만, 일단 철도·도로가 이어지고, 인적·물적 왕래가 잦아지면 북한 당국도 이산가족들의 염원을 우선적으로 풀어줘야 한다는 남쪽 당국이나 국민의 압박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다. 남쪽 당국은 이산가족들의 고령화를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노구를 이끌고 반나절이나 걸리는 자동차와 배를 갈아타며 금강산까지 가는 것이 이산가족들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북한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한 당국도 끝까지 인도적인 요구를 외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사진/ 남쪽 지역의 경의선 공사. 올해 말까지 북쪽 지역 노선과 만나게 된다. (이정용 기자)

경의선은 남북 정상이나 고위급 외교 통로로도 각광받을 것 같다. 당장 김 위원장이 서울에 내려올 경우 경의선 도로나 철도를 이용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게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세계 언론의 눈과 귀를 끌기에 적합하고, 경호하기에도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문산∼장단∼개성 도로 구간은 이미 남북 고위급 특사나 밀사들이 서울과 평양을 오갈 때도 많이 이용했던 익숙한 통로다.

경의선 연결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우선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경제공동체 형성의 첫 단추가 여기서 끼워질 것으로 보인다. 안병민 교통개발연구원 연구원은 “남북 연결 철도는 양쪽의 산업협력, 교역확대를 촉진할 뿐 아니라 해상운송 물동량을 일부 흡수해 물류비를 줄이고 남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싸게 들여올 수 있는 이점을 비롯해 남쪽 사양산업의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전반의 고도화를 촉진하는 데도 경의선이 효자노릇을 할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경의선 도로망은 개성공단의 활성화와 평양공업단지와의 물자 교역을 늘리는 요긴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진출 교두보 될 개성공단

사진/ 비무장지대의 끊어진 철길. 녹슨 다리에서 기적소리가 울릴 날이 머지 않았다.

통일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도 솔깃하게 들린다. “개성공단을 통과하는 경의선은 인천공항이 허브항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개성공단∼영종도 경제특구∼인천공항을 연결하면 남이나 북이나 여러모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비행기로 3시간 이내에 100만명을 넘는 도시가 40∼50개 모여 있다는 사실은 장기적으로 물류 등과 관련해 중요하다. 남쪽 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하는 데 개성공단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중국시장이 굉장히 큰데 중국의 오지까지 상품을 팔기에는 경의선 철도가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이처럼 경의선과 개성공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공단에는 이미 부산의 신발업체와 대구의 섬유업체를 중심으로 500여개 업체가 입주를 신청해놓은 터다. 공단 조성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수출경쟁력을 상실한 남쪽의 사양산업들이 고부가가치를 낳는 첨단산업구조로 옷을 갈아입을 전기를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전력공급 문제다. 남쪽에서 전기를 끌어다쓰는 게 불가피한 상황인데, 부시 행정부가 이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남쪽 당국의 고민이다. 부시 정권은 전력공급이 핵사찰 협상 등에서 대북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아니라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남쪽 기업들한테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어서 미국이 무턱대고 반대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공단사업 주체인 현대아산쪽은 북한을 통해 러시아 지역의 석유 및 가스를 들여오기 위한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구상하고 있다. 길게는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개성공단에 전기와 가스 등을 공급할 작정이다.

사진/ 비무장지대 전쟁의 흔적들. 지뢰제거는 군 상호간의 실질적 교류를 성사시킬 것이다.

경의선 복원, 개성공단사업 등은 북한 경제개혁조처와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급선무인 북한 당국으로서는 개성공단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현대아산쪽은 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1∼2년 안에 제조업 2만6천명, 서비스업 1만7천명, 1차산업에 3천명을 합해 모두 4만6천명의 북한 노동인력을 데려다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사정 탓인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성공단에 거는 기대도 매우 커보인다. 현대아산의 고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개성공단을 현재의 2천만평에서 2억평까지 넓히자’고 제안하는 등 적극적 의지를 표명했다”며 “이 규모라면 남쪽의 강화도에서 구름다리로 개성공단을 오갈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일본과 관계개선하는 속내

흥미로운 대목은 김일성 주석이 김정일 위원장보다 더 일찌감치 경의선 연결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북과 남이 합작만 하면 돈벌이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의주와 개성 간 복선화 공사를 하여 중국 상품을 남쪽에 수송하면 연간 4억달러 이상의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도 한해에 15억달러 이상의 돈(통과료)을 벌 수 있습니다.”(‘김일성 저작집’ 제44권) 김 주석이 1994년 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의장과 만나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북한 지도부가 남북한 철도연결을 미리부터 계획하고 있었고,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타산까지 고려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쩌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금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 김 주석의 유훈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 당국이 러시아를 비롯해 일본과 정상외교를 추진하고 있는 속내를 읽기가 어렵지 않다.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역시 경제재건에 긴요한 긴급 자금수혈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남쪽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잘 아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일본과의 수교 배상금에 욕심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다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에 따른 수혜를 최대한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측면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극동지역에서 만나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잇는 문제와 관련해 깊은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소리방송>은 9월3일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하산∼두만강∼원산∼평강까지 (철도를) 연결하는 문제가 최종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TKR은 부산에서 출발하여 서울을 거쳐 경의선 구간을 이용한 노선과, 역시 부산에서 떠나 경원선을 복원하여 구축되는 노선, 즉 서울 용산역을 거쳐 평강·원산을 지나 두만강역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일컫는다. 아직 남북 사이에 경원선 복원문제는 협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쪽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진두지휘 아래 경의선이나 동해선 연결과 관련해 무언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의선이나 경원선이 대륙철도망과 이어지면 한반도는 반도국의 지위에서 벗어나 동북아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기술적 난제들 수두룩

물론 그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기술적 난제들도 수두룩하다. 급한 것은 북한쪽 인프라의 대대적인 정비다. 당장 경의선이 이어져 물동량이 늘어나도 북한의 부족한 전력과 노후화된 철도·도로 사정으로 이를 다 소화하기 어렵다. 정성임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의 주요 철도의 평균속도는 시간당 23.0∼60.3km이며, 평양∼신의주 간 최고급 급행열차의 속도도 약 60km로 서울∼부산 간 새마을열차 속도 107km에 견줘 56%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이런 여건 아래에서는 남북철도의 연계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의선·동해선 복원의 유·무형 가치는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남북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난제들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쓰기 목록 추천 수정 답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