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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분석, 한진중 노-사 협상 타결의 배경과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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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15일 09시 49분 27초

  
 


노 "조합원 단결 큰 힘"-사 "갈길 바빴다"
[분석] 한진중 노-사 협상 타결의 배경과 반응
 
▲ 고 김주익-곽재규씨의 시신 주변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지난 11일 오전 8시 30분 아침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측에서 손배가압류를 제기(2002년 4월)한 지 1년7개월, 김주익 지회장 크레인 농성 156일, 총파업 115일, 김주익 지회장 자살 29일, 곽재규씨 사망 16일만에 한진중공업 노-사가 "2002·2003 임단협"에 합의했다.

한진중 노-사는 13일 오후 3시 7차 교섭에 들어간 뒤 하루만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번 합의는 '극적'이라는 표현보다는 '파격적'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뒤에 타결이 이루어졌기에 '극적'이라 할 수 있지만, 사측에서 노조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이어서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해고된 뒤 13년만에 복직하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조합원의 목을 조여왔던 손배가압류가 일시에 해결되었다. 그리고 징계는 물론 고소고발도 한꺼번에 사라지게 되었다. 올해 1월 배달호씨가 분신자살했던 두산중의 조합원과 해고자들은 한진중의 합의안이 알려진 뒤 "부럽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다.

한진중 노-사는 김주익 지회장 자살사건 뒤 총 일곱 차례 교섭을 벌였다. 교섭 초기에는 회사도 완강하게 나왔다. 18명에 이르는 해고자와 재입사 대상자의 복직 요구에 대해 사측은 '어림없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합의 결과, 노조 요구사항 대부분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같은 '파격'적인 합의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노동자들 사이에는 "이렇게 합의해 줄 것을 사람이 죽어야 이루어지느냐"면서 한편에서는 씁쓸한 분위기다. 이렇듯 한진중의 노사합의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합의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섭장 주변에서 흘러나왔던 이야기들과 함께 관련자들의 소감을 통해 그 배경을 더듬어 보았다.

회사 "갈길 바빴다"... 노조 "조합원의 힘"

▲ 한진중공업 김동진 상무.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진중 김동진 상무는 "우리는 갈 길이 바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배경을 설명했다. 부산지역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고, 협력업체와 납품·하청업체들의 심각한 애로사항도 압박감으로 작용했다고 설명. 또 외국 선사들이 빨리 해결하기를 요구했던 것도 회사가 합의에 이르게 된 배경이라 설명했다.

김동진 상무는 "교섭과정에서 노조의 극한 투쟁으로 상당히 어려웠다"면서, "부산지역의 경제가 무진장 좋지 않다는 소리가 들렸고, 협력사와 납품업체들이 어려움을 호소했으며, 연쇄부도의 목소리도 있어 어떻게든 빨리 회사가 정상 가동돼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 선사들이 수주했던 배를 일정기간 안에 납품해야 하기에 일정이 촉박했다"면서, "왜 노사관계를 어렵게 몰고 가느냐 하는 지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 상무는 "앞으로 발전적인 노사 관계로 바꿔보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면서, "적대적 노사관계를 진심으로 발전시켜 상생하자는 차원에서 타결을 했다"라고 말했다.




▲ 교섭대표로 참여했던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교섭대표로 참여했던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은 "두 명의 노동자가 죽자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내겠다고 하는데 있어 사측에서 동의한 것"이라며, "무엇보다 손배가압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조 지도부와 조합원의 동의가 큰 힘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김주익 열사가 자결하고 곽재규 열사가 투신하자 조합원들이 이상한 생각을 할까봐 부담스러웠다"면서, "투쟁과정에서 조합원들이 투쟁의 주체가 되었고, 그것이 큰 힘이었다"고 설명.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사측에서 노무관리 방식을 바꿔 노사대등과 상호인정이 이루어져, 관계가 발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주익 지회장 자살사건 뒤 조합원 단결이 큰 힘"

이같은 결과가 나온 데는 조합원들의 단결이 큰 힘이었다는 분석이다. 올해 1월 배달호 사건이 터졌던 두산중공업의 경우는 정상조업이 가능했다. 그런데 한진중공업에서는 10월 17일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사건이 터지자, 비조합원과 일용직에 의해 이루어지던 조업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그리고 김 지회장의 자살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탈했던 조합원들이 파업에 적극 참여했다. 매일 아침과 점심 저녁에 열린 보고대회에 적게는 500명에서 많게는 9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투쟁광장에 설치된 30여개의 천막에 함께 생활하면서, 단결된 힘을 보여주었다.

89년 한진중 인수 때 타코마노조 위원장을 지내다가 해고된 이흥석(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씨는 "김 지회장 자살사건 이후 조합원들의 이탈이 없었던 것이 큰 힘이었다"고 말했다. "이전 타코마 소속 조합원의 경우 320여명이었는데, 배를 진수하고 사측으로부터 가압류 통지서를 받자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 지회장의 자살사건이 터지자 죄인같은 심정으로 총파업에 참여했던 것이다. 늙은 노동자들도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교섭장 주변에서는 갖가지 말들이 흘러나왔다. 정부측에서 빨리 정상화가 되지 않을 경우 경영자의 사법처리까지 갈 수 있다는 압력을 행사했다는 말도 있다. 대개 두 명의 직원이 사망하고 부도가 날 경우 경영자가 책임을 지고 사법처리 될 소지가 많았다는 것.

그리고 김 지회장 자살사건 뒤, 한 달 가량 공장이 가동되지 않으면서 자금압박에 시달렸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속에 한진그룹의 경영진들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룹 차원의 결단에 대해 김동진 상무는 "이번 교섭은 조선부문 대표이사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그룹은 관여하지 않고 독자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 말했다.

경영자단체 반발 가능성... 노-사 관계자 "자율 교섭으로 이미 각오"

한진중 노-사 합의가 타결되자 다른 대기업과 경영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창원 두산중의 경우 해고 1년이 되었지만 복직이 되지 않았는데, 무려 17년이나 된 해고자들도 복직의 길을 텄다.

또 손배가압류 철회 등 기존 경영자 입장에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서는 한진중의 합의 내용이 대기업의 노사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진중의 파격적인 합의사항이 나올 가능성이 점쳐졌던 13일 저녁부터 14일 오전까지 대기업과 관련 단체에서는 많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히려 이번 한진중 합의 결과에 대해 경영자단체에서 반발할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진중 김동진 상무는 "교섭 기간 동안 경영자단체의 압력이나 반응은 없었다"면서, "재계로부터 원성을 들을 각오를 했지만 노사관계를 바꿔보자는 차원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은 "노사간의 자율 교섭인데 상급단체가 반발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반발해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한진중공업 선박 제작 작업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부산지역 반응 - "앞으로 노사관계 잘 되길" "재발되지 말아야"

부산지역민들은 한진중의 노-사 협상 타결 소식을 반기고 있다. 부산지방노동청 하갑문 근로감독과장은 "노사 자율로 교섭을 했기에 특별히 말을 할 부분이 없다"면서, "이번 타결을 계기로 노사관계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해몽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기획실장은 "한진중 사태 해결을 떠나서, 앞으로는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로 고통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면서, "노사관계가 상호 신뢰 속에 상생하기를 바라고, 지역경제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시민단체에서 중재역할을 많이 하지는 못했는데 타결되어 다행이다"면서, "앞으로 손배가압류에 있어 법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공동대표는 "한진중이 지역경제의 기둥이 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복직자들은 "설마 될까" 싶었는데, 막상 복직이 합의되자 믿기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합의대로 하면 오는 12월 1일이면 13년만에 복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7년만에 복직의 길을 턴 해고자도 있다.

1989년 한진중이 타코마(마산)를 인수할 때 해고되었던 이흥석(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씨는 "그동안 복직투쟁을 하면서 단식도 했다"면서, "결론적으로 두 명의 노동자 목숨과 맞바꾼 것 같아 착잡하다"고 말했다.

김주익-곽재규, 박창수 열사 곁으로
장례식 16일 거행, 장지는 양산 솥발산

▲ 양산 솥발산 공원묘지의 배달호씨 묘비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김주익씨와 곽재규씨는 박창수 열사 곁으로 간다.

'김주익·곽재규 열사 대책위'는 노사 협상이 타결되자 장례 준비에 들어갔으며, 16일(일) 장례를 치르기로 하고, 장지를 한진중 출신의 박창수 열사가 묻혀 있는 양산 솥발산으로 정한 것이다. 양산 솥발산에는 지난 1월 분신자살한 두산중 배달호씨를 비롯해 총 17명의 열사가 묻혀있다.

15일 저녁 한진중 투쟁광장에서 추모제를 열고, 16일 영결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발인은 오전 8시에 열리며, 9시부터 영결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밖에 부산시내를 통과하면서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박창수 열사는 한진중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의 배관공으로 있다가 1990년 노조 위원장에 당선되었으며, 부산노련 부의장 등을 지냈다. 이듬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의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옮긴 뒤 이틀만에 죽었다. 당시 나이는 33살이었다. / 윤성효 기자

2003/11/14 오후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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