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자까지 동원된 불법적 청계천 대집행
청계천로는 지금 전쟁 중
29일 밤부터 철야농성에 들어간 전국노점상연합회(전노련) 회원 1500여명이 30일 오전 이 시각 현재, 청계천로 4가에서 8가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며 전경 및 용역업체 직원들과 대치 중에 있다.
더구나 노점상과 대치 중인 용역업체 직원 2천여명은 서울시가 고용한 용역 회사로 이들 중 1/4 정도가 서울역 노숙자들이어서 또다른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와 노점상 철거 용역 계약을 맺은 ㄷ용역 회사는 지난 28일 폭력 사태를 빚었던 상도2동 철거를 맡은 회사이기도 하다.
<인터넷한겨레>는 용역 회사의 서울역 노숙자 모집 현장과 청계천 집회 현장을 입체 취재했다.
30일 새벽 3시 20분, 관광버스 4대가 서울역 앞에 도착했다. 서울시로부터 청계천 노점상 단속 용역을 발주받은 ㄷ철거전문회사 직원들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군데군데 모여있던 노숙자 50여명이 4열 횡대로 줄을 섰다.
노숙자 ㄱ아무개씨는 "서울역에 난장을 깐 사람들은 3시 10분 무렵부터 모이기 시작하는데 노숙자 쉼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4시가 다 돼서야 도착하니까 그 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난장을 깐다'는 말은 길거리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는 것을 가리키는 노숙자들의 은어다.
버스 문이 열리지 않는 동안 용역 회사 직원들은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아니, 서울역에 일단 모였다가 간다니까... 일단 서울역으로 와."
책임자급으로 보이는 사람은 운전 기사들을 모아두고 이동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동대문에 근처에 가서 우리가 내려달라는 곳에 내려주면 됩니다."
4시 정각이 되자 노숙자들은 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4시 10분에는 다른 곳에서 관광버스 한대가 서울역 앞에 도착했다. 버스에는 역시 노숙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노숙자들만 적어도 250여명 정도는 달한 셈이다.
하지만 버스는 다시 20여분 지난 시각에야 동대문을 향해 출발했다. 그 동안에도 용역 직원들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뭐? 작전이 바뀌었다고? 알았어. 다시 전화해"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물었다.
"그럼 병력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 그냥 대기시킬까?"
'노점상 집회 단속'과 '노숙자'들을 가리켜 이들은 '작전' '병력' 이라고 일컫고 있었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이렇게 '작전'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11월 15일 새벽, 이들 용역회사는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자 250여명을 모집한 적이 있다.
그때도 역시 청계천 노점상 단속이 이유였다. 하지만 서울역 출발 직전에 '작전'은 취소가 됐다.
"그 때 일당 5만5천원을 받고 (청계천에) 가기로 했었다"고 밝힌 한 노숙자는 "갑자기
서울시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전국에서 노점상연합회 회원들이 400대 버스를 타고 올라오고 오고 있으니까 오늘 계획은 취소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얘기에 대해 "용역회사 직원에게서 직접 들었으니까 알지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다.
노숙자들을 모집하는 철거 공고는 대개 서울역 근처 오락실 문이나 남대문로 지하보도에 붙는다. 30일 노점 철거 모집 공고 역시 전날 서울역 근처 오락실 2곳에 붙었다. 시간을 촉박하게 두고 공고를 붙이는 것은 '보안' 상의 문제 때문이다. 공고가 나더라도 철거 대상 '장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15일 노점 철거 계획처럼 철거 일정이 밖으로 새나가면 미리 알고 지방에서 지원 세력이 불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1월 초 이후 ㄷ 용역 회사의 철거 작업에 수 차례 나갔다는 노숙자 ㄴ아무개씨는 "가끔은 전날 저녁 오락실에 가보면 알 수 있을 때도 있는데 대부분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모를 때가 많다"고 말했다.
30일 청계 노점상 철거 계획도 29일 오후에야 서울역 인근 오락실에 공고가 붙었다. 한 노숙자는 29일 저녁 한 오락실에 앉아있는 ㅇ아무개씨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서울역 노숙자들을 모집하는 총책"이라고 말했다. 한마음공동체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노숙자들을 모집하는 ㅇ씨는 서울역에서 그나마 '젊고 건강한' 노숙자들을 골라내는 역할도 한다.
4시 20분, 노숙자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서울역 앞에서 U턴을 해 동대문 일대로 항했다. 서울역 맞은편 대우빌딩 앞에는 이미 9대의 관광버스에 용역회사 직원들이 타고 있었다.
시간 간격을 출발한 버스는 4시 50분 무렵, 신당동 네거리와 동대문운동장, 청계천로 일대에 나뉘어 배치됐다.
같은 시각 청계 4가~8가 일대, 각 네거리마다 5곳에서 집회 중이던 전국의 노점상 1500여명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청계천 복원 후 노점상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이들 노점상은 29일 밤부터 철야 농성 중이었다.
기자를 만난 한 노점상은 "용역회사가 공격을 해오기로 한 시간이 새벽 3시라고 알려졌는데 왜 오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청계 8가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다는 ㅇ아무개씨(56)는 "정말 노숙자들이 온단 말이냐. 잘못 알았겠지.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고 말했다.
이들 노점상이 집회에 나선 것은 "노점상권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한 서울시 고위간부의 말이 지켜지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을 하더라도 노점 상권은 보장해주겠다"고 밝혀왔으며 서울시 건설국장은 지난 11월 중순 전노련 의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 전체 5m인도 너비 중에서 3.5m까지 노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내주겠다"는 구체적인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주 갑자기 입장을 바꿔 "29일까지 인도를 비우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노점 집기를 들어내겠다"고 밝혔다.
시간이 6시 30분을 넘으면서 시민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노점상들은 쇠파이프로 바리케이드를 두드리고 가스통을 불 속에 던지는 등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7시 4분, 용역 직원들과 노숙자들이 모습을 나타내자 집회 현장의 불길과 함께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가스통과 타이어 등을 태우면서 검은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고 산발적인 방화는 청계 7가에서 9가까지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가스통 터지는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길을 멈추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사태를 지켜보았다.
이 날 집회 진압에 투입된 인원은 전경과 요역 직원을 합쳐 1만8000명에 달했고 시청. 구청 공무원도 1천여명이 현장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의 현장 지휘는 성동경찰서장이 직접 맡았다.
용역 직원들은 청계천로 전체 구역을 3개 구간으로 나눠 4개팀을 구성해서 현장 진압에 나섰다.
서울시가 작성한 청계천로 철거계획서에는 서울역 노숙자들을 모집한 총책인 ㅇ아무개씨가 2팀장으로 이름이 올라있었다.
ㅇ씨는 이 날 철거 현장에서 노숙자들을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먼 산 쳐다보고 있으며 죽어, xx놈들" "바리케이드만 뜯어내면 되는데 뭐가 겁니서 물러서냐" 는 등의 말을 했다.
그는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고 있는 노숙자들 가리키며 "쟤 돌려보내"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는 도중에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노숙자의 팔을 잡아 '돌아가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김명도 민중연대 서울중구지구 의장은 "처지가 별반 다르지않은 노점상과 노숙자의의 싸움을 부추기는 것은 서울시의 비열한 짓"이라고 말했다.
한 노숙자는 "서울역 노숙자들 중에는 노점상이나 철거민이나 우리와 처지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며 철거 작업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렇지만 당장 일당 벌이를 해야 잠자리라도 구할 수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8시 5분경 불길이 사그라들면서 청계 9가쪽으로 물러섰던 노점상들이 다시 7가로 진출했다.
바리케이드를 걷어낸 노숙자들은 뒤로 물러섰다. 돌멩이를 던지고 가스통에 불을 붙여 화염 방사기를 만든 노점상들은 노래 소리를 한층 높였다.
"그래, 너희에겐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경찰, 군대와 깡패있지만..."
외세와 자본, 경찰과 군대... 이제 정부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노숙자라는 힘없는 이름 하나를 덧붙였다.
11월 30일 아침, 청계천로에 치솟아 오른 검은 불길 속에는 인간의 것이 아닌 자본주의의 차가운 얼굴이 감춰져 있었다.
김현 <인터넷한겨레>기자 hkim@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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