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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세계]세원테크 투쟁의 발단과 경과(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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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24일 13시 26분 41초
금속노조 세원테크지회(지회장 이해남)의 장기투쟁 사태가 경찰병력 투입으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치닫고 있다.

세원테크지회의 지난한 싸움은 지난 2001년 10월 노조결성과 함께 시작됐다. 그해 12월 회사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용역깡패 1백50여명을 투입, 조합원들을 공장 밖으로 내몰았다. 이 사건은 곧바로 금속노조 지역총파업으로 이어졌고, 지회는 이에 힘입어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2002년 1월에는 단협까지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세원테크지회는 2002년에도 임단협 난항으로 5개월 장기파업을 벌였다. 경찰은 이 때 공장 안에 공권력을 투입하고 '모든 민주노총 집회를 불허한다'는 어이없는 통보를 내렸었다.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회는 5월22일 합법적인 쟁의행위에 돌입했으나 회사는 무더기 고소고발과 9억8천만원의 임금가압류, 2억원의 재산가압류로 대응했다. '노노갈등 조장, 고소고발·손배를 이용해 조합원 이탈 유도' 등의 내용을 담은 회사문건도 발견됐다. 회사의 노조파괴 공작은 비조합원들을 모아 구사대를 조직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회사는 심지어 실습나온 고등학생들을 구사대로 동원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회는 7월7일부터 공장점거에 돌입하며 더욱 강경한 투쟁을 펼쳤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아산 부시장까지 나서 중재안을 내놨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14일 경찰이 투입됐다. 공장에서 쫓겨난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충남본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투쟁을 계속했다. 회사는 8월6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8월16일, 공장진입 투쟁을 벌이던 고 이현중 조합원이 구사대와 관리자가 휘두른 산소용접기와 쇠파이프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며 지회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지회는 5개월에 걸친 장기파업 뒤 사측과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1년 뒤인 올해 8월26일 결국 이현중 조합원이 고통 속에 숨을 거두자 지회와 유가족들은 회사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마저 오래가진 못했다. "납품차를 내보내야 한다"는 회사의 요구에 경찰이 또다시 병력을 투입, 64명의 조합원을 강제 연행했기 때문이다. 세원테크의 장기투쟁 사태는 회사의 '노조파괴'와 경찰의 '청부폭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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