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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문제에만 주목하다가 최후의 목적 잊어버려
1930년대의 세계대불황이 일어날 때까지 영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국에서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자유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가난이나 실업은 개인이 게으르거나 운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간주되었지 이 사회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나라를 지키는 일, 법률을 지키는 일, 그리고 도로와 철도 등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 뿐이었다. 이른바 ‘야경국가’ 또는 ‘작은 정부’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의 세계대불황은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잘 된다”는 믿음을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노동인구 10명 중 5명이 직장을 잃었는데, 이것을 보면서 실업은 개인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었고, 실업에 따른 가난과 정신적 고통을 그대로 놓아두기에는 사회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회가 붕괴될 위험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경제이론이 ‘시장과 정부 개입을 혼합하자’는 혼합경제론이었다.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적합하다면 못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나서서 가난과 실업을 해결하라”는 사고방식이 적합한 시대가 온 것인데, 이런 형태의 자유주의를 ‘새로운(new)’ 자유주의라고 불렀다. 정부의 개입을 인정하는 이 새로운 자유주의는 1939-45년까지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정부가 전쟁 수행과 민생 안정에 큰 공적을 세우게 되자 정부 능력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면서 1970년까지는 선진국 모두를 지배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복지국가’가 바로 이것이다.
1930년대 세계대불황 이후 시장에 정부 개입
그런데 1973년 석유가격 폭등을 계기로 폭발한 세계대불황은 위의 ‘새로운’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로 바꾸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약육강식의 깡패경제학을 다시 등장시킨 것이다. 자유방임의 ‘자유주의’가 정부 개입의 ‘새로운 자유주의’로 바뀌었다가 다시 자유방임의 ‘신자유주의’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 전부가 쉽게 이야기하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대립과 투쟁에서 자본가계급이 더욱 큰 힘을 휘두르면서 이겼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사회보장제도가 확대 개선되어 주민들은 학교와 병원을 무료로 이용하고 소득에 따라 낮은 월세를 내는 공공 장기임대주택에서 살며 실업수당과 노후연금을 받게 된 것은 물론 노동자계급의 긴 투쟁의 산물이었지만, 만약 노동자계급이 좀 더 힘이 세었다면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지 왜 자본가계급이 그대로 주인 행세를 하게 내버려 두었겠는가?
1970년대 세계대불황 이후 자유방임의 ‘자유주의’ 다시 등장
모든 경제정책은 반드시 누구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을 위한 경제정책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국민은 온갖 요구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의 요구 모두를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가 지금 당장에 부닥치는 문제들이나 그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국내와 국외의 사람들의 요구를 참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대립과 투쟁이 가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나온다. 가난한 사람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에서는 정책을 결정하는 권력자들이 그 아우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신자유주의는 못사는 사람들의 투쟁에 의해 세계 모든 곳에서 점점 더 힘이 빠지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복지국가가 다시 태어 날 것이다.
김수행 / 서울대 교수. 경제학
‘철도노보’ 제 55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