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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크레인과 도크속의 시신, 하늘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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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17일 09시 24분 52초
 

 

크레인과 도크 속의 시신, 하늘로 가다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씨 장례식, 2천여명 참석
  윤성효(cjnews) 기자  
▲ 김주익 곽재규씨 장례식이 16일 오전 부산 한진중 투쟁광장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되었다. 뒤에 보이는 크레인이 김주익 지회장이 고공농성을 벌였던 곳이다.
ⓒ2003 오마이뉴스 안현주
▲ 곽재규씨의 부인과 아들이 곽씨의 시신이 든 관 위에서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
ⓒ2003 오마이뉴스 안현주
그들은 그렇게 갔다.

살아서 156일간, 죽어서 한 달간 35미터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였던 김주익씨, 보름 뒤 그를 따라 죽은 것으로 보이는 곽재규씨가 나란히 하늘나라로 갔다.

'김주익·곽재규열사 대책위'가 전국노동자장으로 마련한 장례식이 16일 오전 부산 한진중 투쟁광장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되었다.두 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장례식을 치르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장례식에는 한진중 조합원과 전국에서 달려온 노동자 등 총 2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되었다.

15일 저녁 8시경 두 시신은 땅으로 모셔졌다 . 85호 크레인에 있던 김주익씨의 시신은 땅으로 내려왔고, 11미터 지하 도크에 있던 곽재규씨의 시신은 땅으로 올라왔다. 시신을 넣은 관은 민주노총 깃발에 씌워져 있었다.

오전 8시 유가족과 장례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제가 거행되었다. 시신이 무대 뒤편으로 나오자 유가족들은 관을 부여잡고 울었으며, 가족들은 "어떻게 보내노","처남, 이제 편안히 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는 투쟁광장. 한진중 조합원들은 '더이상 죽이지 마라'고 쓴 흰옷을 입고 나왔다.
ⓒ2003 오마이뉴스 안현주
단병호 "오늘따라 크레인이 높고,도크가 깊어보인다"

▲ 장례식에는 온갖 문구를 새겨넣은 100여개의 만장이 선을 보였다.
ⓒ2003 오마이뉴스 안현주
곧이어 투쟁광장에서는 영결식이 거행됐으며, 한진중 조합원들은 '더이상 죽이지 마라'는 구호가 적힌 하얀 옷을 입었다. 영결식은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민중의례에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참석자 모두는 불렀다. 차해도 한진중 특수선 지회장이 약력과 경과보고를 했으며, 김인수 사무장이 김주익씨의 유서를 낭독했다.

장례위원장인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오늘 따라 김주익 지회장이 올라갔던 크레인이 한없이 높아 보이는데 이는 동지의 뜻이 높은 것이며, 오늘 따라 곽재규 열사가 있던 도크바닥이 한없이 깊어 보이는 것은 온 몸으로 안으려 했던 고통이 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조사를 통해 "이제 두 동지는 우리와 길을 달리하고 있다"면서, "새 날은 오지 않았는데, 두 동지만 먼저 갔고, 노동해방의 길은 아직도 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대표는 "두 동지는 잠자고 있는 노동자를 일깨우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면서, "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전국 노동자들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은 "이 자리가 무슨 합동 결혼식장이냐. 두 노동자와 한꺼번에 장례식을 하는 것도 처음이고, 철골로 만든 교수대 앞에서 장례식을 여는 것도 처음이다"면서, "갑판 위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손배가압류와 해고·구속도 장례식을 함께 진행하자"고 말했다.

정의헌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장은 "김주익·곽재규씨가 어깨 걸고 가는데, 우리는 희망을 가꿔 나가자"고 말했다.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은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가 설움받지 않고 공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당당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민주노조의 깃발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 정의헌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장이 두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추도사를 하고 있다.
ⓒ2003 오마이뉴스 안현주
▲ 운구행렬은 한진중을 나와 부산역까지 거리행진이 펼쳐졌다.
ⓒ2003 오마이뉴스 안현주
김주익씨 누나 "동생 밑거름으로 좋은 회사 만들어달라"

이어 한진중 해고자(94년)였던 조길표씨가 조시를 낭독했다. 조시는 "한없는 그리움으로, 당신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에 /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흐느꼈던 나날들 / 이제는 소리 높여 당신들 이름을 부르고 … 우리들은 당신들 앞에 눈물로 설뿐입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중가수 박준씨가 무대 옆 컨테이너에 올라가 조가를 불렀으며, 유가족 인사와 헌화 순서로 영결식을 마무리지었다. 곧바로 운구 행렬이 이어졌는데, 운구 행렬은 고인들이 일했던 공장 현장을 돌아 회사와 4차선 도로 건너편에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에 다다르기도 했다.

김주익씨 누나 김경숙씨는 유가족 인사말을 통해 "처음 동생의 비보를 듣고 발걸음이 어떻게 놓이는지를 모르고 달려온 지 한 달이 지났고, 여러분들과 함께 투쟁가를 부르면서 정도 들었다"면서, "동생의 죽음을 여러분들은 밑거름으로 삼아, 앞으로 한진중공업을 전국에서 제일 가는 모범적인 회사로 만들어 달라. 그렇게 되면 동생도 기뻐할 것"이라 말했다.

운구행렬은 부산 영도 한진중에서 2km 가량 떨어져 있는 부산역 광장까지 이어졌다. '노동해방열사 김주익·곽재규'라 쓴 대형 만장을 앞세우고, 대형영정과 풍물패, 부활도 등의 순서로 거리행진을 벌였다.유족과 100여개의 만장이 그 뒤를 뒤따랐다.

부산역 광장에서 낮 12시경 노제가 거행되기도 했다. 소리타래의 추모노래 공연에 이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백순환 금속산업연맹 위원장, 안하원 부산민중연대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하기도 했다. '일터'의 추모굿 공연에 이어 분향과 헌화가 이어졌다.

김주익·곽재규씨의 무덤은 양산 솥발산에 만들어진다. 한진중노조 위원장인 박창수 열사가 잠든 곳에 함께 묻힌다. 김주익씨는 박창수 열사가 노조 위원장을 역임하던 시절 함께 간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빠 죽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 겁니다"
곽재규씨 딸 경민 양의 <아빠께 보내는 편지>

▲ 곽재규씨의 딸 경민양
ⓒ오마이뉴스 안현주
김주익·곽재규씨 장례식장은 울음바다였다. 곽씨의 딸인 곽경민 양이 <아빠께 보내는 편지>를 읽어내려 갈 때 장례식장 안은 흐느낌이 이어졌다.

"아빠! 경민이. 처음 소식 듣고 놀래고 믿기지 않았어. 아빠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 그 뒤 신문에 난 사진보고 사실인 줄 알았어. 아빠. 비 오듯 울었어. 얼마나 울었던지 몸이 다 아플 정도였어.

아빠 다니는 회사에 처음 들어와 봤어. 가슴이 아프고 당황스러웠어. 배 만드는 공장인 줄 알았는데, 여기는 무슨 전쟁터 같이 느껴졌어. 삭막했고, 내가 생각한 것과 너무나 달랐어. 이런 곳에서 일하는 줄 몰랐어. 아빠가 하늘 나라로 간 게 믿기지 않아. 아빠는 죽지 않았어. 엄마 가슴에, 우리 가슴 에 언제나 숨쉬고 있어. 아빠는 하늘 나라로 간 게 아니야.

아빠가 하늘 나라로 가기 며칠 전에 집에 왔을 때, 어딘가 불안해 보였고, 안절부절해 하는 모습이었어. 창문만 바라보고 계셨지. 그때부터 벌써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지 아빠. 오히려 당당함을 보여주지 그랬어.

아빠가 왜 그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하늘나라로 간 그 날부터 아빠가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주익이 아저씨랑 잘 지내고, 친구처럼 지냈잖아. 죽지 말고 더 노력해서 일을 잘 해결할 수도 있었잖아. 왜 죽음으로 모든 짐을 지려고 했는지 모르겠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아. 주익이 아저씨 생각하며 얼마나 슬퍼하고 가슴 아파했는지 알아.

아빠! 보고 싶어. 아빠와 장난도 치고 싶어. 아빠는 엄마 가슴 에, 우리들 가슴속에 있어. 아직 안 죽었어. 아저씨들, 아빠 죽음 욕되지 않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겁니다. 두 번 다시 아빠와 같은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정말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아빠! 이 편지 마무리 할게. 이것 하나는 분명해. 지금도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할꺼야.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지켜봐줘. 아빠 안녕. 큰 딸 경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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