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에 '인권'은 있는가?
<주장> '위선의 권력'에 대한 저항은 시대적 필연
2003-11-21 오전 10:37:42
민주화된 시대를 내세우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게 <인권>은 없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본이 상실된 현실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권은 “위선의 권력”으로 자기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권은 천부적(天賦的) 권리가 된다. 이 권리를 포기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권력의 지속적인 속임수와 공권력을 빙자한 폭력,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권탄압은 그 권력의 정통성을 자신이 무너뜨리는 것이자, 그와 같은 권력의 교체를 향한 변혁운동의 발생을 필연적으로 가져온다. 노무현 정권은 지금 그 지점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권탄압, 민중의 저항 필연적
이는, 지난 해 봄부터 이 땅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던 서민대중들의 새로운 역사적 각성과 그 각성의 정치적 관철과정인 민주혁명의 결실로 태어난 정권이 그 혁명의 정신을 하나씩 배반하고 반동화(反動化)하면서 도달하게 된 비극적 현실이다. 그러나 그 반동의 역사를 수수방관하면서 그대로 허용할 정도로 이 나라 민중들의 힘이 더 이상 무력하지 않다. 민중의 숨결과 함께 하지 않은 권력이 민중의 저항에 직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완벽한 오산이다.
오늘의 위기가 개혁정치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거대한 반격으로 인한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진상의 중심에는 기득권 세력 내부의 패권 장악을 위한 권력투쟁을 개혁으로 위장하고, 정작의 개혁과제의 요구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기만과 대응의 포악성이 존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동자ㆍ농민들의 시위와 파병반대, 부안 사태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시국과 관련하여 “지금이 정부에 대한 저항권을 발동할 시기인가?”라면서 이른바, “민주화된 시대의 현실을 퇴행시키고 있는 시위문화 비판론”을 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대화와 타협의 틀을 넘어서고 있는 저항운동의 시대적, 윤리적 모순을 지적하고 나선 셈이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의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파괴한 것은 정의를 요구하는 양심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이들의 분노에 대하여 기만적인 대응과 반인권적 폭력 진압으로 일관한 노무현 정권 자신이다. 시대착오적 행태를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노무현 정권이다. 원인과 결과를 호도하고 폭력적 진압에 대한 정당방위적 대응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오만과 관료주의적 독선으로 사태 악화
가령 현재 핵폐기장 설치문제로 격렬한 진통을 겪고 있는 부안의 경우, 중앙권력의 횡포에 대한 민중들의 정면 도전과 이에 대한 권력의 - 군사주의 통치시절에서나 볼 수 있는 - 반민주적인 긴급조치식 대응이 대치하고 있다.
부안사태의 핵심적 책임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반영하는 노력과 과정 없이, 정치적 오만과 관료주의적 독선으로 소위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환경 파괴를 초래할 위험도 높은 사안을 억압적으로 밀어붙이려 한 노무현 정권에게 있다. 노무현 정권은 오늘의 위기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제공자인 동시에 사태악화를 자초하고 있는 당사자인 것이다.
비밀 경찰력의 강화와 이로 인한 인권유린사태를 낳고 있음이 비판되고 있는 미국의 테러방지법을 본뜬, <치안유지법>에 해당하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는 상황도 노무현 정권이 이러한 법이 가져올 인권파괴의 가능성에 대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는 파시스트 권력으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국제사회의 제3세계 테러리즘은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할 때, 테러의 근본원인은 미국의 정복주의적 지배정책의 폐기로 제거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부 폭력적 양상으로 나타나는 민중들의 저항은 이들의 요구에 대한 외면과 정치적 독선에 근거한 <진압정책의 철폐>에서 우선 그 원인의 제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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