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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아카시 나무들에 주렁주렁 하얗게 매달린 아카시 꽃이 눈처럼 하얗게 땅에 떨어지고 숲은 짙은 녹색으로 이미 변해 있습니다. 20년 전 어떤 사람에게 좋아하는 꽃을 물은 적이 있었지요. 아카시 꽃을 좋아한다더군요. 참 소박한 사람이더라고요. 바로 그 사람과 17년을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둘이나 있지요. 아내와 나는 아직 ‘이심전심’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월의 부피만큼이나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갈등은 스폰지처럼 흡수해버릴 만큼 관계의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지요.
그러나 가끔은 운동 노선과 세계관,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두고 고단위의 논쟁을 벌일 때도 있고, 가족의 일상사를 두고 사소한 말싸움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말싸움이 때로는 격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격렬한 언쟁은 상대의 자존심을 뿌리 채 흔들며 수습불가능의 지경으로까지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동안 쌓아온 애정과 신뢰가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매번 파국에까지 이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부의 관계는 일대일의 관계일뿐더러 아이들을 포함하여 각자 엮고 엮이며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개입되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주변적 요소들이 한편으로는 질곡이지만, 결과적으로 부부와 가족공동체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 기도 할 것입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의 관계망 속에 가족이 위치하고, 그 가족의 관계망 속에 개인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관계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인 것 같습니다. 부부관계의 힘은 가족의 경계에서 울타리로 존재하며 가족 안팎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에 대한 각성으로부터 오는 듯합니다.
경제 양극화와 무한경쟁, 대화의 단절과 소외의 그늘 속에 해체되는 가족과 공동체의 위기를 실감합니다.
세계 최장의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 일터와 노조, 거리에서, 가사노동으로 지친 우리 부부들의 인간적 삶을 위해서 가족의 새로운 의미와 역할을 정립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세계에 열려있고 인간에게 깨어있는 가족의 문화를 꿈꾸며, 나의 반쪽인 아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저녁입니다.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휴대폰 문자 메시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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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원일 / 전교조 학생생활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