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합원이 결정하는 투쟁을 사수하기 위하여 2만5천 조합원대표인 대의원 동지들이 선봉에서 힘차게 투쟁을 결의했다.
2005년 11월 8일 조합 식당겸 강당에서 개최된 2005년 정기단협 승리를 위한 전국지부장회의 및 임시대의원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동안 조합은 60일간 노사 성실교섭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그간의 과정을 보면서 철도공사는 철도노동자가 현장의 가장 절박한 요구와 시급한 문제를 헤아려 보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확인되었다.
대의원대회는 공공연맹 양경규 위원장을 비롯하여 해방 전후 철도에서 일하시던 대 선배님이신 이수갑, 유병화 선생님과 김재길, 천환규 전위원장과 전 지방본부 위원장이 참석하여 축하를 하였으며 철해투 해고자들이 대의원대회를 참관하였다.
김영훈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인력충원, 연금불이익 방지, 해고자 원직복직과 비정규직 문제 등 핵심쟁점에 대해 사측과 여전히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보다 강도높은 투쟁을 전개하지 않으면 철도공사는 여전히 뒤에서 구조조정을 강행할 것이라"고 대의원 동지들에게 설명하였다.
이날의 대의원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결정사항인 특별위원회 구성 건, 산별기획단 구성 건, 신규지부(부곡승무) 설치 승인 건. 쟁대위 운영규정 개정에 관한 건 등이 보고되었다.
송덕원 기획국장의 교섭보고, 김웅전 조직실장의 투쟁일정 보고 및 천환규 산별기획단장의 산별기획단 구성과 운영에 대한 보고와 이철의 미조직 비정규직 특별위원회 대표의 비정규직 특별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
![]() |
각 처실 및 위원회의 보고가 끝난 후 대의원들은 안건을 심의하기 전 현장의 조직적 상황과 조합원들의 정서를 보다 더 원칙적이고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하여 지방본부별 분임토의를 장시간 진행하였다.
분임토의 결과 3개정비창의 경우 조합일정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현장 지부장의 활동이 중요한 것을 감안하여 지부임원조직을 정비하기로 하였다. 순지본은 투쟁일정 사수에 최선을 다하고 비정규직까지 투쟁복을 착용해야 한다고 하였고, 부지본의 겨우 쟁의행의 찬반투표의 결과가 우리의 투쟁역량을 반영하므로 압도적 결의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결의를 모았다.
영지본은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물론이고 대국민 선전에 집중하고 2차 총력결의대회를 힘있게 성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인원이 참가하기로 하였다.
대지본의 경우 지도부의 조직력 장악에 편차가 있으므로 주체역량을 냉정히 판단하고 결정하자고 논의를 모았다. 한편 서지본은 현장과 지본, 조합의 소통이 중요하며 그동안 차량, 운수 전기집회를 바라보며 조합원이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진단하였다. 또한 지도부가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따라 조합원은 결의하니 대의원이 힘차게 따라가자고 하는 등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었다.
![]() |
이날의 대의원대회는 2005년 정기단협 투쟁승리를 위한 사업방침에 관한 건이 상정되었다. 대의원들의 투쟁일정 공유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출되어 일정에 대한 토론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일부 대의들이 일정이 촉박하여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1주일 연기하자는 수정안이 제기되어 찬반토론과 표결이 있었지만 부결되고 투쟁일정을 원안대로 통과하였다. 이제 일정을 소화하는 실천투쟁이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조합의 간부들이 현장순회를 위하여 달려가고 20일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통하여 철도노동자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줄 것이다.
![]() |
창립행사는 대의원 및 지부장단이 참석하여 해방 전후 철도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당시 활동하였던 두 분의 주역을 초빙하여 명예조합원 위촉장을 수여하고 꽃다발을 증정하였다.
유병화 선생님은 당시 대구역 구내원으로 일하시면서 대구철도노조 조직부장을 역임하여 대구 관리역지부 조합원으로 위촉되었다. 이수갑(민족정기수호협의회의장)선생님은 당시 부산 용품사무소에서 분회장으로 활동하여 부산차량지부 조합원으로 위촉되었다. 창립이후 60년 만에 철도노동조합의 출생의 의미를 바로알기 위한 사업으로 60년 걸어온 철길이란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 |
이날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이수갑 선배님이 창립축하 인사를 하였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또 반갑습니다”
라며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는 남과 북의 노동자가 함께 투쟁하였습니다. 60년의 역사를 기념하는 행사는 대단히 중요하고 뜻깊은 노동운동의 역사입니다. 80고개를 넘어 지팡이를 짚어야 움직일 수 있는 나이지만 후배 여러분이 정기단협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하는 것이 선배의 바램 입니다. 말이 공사화이지 실질적으로는 민영화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공사를 명실공히 국민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철도 후배동지 여러분 이번 정기단체교섭 단결해서 반드시 승리하길 바랍니다”라며 인사를 마치고 참석한 분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복원의 의미를 주제로 고창식 교육선전실장이 '철도노동조합의 뿌리를 되찾으며'라는 주제로 진정한 의미의 역사복원을 위하여 그간 조사하고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였다.
고창식 교육선전실장의 지난 과정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과거 철도노동자에게 노동조합창립기념일은 그저 1월18일에 수건 한 장 받는 날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직선제로 민주노조가 건설되기 이전의 일이다. 2001년 6월 민주노조가 건설된 이후 노동조합창립기념일은 별다른 행사 없이 바쁜 투쟁일정 속에서 묻혀져 갔고, 4년 만에 철도노동자의 뿌리를 찾으려는 역사적 과제에 착수하게 되었다.
![]() |
1947년 1월18일 대한노총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등에 업고 전위대인 서북청년회를 앞장세워 권총과 무자비한 폭력으로 해방직후 철도노동자의 자주적인 대중조직이었던 철도노동조합과 전평(조선 노동조합전국평의회)을 파괴하고 운수부연맹을 창립하였다. 그 이후 기나긴 독재의 어두운 터널과 대한노총의 득세와 함께 철도노동자는 과거 자신의 투쟁의 역사를 잊어갔다.
1945년 11월1일은 철도노동자의 전국조직인 철도노동조합이 최초로 탄생한 날이다. 해방직후 지역별 철도노조 조직을 건설했던 철도노동자들이 이날 1박2일에 걸친 열띤 토론 속에서 남북을 포괄한 전국조직인 철도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몇일 후인 11월 5일 전체 노동자의 전국조직인 전평이 결성되었다. 이때 철도노동조합 조합원 수는 34,728명이었고, 이듬해인 46년 2월에는 급격히 불어나 남쪽40,523명, 북쪽21,910명을 포함한 62,433명에 달하였다.
이후 철도노동조합은 46년 미군정의 쌀 배급정책과 분단정책에 저항하여 ‘조국의 온전한 자주독립과 쌀 획득투쟁’을 전개하여 9월24일 총파업에 돌입하였고, 이는 곧 전평의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 |
60년 만에 철도노동조합의 출생의 비밀을 풀고 뿌리를 되찾았다. 철도노동자의 역사적 정통성을 복원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단지 날짜를 1월18일에서 11월1일로 전환하고, 해방직후 주역이었던 선배 철도노동자의 투쟁정신을 계승한다고 선언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내 고민이 되었던 것은 해방직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식민통치 시절부터 투쟁을 전개해 왔던 선배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정신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는 것인지, 말로만 외울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진정 계승하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한 반문과 부끄러움이었다.
2005년 신자유주의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철도노동자로서 우리는 선배 철도노동자의 투쟁으로부터 어떤 실천적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인지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몫으로 남아 있고, 역사적 정통성을 복원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임시대의원대회 영상모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