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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결혼식이 있어 영주에 갈 때던가? 그 때는 아직 일렬로 마주볼 수 있게 의자가 배열된 완행열차가 있었을 땐데, 우리는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넥타이에 통기타, 통닭을 준비해 기차에 올랐다. 같은 칸에 탄 승객들에게 정중히 용서와 이해를 구하고 두 시간여 ‘난장’을 떤 적이 있었는데, 역무원도 노래를 부르게 했으니 우리들의 난장이 망나니짓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두 번 다시 그런 기회도 용기도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기차 없는 청춘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기차, 승객은 추억을 먹고 노동자는 기름밥을 먹는다. 언제였던가? 서울에서 집회를 마치고 귀향하는 길에 ‘단결투쟁’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있던 역무원에게서 느꼈던 반가움, 막연하지만 그것이 동지애 아니던가.
나는 앞으로도 기차가 무한 추억을 제공해 줄 것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잠시 불편하더라도 철도노동자들, 비정규직의 설움을 어깨동무로 견디고 있는 여승무원들 고통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우리들의 누이가 아닌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무엇인가? 후진국은 내 불편을 먼저 생각하고 선진국은 상대방의 불편을 먼저 헤아린단다. 철도노동자, KTX 여승무원들이 왜 파업을 하고 있는 지는 노동자들이 피와 땀으로 굴리고 있는,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메아리로 응답해야지 않겠는가. 바퀴는 굴러가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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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소는 1962년 평창 진부에서 태어났다.
1884년「시인」,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논개가 살아온다면」「수업시대」「반성문」「다리 위에서 개천을 내려다보다」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