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언론합작 '노동운동 죽이기' 위험수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뒤 우리나라 조직노동자(노조원)들은 갑자기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됐다. 이른바 '친노정권'이라 사회적 지위가 급상승해서도, 생활수준을 크게 높이는
노동정책을 펴서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불리고 있을 뿐이다. 말이나마 귀족대접을 받으니
기분이라도 좋으련만 실은 그와 정반대다.
"전체노동자의 12%에 불과한 노동귀족은 사회적 약자를 수탈·착취하는 거머리…"
민주노총 인터넷 홈페이지 '열린마당'에는 이처럼 조직노동자들을 비난하면서 저주를 퍼붓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이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노동운동을 욕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른바
'알바'들의 소행만은 아닌 듯 하다. 언론에서도 '노동귀족들의 집단이기주의'를 지탄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국회의사당도 예외가 아니다.
구종태(민주당)·이한구(한나라당) 의원 등이 '노동귀족' 규탄대열에 합류했다. 급기야
대통령도 나서 "노동운동의 귀족화·권력화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온세상이
'노동귀족'을 비난하는 목소리로 들끓는 양상이다.
그렇다고 '이 땅의 조직노동자가 정말 귀족이냐'고 반문하는 건 아둔한 짓이다.
'노동귀족'으로 지목된 당사자는 물론이고,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사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귀족이란 본래 노동자 권익신장이라는 본분을 팽개치고 자본과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그 대가로 영달을 누리는 노조 상층지도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거론되고 있는 노동귀족은 주로 대기업노조원들을 가리키며 시간이 흐르면서 전체
조직노동자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 노동귀족'으로 찍힌 현대자동차노조는 장기파업 끝에 주5일근무제
도입 등 임단협을 성과적으로 마무리한 뒤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보수언론들은 당시
'1년에 절반을 쉬면서 연봉 6천만원' 등 사실을 크게 과장한 기사를 앞다퉈 쏟아낸 바 있다.
이 때문에 조합원은 조합원대로 분노가 폭발했고, 노조사무실에는 "시어머니가 '살림을
어찌 하기에 그렇게 많이 벌면서 아직 집도 장만 못했냐'고 나무라는데 미치겠다"는 등
조합원 아내들의 하소연이 빗발쳤다고 한다.
노조 박유기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15년 장기근속자가 잔업·특근 밥먹듯 해
전국평균을 300시간이나 웃도는 연간 2,750시간을 일하는데 이 때 받는 액수가
5천여만원"이라며 "결국 저소득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 반대여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노동운동을 고립시키려는 전략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사실 연봉
3천만원도 2천만원의 처지에서는 '상대적 상류층'으로 비치게 마련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투쟁함으로써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또 연봉
5천만원이 문제라면 많게는 수십억, 적어도 수억인 대기업 경영진의 연봉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보수언론의 노동귀족 시비는 철도, 은행, 전교조 등 투쟁하는 노조에만 집중돼왔다.
요컨대 이 악의적 선동의 궁극적 목적이 권력과 자본의 입맛대로 노동운동을 순치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평소 '앙숙관계'인 노무현 정권과 보수언론이 노동운동 앞에만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에게 겨눴던 총부리를 일제히 노동계로 돌린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을 때리는
논리도 그리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 오건호 정책부장은 이와 관련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증폭된 빈부격차,
백만장자 증가율 세계1위 이면에서 '생계형 자살'과 신용불량자의 급증 등 생존권위기에 놓인
서민대중의 불안감과 분노를 떠안을 희생양이 필요했고, 정권과 언론은 노동운동으로 그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차남호 chanh@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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