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론을박 국가산업 민영화
박태주(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국회보 2002년1월호
'민영화=효율'이라는 종교가 몰고올 파장
모든 민영화를 ‘악’으로 보는 것은 그 역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종교이자 도그마이다. 정부도 주장하듯이 기업성이 강한 공기업을 언제까지라도 정부가 끼고 있을 이유는 없으며, 동시에 외부성 등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공기업은 강한 공공성으로 인해 공기업으로 존속시킬 필요가 있다.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 불기 시작한 민영화 바람이 현 정권에 들어서는 가히 토네이도급(級)으로 우리 사회의 곳곳을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말 파업 일보직전까지 가는 노동조합의 저항으로 벼랑 끝까지 몰렸던 한국전력의 민영화에 이어 지금 이 순간에도 철도와 가스공사, 한전의 자회사들(발전산업과 한전기공, 전력기술 등), 그리고 지역난방공사 등이 민영화의 가시권 내에서 ‘태풍전야’를 맞이하고 있다. 민영화가 ‘주인없는 경영’이 낳은 비효율과 부정부패에 대한 해결사로 등장하고 있는 시대상황에서 그럼 민영화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일 것인가?
민영화에 대한 절대적인 찬성이나 무조건적인 반대는 민영화의 효과가 보편적이거나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코끼리 다리를 코끼리로 인식하는 것과 진배없다. 민영화의 효과는 해당산업의 구조뿐 아니라 민영화의 방식이나 구체적인 추진절차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그것은 진공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사용자, 노동조합 등 관련된 행위자들이 취하는 전략적 선택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구체적·개별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논리를 제공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현재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철도와 가스공사를 중심으로 민영화가 갖는 우리 사회에서의 지형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철도산업에 대한 정부의 안은 철도를 시설부문과 운영부문으로 분리하여 철도시설공단(철도시설의 유지보수 부문 : 2002년 7월)과 철도주식회사(여객운송 부문 : 2003년 7월)를 설립하고, 철도주식회사를 민간에 매각, 민영화한다는 안이다. 이에 대해 철도노동조합은 관련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정부가 철도산업을 민영화하려는 주요한 근거는 철도청이 안고 있는 엄청난 채무부담과 경영의 비효율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철도의 부채는 현재 8조4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이 8조4천억원 중에는 고속철도 건설 및 차량도입 부채비용 6조9천억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머지 1조5천억원 중에는 국유철도특례법에 의한 공공철도 운행보상금제도(Public Service Obligation : PSO)에 따라 정부가 보상하기로 되어 있는 금액 8,153억원과 이에 따른 영업손실액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철도의 누적된 적자를 민영화의 근거로 삼는다면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처사에 지나지 않는다. 철도의 적자는 경쟁의 부재나 경영의 실종에 따른 적자가 아니라 공공정책의 결핍으로 인한 적자이기 때문이다.
철도의 민영화가 초래하는 결과는 무엇보다도 공익성의 실종으로 나타난다. 철도가 보편성의 원리가 아니라 수익성의 원리에 의해 운영될 때 한편으로는 적자노선의 폐지로, 다른 한편으로는 철도요금의 인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은 일본이나 영국의 경우를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일반국민에게 철도의 민영화는 ‘교통편익의 빈곤’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철도노동자에게는 전 직종에서 고용불안의 태풍이 닥칠 것이라는 점도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민영철도가 유지보수 부문의 용역화와 운영 부문의 민간위탁화가 이루어지면 사실상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은 ‘마지막 수단으로서의 고용자’(employer of last resort)라는 정부의 고유한 기능을 되새겨보면, 현행의 실업상황에서 정부의 민영화와 이로 인한 고용방출은 정부의 무책임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편 가스공사의 민영화(안)는 현행 정부투자기관인 가스공사를 3개의 자회사로 분리하여 2002년 말까지 2개 기업은 민간에 매각하고, 나머지 1개사는 가스공사의 자회사로 두되 매각시기는 별도로 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설비부문(생산기지와 주배관망)은 공동이용제(Open Acess System : OAS)를 실시하되 정부지분은 2002년 말까지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가스공사 민영화의 목적으로 정부는 △경쟁도입을 통한 자원배분과 경영의 효율성 증대 △가스산업의 선진화 도모 △소비자 선택권의 확대로 서비스의 질 개선을 들고 있다. 가스공사 민영화법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현재 국회에 이송되어 있다. 이에 대해 노조에서는 국민의 후생 증진 및 국내 가스산업의 발전과는 전혀 무관한 정부의 가스산업 구조 개악으로 규정, 전면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가스공사 분할·민영화 안은 정부의 기대치와는 달리 통합관리에 따른 시너지효과의 감소로 수급조절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실질적인 경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경제성 없는 지역에 가스 공급을 회피하는 사례로, 나아가 가스 도입의 협상력 저하와 가스요금의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저소득층의 ‘에너지 빈곤’이라는 공익성의 실종으로 나타나, 결과적으로 민영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형태가 될 것이다.
모든 민영화를 ‘악’으로 보는 것은 그 역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종교이자 도그마이다. 정부도 주장하듯이 기업성이 강한 공기업을 언제까지라도 정부가 끼고 있을 이유는 없으며, 동시에 외부성 등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공기업은 강한 공공성으로 인해 공기업으로 존속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공익성이 우선되는 사업이라고 해서 효율이 무시되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단 공익성이 적용되는 분야에서는 목표달성을 일컫는 효과성(effectiveness)이 자원배분을 가리키는 효율(efficiency)에 앞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는 ‘싸고, 빠르고, 보다 낫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긴다’는 그 자체이다. 효율성에 매달려 공익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민영화 = 해외매각 = 경제의 해외종속’이라는 단순방정식은 그 단순명료함만큼이나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국가의 기간산업분야나 필수서비스부문이 해외자본에 매각되는 데 대해서는 그것이 국가의 산업이나 국민의 삶을 볼모로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문제는 정부가 안팎에서 제시된 문제점에 대해서 두 눈을 질끈 감은 청맹과니가 되어 스스로 설정한 일정에 쫓기면서 일방적으로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데 있다. 사회적 합의 과정을 외면함으로써 오히려 정부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유럽에서는 민영화와 관련하여 유럽 차원에서의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가 나타나고 있으며, 국제노동기구(ILO)조차 민영화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대표의 배제는 결과적으로 노사분규를 초래할 뿐 아니라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참여적인 접근(participatory approach)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이라는 국정지표는 사실 그것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는 시장경제’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도 ‘시장경제’만 금과옥조로 남아있을 뿐 ‘민주주의’는 ‘꿩 구워먹은 소식’이라는 점에서 이는 국정지표의 혼돈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욱이 ‘남의 나라’의 민영화 소식은 귀기울여 들으면서, 캘리포니아의 전력대란이나 민영화된 영국 레일트랙 회사의 파산은 여전히 ‘남의 나라’ 일로 여기는 강심장도 괄목상대할 일이다.
우리는 공기업의 경영이 많은 비효율을 안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것의 상당부문은 정부의 낙하산 인사나 정경유착, 타율적 경영 등 정부의 탓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민영화의 근거로 삼는다는 건 적반하장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이 국가경쟁력의 제고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영의 개선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공기업의 효율성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경영체제의 개선과 국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의사결정체제를 전제로 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고질적인 관치경영의 철폐를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공익성과 수익성이라는 모순이 걸러질 수 있는 의사결정체계의 구축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정부와 전문경영인, 소비자단체 및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공공참여적 전문경영체제’를 제안한다. 그러나 이러한 ‘좁은’ 경영체제의 개편이 ‘거대권력에 대한 대응권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응권력의 창출은 참여적 경영체제의 창출과 더불어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와 이를 통한 노동조합과의 연대 강화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으로서도 스스로의 요구를 사회적 요구와 일치시킴으로써 ‘책임있는 주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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