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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세계] 친노정책(親勞政策), 그 헛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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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4일 09시 16분 36초
친노정책(親勞政策), 그 헛된 기대

곽장영 전국과학기술노조 수석부위원장

1. 4개월의 허망한 기대

지난 김대중 정권 시절에 민주노총이 ‘정권퇴진 운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한동안 논란을 벌였던 생각이 난다. 민주노총이 퇴진운동을 한다고 해서 그 정권이 퇴진하거나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일도 없고, 또 ‘잘하는 정권’이라고 칭찬해 준다고 해서 그 정권이 훌륭한 정권이라고 좋아할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우리 노동자들은(실제로 노동조합 간부들은) 그렇게 열을 내서 토론하고, 논란을 벌였는지 잘 모르겠다. 정권퇴진을 싸움의 목표로 내걸긴 했지만, 얼마나 많은 우리 노동자들이 정권퇴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쳐’ 싸웠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약간은 달라진 김영삼, 김대중으로 바뀌면서 사실은 노동자들이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치가 높아져 온 것은 사실이다. 특히 김대중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운동권’들은 필사적인(?) 노력을 해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허나 어찌하랴. 임기도 채우기 전에 ‘정권퇴진’의 대상자가 되어야 하는 걸.

지난 해 연말 대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노동자들이 노무현에게 달려갔다. 이번에는 ‘이회창이 되면 노동자들은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될 것’이라는 또 다른 논리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노무현은 당선되었고, 당연히 노동자들은 엄청난 탄압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좋아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취임 전이나 취임 후 당분간(지극히 짧은 시간동안)은 현실로 나타나는 듯했다.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라고 규정했으니 당연히 약자는 보호받아야 했다.

6월 28일 새벽 경찰이 파업중인 철도 노동자들을 끌고 간 날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민주노총은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는 그 동안 나오지 않았던 공식적인(?) 구호가 드디어 등장했다. “노무현 정권 자폭하라!”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는 말이 왜 안나오나 궁금했는데, 드디어 정권이 새로 뜬지 겨우 4개월이 지나자 노동자들은 노무현 정권을 ‘퇴진’도 아닌 ‘자폭’해야할 정권으로 규정했다. 기대가 어찌 6개월까지 가랴? 4개월도 길지.

2. 친노정책(親勞政策)은 말로만

아마도 지난 몇 달 동안 ‘보수 깡패 신문’에서 가장 크게,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 낱말이 ‘친노정책(親勞政策)’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로서 이 말이 어찌 반갑지 않으랴. 대통령부터 노동자와 친한 정책을 하겠다는 것일 터이고, 노동부 장관이 ‘노동부는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부서’라고 하니 뭔가 기대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여기다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분신사태 해결 합의, 화물연대 파업 해결 합의, 전교조와 NEIS 문제 합의, 철도사유화 문제 철도노조와 합의 등 굵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하고 합의로 이르고 있었으니 노무현 정부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그러니 깡패언론들도 나서서 친노정책(親勞政策)이라고 떠벌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역시 쉽게 허물어지고 만다.

두산중공업 사태의 합의 이후 뒤처리가 어찌 되어 가고 있는지 파악해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화물연대, 전교조, 철도노조와의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그 합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만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합의는 그저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거나 친노정책(親勞政策)을 홍보하기 위해서 그냥 해 보는 것일 뿐이다.

3. 정권비판이 아니라 합동작전?

이쯤 되면 노무현 정권의 본모습은 어떤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눈으로 쉽게 확인하고 있다. 또한 언론이 나서서 정권이 친노정책(親勞政策)을 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 비난은 비난이 아니라 정권을 칭찬하고, 정권과 언론이 함께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한 합동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노무현 정권이 친노정책(親勞政策)을 펴고 있다고 언론은 떠들어 대고 있는데 실상은 어떤가?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과기노조)이 최근 겪고 있는 일만 따져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산업자원부(산자부) 산하 기관들이 산자부로부터 ‘단체협약을 나쁘게 고쳐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친노정책(親勞政策)을 펼치고 있다면 단체협약을 좋게 고치라고는 못하더라도 현상유지는 하라고 해야 하겠지만,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내용은 모두 나쁘게 고치라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고치지 않으면 정부예산을 깎거나 사업을 떼어서 다른 곳으로 넘겨버리겠다고 하고 있고 실제로 과기노조 몇몇 지부 사업장에는 예산을 몇 달간 주지 않기도 했다. 순순히 듣지 않자 이제는 구조조정을 다시 해서 노동자들의 밥줄을 자르겠다고 나서고 있다.

건설교통부(건교부) 산하기관인 과기노조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지부의 파업이 석 달이 다 되어 가도록 건교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노조의 요구가 일반적인 단체협약임에도 불구하고 건교부 장관부터 실무자까지 노조의 요구가 무리하다면서 ‘법과 원칙’만 되풀이하고 있다. 불법적인 직장폐쇄를 하고 불법적인 용역깡패를 투입해서 폭력을 휘둘러도 저들은 그게 ‘법과 원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도 이러니 다른 곳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언론이 떠들어 대고 있는 친노정책(親勞政策)이 실제 현장에서는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노무현 정권은 이런 ‘보수 깡패 언론’이 얼마나 고맙고 좋은 친구일까?

4. 이제 그만 당하기 위해서

노무현 정권의 임기가 앞으로도 4년 8개월이 남았고, 그 동안 우리 노동자는 계속해서 ‘노무현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거철이 되면 다시 이상한 논리를 들먹이며 노동자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고 ‘또 당했다’고 억울해 한다. 그게 이 나라 노동자들의 업보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더라도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금은 늦게 갈 수 도 있고 조금은 더 힘들 수 도 있겠지만 노동자들의 땀과 피가 헛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을 수 있는 그래서 수십년, 수백년이 지나면 노동자들도 희망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는 싸움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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