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찍은 ‘철로위의 여성’
여성노동영화제 ‘소금’박정숙 감독
입환(열차를 떼어 다른 열차에 붙이는 일)을 하는 한 철도 여성노동자는 4년 만에 임신한 첫 아이를 유산했다. 하루종일 자갈밭을 걸어다녀야 하는데다 쇳덩이를 붙잡고 힘을 많이 써야하는 일 때문이었다. 매표원으로 일하는 다른 여성 노동자는 우는 아이를 떼놓고 일하러 나왔다가 아이가 심하게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 철야 근무중이라 교대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카메라에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으러 가서 그는 함께 울었다. “나의 얘기였다.”
노동자영상사업단 ‘희망’의 대표로 일하는 박정숙 감독. 내달 2일부터 열리는 여성노동영화제의 개막작품 <소금>에 관한 뒷얘기를 하는 박 감독은 둘째 아이를 가진 임산부였다. <소금>은 그가 이 아이를 갖기 직전 열 달 동안 철로 위를 걸어다니며 만든 철도 여성노동자들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기획 단계부터 자신이 직접 작업을 시작해 촬영과 편집을 마친 첫 영화이기도 하다.
“3만명의 정규직 철도 노동자 가운데 1500명 정도가 여성입니다. 임신한 철도 여성노동자 가운데 절반이상이 유산을 경험했고, 승무원으로 일하는 여성은 거의 100% 유산을 경험해 봤다고 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은 아이를 낳기도, 키우기도, 일하기도 힘듭니다.”
박 감독이 영화를 찍는 도중에도 아기를 유산한 철도 여성노동자가 있었다. <소금>은 이렇게 ‘차별과 빈곤’ 속에 살아가고 있는 여성노동자를 가리키는 제목이다. 여성노동자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지만 주변에 늘 있기에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뜻에서다. 박 감독은 꿈속에서 ‘소금’이란 단어를 보고 이를 영화의 제목으로 정했다고 하지만, <소금>은 그에게 여성노동자의 삶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해 준 첫 작품이란 의미가 있다. “카메라를 든 지 10년 만에 내가 진정 누구에게 이 카메라를 들이대야 할 지 확신이 생겼다.”
박 감독이 처음 카메라를 든 것은 지난 1994년 노동자뉴스제작단에 입단하면서부터였다. 노동현장의 소식을 전달하고 노동자를 위한 홍보·교육용 영상물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는 원래 대학 졸업후 경남 마산의 공단에 ‘위장취업’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현장 운동이 좌절된 뒤 서울로 올라와 우연한 기회에 한국영상원에서 영상제작 실무를 배우며 영화감독의 길에 발을 디뎠다.
96년 노동자뉴스제작단 멤버 가운데 박 감독을 포함한 4명이 독립해 지금의 노동자영상사업단 ‘희망’을 설립했다. 오랜 시간 불편한 자세로 일해야 하는 자동차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기록한 <요통 당신은 안전하십니까>(1997), 울산공단 화학 노동자의 직업병과 근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의 지능저하 문제 등을 제기한 <담장안 직업병 담장밖 공해병>(1998), 현대차에서 정리해고 당한 100여명의 식당 여성노동자를 다룬 <평행선>(2000) 등이 ‘희망’에서 박 감독이 제작한 노동관련 다큐멘터리들이다. 2002년에는 <소금>의 전신 역할을 한 철도노동자의 건강문제를 다룬 다큐 <죽음의 터널속으로>를 만들었다. 이를 제작할 당시 박 감독의 남편도 철도노조에서 일을 했다. 지난해 발표된 <소금>은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와이드앵글 부문 본선 작품으로, 인디다큐페스티벌과 수원·인천 인권영화제 등에도 출품됐다.
“활발해진 우리 사회 여성운동이 현실과 동떨어진 엘리트 여성운동보단 철저히 소외된 여성노동자에게 관심을 갖는 운동이었으면 좋겠어요. 여성운동의 열매도 이젠 여성노동자에게 더 많이 돌아갔으면 좋겠구요.”
박 감독은 올해는 카메라를 메고 소록도에 사는 할머니들을 만나러 갈 계획이다. 한센병에 걸린 이 곳 할머니들은 젊었을 적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강요받았다. 복대를 매고 몰래 아이를 뱃속에서 키우다 낳아 육지로 보낸 경우도 있었다. 박 감독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온 이 여성들이 받은 인권유린 문제에 렌즈를 맞추겠다는 생각이다.
글·사진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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