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전중석 동지의 영결식이 동해차량 검수고 에서 지난 23일 거행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추석 귀향을 서두르던 지난 21일, 고인은 야간근무를 하기위해 출근 한 후 후번 교대를 하기위해서 대기하던 중 사무실 앞에서 쓰러져 함께 근무하던 조합원들에게 21:35분경 발견되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급성심근경색으로 진단되었다.
고인은 지난 98년 철도에 입사하여 10년 동안 철도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으며 평소에도 조합원들에게 항상 밝은 모습으로 힘들고 궂은일도 앞장서서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연로하신 어머니와 평생 천직을 같이 하자며 약속했던 철도원인 아내가 있으며 이제 5살 된 아들이 있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7월 부산차량에서 직무사상사고로 한윤수 동지를 보내고 2달여 만에 다시 한분의 동지를 보내게 되었다. 이것은 철도현장의 열악한 작업안전환경과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상태 악화 등의 문제를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22일 엄길용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간부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영정에 분향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엄길용 위원장은 대수송기간을 맞아 현장을 순회하던 도중 고인이 운명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수행하던 조합간부들과 함께 서둘러 동해로 향하였다. 위원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 유가족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드려야 될지 모르겠다”며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아직도 만들지 못하여 고인과 유가족에게 다시 한 번 죄인 됨이 죄송하고 송구스럽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다음날인 23일, 고인이 살아생전 일하시던 동해차량 검수고 에서 고인과 함께 근무하던 조합원 및 이기담 영주지방본부장을 비롯한 조합 간부와 철도 관계자들이 배석한가운데 치러졌다. 하늘도 고인의 가시는 길이 슬펐는지 간간히 비를 흩뿌리며 잔뜩 흐려있었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영결식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고 고인의 어린 아들은 아직도 아버지의 운명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어리광을 부리며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고, 이를 끌어안고 눈물만 흘리는 미망인을 보며 영결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고인의 동기인 한 동지는 낭독한 조사에서 “뒤돌아보면 웃으면서 나올 것 같은 고인을 보낸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다”며 고인을 보내는 심정을 표현하고 “고인이 가시더라도 남아계신 유가족들을 항상 관심 갖고 보살필 것”을 약속하며 “이제는 부디 죽음 없는 좋은 곳으로 가시라”며 울먹이며 낭독을 마쳤다.
영결식에 참석한 모든 이가 고인의 영정에 헌화한 다음 영결식은 마무리 되었다. 유가족들은 식을 마친 후 고인의 영정을 들고 마지막 가시는 길 생전 일하시던 현장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장지로 운구를 이송하였다. 고인과 함께 일하던 조합원들이 도열한 가운데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였다.
故 전중석 동지께
언제나 함박웃음 지으며
동료를 마주하던 동지여
무엇이 그리 급하시다고
바람 따라 가셨습니까?
이제 나이 서른다섯
애달픈 기적소리가 되어 떠나기엔
너무도 아까운 청춘입니다
한 평생 내리 사랑 주신 홀어미님,
철도쟁이 남편 만나 고생하는 아내,
다섯 살배기 아들의 해맑은 미소…
더없이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고단한 삶, 힘겨운 삶 꾹꾹 참아가며
앞만 보며 쉴 새 없이 일만 했던 그대입니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꽃다운 스물일곱에 철도에 들어와
잔병치레 한 번 없었던 건장한 몸은
24시간 맞교대 7년, 주주야야비휴 3년
그렇게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아무도 없던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
그 위에 쓰러져 마지막 눈 어떻게 감으셨나요
일어서려 다시 일어서려 발버둥 쳐보아도
만근의 무거운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동료들을 향한 구원의 목소리는
소리 없이 허공을 맴돌 뿐이었지요
재롱둥이 아들의 모습이 밟혀
아픈 심장이 더욱더 찢어지셨을 테지요
먼 세상 홀연히 가신 동지여
어차피 가셔야 할 길이라면
살인적인 24시간 맞교대,
각박한 주주야야비휴 없는 곳
둘러보면 모두가 꽃처럼 아름다운
그런 곳으로 가소서
아픔 같은 것은 아예 있지도 않은
서러움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는
그런 곳으로 가소서
고 전중석 동지여
가족과 동료들에게 한을 남긴 채
가을 낙엽처럼 가셨지만
부디 또 다른 생명의 자양분이 되어
따뜻한 봄기운에 꽃피는 민들레로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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