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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노]철도공사에 도입된 ERP '독'일까 '약'일까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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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3월 21일 01시 48분 30초
매일노동뉴스
<b>시스템 불안정, 전산입력 '혼선'…노조원 반발 심해</b>

생산, 판매, 인사, 회계, 자금, 원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경영자원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시켜 효율을 극대화시킨다는 전사적인적자원관리(ERP). 민간 기업을 시작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던 이 통합 시스템은 병원, 전기, 철도 등 공공부문으로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다.
ERP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대개 정보 인권과 관련된 논란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전자 감시·통제 시스템이라는 지적이 힘을 더해가고 있다. 특히 사익추구에 따른 공공성 후퇴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구조조정 시스템으로 이용되면서 노동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바로 노조가 반발하는 지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철도공사의 ERP 도입'을 중심으로 전자감시 시스템 문제를 2회에 걸쳐 살펴본다.

<b> 1. 철도공사서 불붙는 ERP 논쟁 </b>
2.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철도공사에서 디젤기관차 차량정비 일을 하고 있는 김진영(32·가명) 씨는 지난 1월 급여 때문에 매우 곤혹스러웠다. 급여가 하루 밀려 지급되는 바람에 카드와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된 것. 그나마 하루 늦게 지급된 급여도 6만원 가량이 비었다. 국민연금과 노조비가 두 달치나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사실 김씨는 철도공사에 직접고용된 비정규직이다. 그는 자신을 '단기 기간제'라고 소개했다. 공기업에 직접고용돼 있지만 그의 급여수준은 최저 임금에 가깝다. 그가 한달 내내 일해 받는 기본급은 64만원이고 식대, 위험수당 등 수당 28만원을 합한 월급총액도 92만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국민연금 등 4대 보험료를 차감하면 급여는 80만원대로 떨어진다. 게다가 그 돈도 보름 단위로 나눠 받는다. 그는 “동료 중에는 급여로 10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기도 했다”며 “아기가 있는 사람은 분유 값 걱정을 한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그가 분노하는 이유는 비단 돈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차별에 대한 항의와 새 시스템 도입에 따른 반발이 복합돼 있다. 김진영 씨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회사에서는 월급 하루 정도 늦게 나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당장 월급이 나오지 않아 생활이 어려운데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지급할 수 없다는 말만 했어요. 나중에 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사과도 하지 않습니다. 1월부터 도입하면서 비정규직에게는 작동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에 그냥 들어갈 수 있다(접속할 수 있다)고만 했죠. 대책도 없으면서 그냥 코비스(KOVIS)에서만 확인하라고만 했어요. 사원번호를 눌러도 (접속이) 안 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b> ‘너무나 비인간적인 시스템’ </b>

그리고 또 다른 김진영 씨는 수없이 많았다. 3천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모두 같은 일을 겪었고 다수의 정규직 역시 시스템 오류로 급여를 덜 받는 경우가 빈번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런 혼란은 2월에도 이어졌고 3월 급여지급일인 25일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혼란의 근원지는 올해 1월2일부터 도입된 새 시스템, 바로 철도공사가 'KOVIS'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이다. 사실 ERP에 대해 철도노동자들의 반응은 ‘혼란’을 이미 넘어섰다. 일각에서는 ERP가 최근의 철도노조의 선거 판도를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조합원들이 이전 집행부의 ERP 시행 합의를 문제 삼으면서 최근 출범한 새 집행부에 표를 몰아줬다는 주장이다.

제로 반발 목소리는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또 목소리는 업무량 증가부터 효율성 문제를 제기하는 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시스템이 복잡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사용하지 못하고 동시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김진영 씨는 이를 두고 “(노동자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혹평했다.

수도권의 한 차량기지 전기분소에서 일하고 있는 A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5명의 동료들의 작업을 컴퓨터(KOVIS)에 입력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했다. “전에는 작업을 다녀와서 일기 쓰듯이 작업일지를 썼는데 지금은 먼저 입력하고 나가야 합니다. 입력해 들어가는 과정이 6~7단계나 될 만큼 복잡해서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으면 작업도 못합니다. 선로에 장애가 나서 빨리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입력을 해야 합니다. 반드시 2명이 1조를 이뤄서 작업에 나가야 하지만 어떤 때는 한 사람만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입력해야 하니까요.” A씨의 말이다.


<b> ‘기계가 하는건지 사람이 하는건지' </b>

그의 지적은 거침이 없었다. 예산낭비, 효율저하와 같은 말이 나오기도 했다. 예산낭비라는 말은 이전에 사용하던 통합시설관리시스템을 전면 중단하면서 축적해 놓은 자료들을 폐기처분했다는 지적이었다. 돈을 들여 자료 조사를 다시하고 조사가 부실하다보니 시스템 효율이 떨어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ERP에 대한 거부감은 두려움에서 찾아볼 수 있다. A씨의 말을 더 들어보자. “작업완료 뒤 그 작업에 따른 인공(투입인력)을 산출하면 곧바로 비용이 뜹니다. 인공이 얼마가 들어갔으니까 그에 따라 얼마의 돈이 된다는 식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있고 봄날 일하는 것과 추운 날 일하는 것은 노동강도가 다른데 싸그리 무시하는 거죠.”

입사 15년차로 정비 일을 하고 있다는 B씨는 아예 KOVIS 입력화면을 보여줬다. ‘부속장치 15분, 변속장치 15분, 회전장치 15분, 제어장치 15분 전기장치 10분, 대차 일상유지보수 20분’. 각 작업에 소비되는 시간과 비용이 표시돼 있다. B씨는 “열차 7량 짜리에 승강문이 28개인데 이걸 다 점검하는데 15분을 줬다”며 “어떤 기준으로 시간을 정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KOVIS에 들어가는 것, 로그인 하는 것 자체가 싫다”고 말했다.

한 조합원은 철도노조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오더가 떨어졌다. 표출기 불량. 두 시간 빡세게(열심히) 일했다. 코비스에 입력하니 작업단가 8천100원이 뜬다. 내가 전파사 직원이었다면 수리비로 8천100원밖에 못 받는다는 소리다. 이역 저역 온종일 불려다녀도 내 하루 일당 10만원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코비스는 잔인하다. 동료도, 선배도, 후배도 없다. 선배한텐 미안하지만 내 작업 총량을 늘리는 게 먼저다.”


<b> 성과평가 시스템 연동이 핵심쟁점 </b>

ERP가 도입된 이후 이처럼 구조조정과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은 불가피했다. 결국 도입하려는 쪽과 이를 막는 쪽의 충돌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1차 충돌은 지난해 3월 파업으로 나타났다. 사실 논쟁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도공사는 이미 철도청 시절이던 2004년부터 삼성SDS에 용역을 줘 ERP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그림 참조> 2005년 공사 출범에 대비한 작업이었다. 노조는 이보다 훨씬 뒤인 2005년 9월 용역을 맡겨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3월 파업 뒤 공사와 노조는 4월1일 ERP와 관련한 협약을 맺었다. ERP를 인권침해 등 현장 통제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 인력감축과 구조조정 수단이 아닌 성과를 조직개혁과 근로조건에 이용할 것, 개인정보 유출을 차단할 것 등 5개 항목이었다. 항목에는 또 프로그램 구축 대상과 범위, 산출 자료 활용범위를 노조와 협의하고 자료를 통해 인사상 불이익이 없을 것과 노사협의회를 구성해 도입·운영 논의를 할 것을 규정했다.

물론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핵심 쟁점은 ERP와 성과평가 시스템의 결합여부다. 축적된 자료가 성과평가와 연동되는지 여부가 구조조정의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시스템의 연동을 부정하는 논거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b> 성과관리 처음부터 ERP 과제 </b>

우선 공사는 첫 출발부터 이를 구상했다. 지난 2004년 9월 철도청이 작성한 ‘경영혁신 ERP사업 제안 요청서’에는 이같은 사실이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프로세스 혁신(PI)과 정보기술의 효과적인 연계를 통한 경영혁신 필요하다”며 △업무개선과 성과관리를 위한 관리원가제도 도입 △다차원 수익성 분석 정보의 제공을 ERP 과제로 삼았다. 이듬해 6월17일 ‘ 경영혁신 ERP사업 킥-오프 착수보고회’ 자료에서도 ‘성과관리’를 ERP 과제로 명시했다.<표 참조>

특히 주목해야 할 자료가 있다. 지난 2005년 5월 시작돼 1년 여 동안 수행된 ‘조직진단 및 직무분석을 통한 철도공사의 조직운영 혁신방안 프로젝트’(조직진단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철도공사의 조직구조 및 인사제도의 혁신과 인력운영 합리화 방안 수립을 주 내용으로 진행됐다”고 밝힌 것처럼 이른 바 철도공사의 청사진이라고 할 만하다. 이 용역에 따라 지사개편이 이미 이뤄졌고 성과평가를 중심으로 한 신인사제도 모습 또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3월초 조직진단 프로젝트 팀이 ERP팀과 협의를 했다. 이 때 프로젝트 팀은 인사제도 설계를 하는 도중이었다. 바뀌는 인사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쟁점사안을 협의하는 자리였다. 물론 이 인사제도는 조직진단 프로젝트에 직무성과급, 연봉제 확대 등 성과평가로 명시돼 있다. 또 조직진단 프로젝트는 대규모 외주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상자기사 참조>


<b> 다시 불붙은 ERP 논쟁 </b>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다시 공사와 노조 사이의 2차 충돌 움직임도 일고 있다. 철도노조가 당장 ERP 가동을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은 그 방증이다. 노조는 지난 3월 14일 이런 내용의 공문을 보내고 중앙노사협의회를 요청했다. 노사협의회 안건에는 KTX·새마을호 승무원 문제와 각 직종별 구조조정 문제도 함께 포함됐다. 노조는 ERP 중단을 요구한 근거로 지난 4월1일 맺은 협약에서 ERP 도입과 운영과 관련해 노사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는 것을 들었다.

노조 관계자는 “4월말까지 시험가동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ERP가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노사협의체 구성 약속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중단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교섭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현장 투쟁을 벌여야 하지 않겠냐”며 “임금협상 투쟁과 묶어 특별단체 협약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계희 기자/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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