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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5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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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가족이야기]
철도원과 그의 부인네의 살아가는 이야기, 사랑하는 이야기

김용란 || VIEW : 155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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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철도원 아내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라고 해서 그건 못 쓰겠다고 했다. 누구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을 아직도 나는 싫어한다.
다만 나는 철도원인 남편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쓸 수 있다.
사랑에 대해서는 쓸 수 있겠다.
철도를 다니는 남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줬는지, 그가 얼마나 너그러운지 자랑할 수 있다.

남편과 나는 8년 차이. 남편은 용띠이고 나는 쥐띠이다. 아주 잘생긴 용이 긴 몸채를 드리우며 하늘을 난다. 그 위에 작고 귀여운 쥐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요러쿵 저러쿵 조잘대면서.
8년 차이를 떠올리면 이런 그림이 떠오른다. 용은 쥐 한 마리의 요러쿵 저러쿵을 묵묵히 들으며 하늘을 난다.
8년 차이가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화제 거리가 되었다. 남들한테 나서고 뽐내기 좋아하는 나는 우리를 화제 삼아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8년 차이의 부부 생활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도 못한 채.
남편은 지금은 불혹의 나이고 나는 확실히 서야 하는 나이 삼십대이다. 세대차이라는 게 무엇인지 나는 언제나 생생하게 느끼면서 살아간다.
처음 남편을 만난 것은 이십대를 갓 넘긴 어느 해 가을. 정확히 9월 5일. (우리 둘의 관계에서 매월 5일에는 재미난 일이 생기곤 했다.)
인천노동자문학회에서 문학강연이 있다고 해서 갔다. 나는 그때부터 동화를 쓰는 게 꿈이어서 문학회 모임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때 입었던 나의 옷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황토색 바탕에 주황, 초록, 마치 크레용 빛깔 같은 줄무늬 반바지. 그리고 엄마 친구의 남편이 주문 받은 옷보다 너무 많이 만들어서 부인 친구들에게까지 나눠주었다는 어느 단체의 이름이 써진 하얀 긴팔 티. 그리고 나는 구불구불하게 파머머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아주 좋아했던 머리 모양이다.
버스를 타고 어두워질 무렵 인천노동자문학회에 들어섰다. 정말 많은 구두와 운동화가 보였다. 그 신발들 사이에 내 남편감이 될 사람이 있을 줄, 거기서부터 내 인생의 뜨거운 연애가 시작될 줄은 전혀 몰랐다.
강연회가 이미 시작된 방문을 열었다. 끼익.
그러자 남편이 확 눈에 들어왔다. 너무너무 예쁜 오빠! 완전히 내 스타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문학회에 아주아주 열심히 나갔다. 그 예쁜 오빠는 날 빤히 바라봤다. 아주 어쩜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를 자주 바라볼 수 있지? 내가 그렇게 예뻐 보이나? 나는 내가 아주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미인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렇지, 그는 해맑게 웃기까지 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모임이 끝나면 그는 나한테 인사도 없이 가 버리는 것이다. 안중에도 없다. 일부러 그러는 걸까? 나를 향한 마음을 짐짓 감추려는 걸까?
그래서 나는 문학회에서 격의 없이 지내게 된 한 남자를 통해서 내가 연모하고 있음을 정확히 전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 사람 차 씨는 기꺼이 방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 주었다.
나중에 혼인을 하고 나서 안 이야기이지만 그때 남편은 나를 보았던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앉아 계셨던 김해자 시인을 계속 보았던 것이라고 했다. 김해자 시인은 그때 남편을 남동생마냥 예뻐해 주었다.
그러면 어떠랴. 남편은 현재 나와 같은 이불을 덮고 있으니.
다만 문제는 철도원이기 때문에 이불을 덮는 일이 아주, 아주 불규칙적이다. 2교대도 아니고 3교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승무 일정이 미리미리 나와 주는 것도 아니고, 또 그것마저 자주 바뀌게 되고. 더군다나 휴일이 없다.
혼인을 처음 했을 때 비번이라는 날이 20일에 한 번씩 생겼던 것 같다. 그때 남편은 수색에서 검수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혼인하기 전에는 일근으로 일했는데 혼인날을 받을 즈음 교대근무로 돌렸다. 급여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급여보다 너무 한 게 휴일이라는 개념이 철도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 쉬었다 출근한다는 개념이 그때의 휴일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휴일이 정말 많은 거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다른 부부들이 주말에 아이들 손잡고 소풍 가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나는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 남편이 없어도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안고 혼자서 돌아다녔다. 워낙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힘든 줄 몰랐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지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칭얼거리면 서글퍼졌다. 아, 내가 과부인가? 이게 뭔가? 왜 남편은 일요일에는 한 번도 못 쉬는 거지?
어느 일요일? 세 살, 네 살 아이 둘을 데리고 경복궁에 갔다. 나는 비 오는 날 경복궁에 가는 걸 좋아했다. 연애할 때 남편하고도 경복궁에 자주 갔다. 그런데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면 힘 있는 아빠들이 아이들을 챙겨줘야 한다. 둘째 아이가 계속 업어달라고 칭얼댔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부천에서 그곳까지 내가 아이들을 끌고 갔으니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업고 돌아다녔다. 내가 과부도 아닌데 왜 나는 남편 없이 이렇게 돌아다니지? 휴식시간마저도 충분하지 않은데 삶의 질까지 바란다는 것은 그때 남편의 직장에게 너무 큰 걸 바라는 것이었다. 그때 업으면서 아이 팔을 너무 세게 잡아 다녀서 팔이 빠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팔이 빠질 수가 있을까? 아동학대 수준이었다. 남편 없이 돌아다니는 게 너무 속상해서 “그래, 어서 업혀, 자!” 하고 아이 팔을 잡아당기며 업었는데 그때 너무 큰 힘을 주었던 것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둘째에게 너무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무척 아프다.
이혼한 것도 아닌데, 과부도 아닌데 맨 날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돌본다는 생각에 속상했다. 철도원은 퇴근하면 집에 와서 푹 자야만 한다. 불규칙한 근무, 또 밤을 새워 일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몸이 회복되려면 충분히 자야 하는데, 남편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데 철도의 근무형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충분히 자고 나면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취침시간과 식사시간 그리고 통근시간만을 계산해서 출근일정을 짜주는지 기가 막힐 정도였다.
황신혜, 문성근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생과부청구소송>이 있다. 철도원과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아내들은 모두 생과부청구소송을 낼 권리가 있다. 남편은 10년 동안을 공무원으로 살았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공사로 바뀌게 되었지만.
진짜 과부가 아니라 생과부청구소송이란 말은 바로 철도원과 같은 비인간적인 업무일정을 강요받는 이 땅의 모든 아내들이 들고 일어 날만한 일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것은 희극적인 것이지만 가족이라는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하다. 굳이 가족이라는 것이 아니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시간은 불규칙한 노동, 밤을 새워야 하는 노동으로 인해 쌓인 피로를 풀고 나서 주어지는 시간이지 쌓인 피로를 풀어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까지 포함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남편은 기차를 많이 태워줬다.
남편이 나한테 처음으로 시켜준 기차여행은 진해 벚꽃열차였다. 이 땅의 아름다운 땅이란 땅은 모두 다 미군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눈으로 확인했고 벚꽃이 만연한 진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았다. 그리고 남편은 그때 기차를 타면서 해삼을 샀는데 그걸 그 기차를 탄 승무원한테 먹으라고 주었다. 나는 그때 그걸 얼마나 아까워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기차를 탈 때 남편의 동료들에게 줄 ‘간식 챙겨야 하는데’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요기보라 뿅 하면서 가리키는 반대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는 게임을 했다. 서울에서 진해로 내려갈 때는 의자에 앉아 갔는데, 올라올 때는 발전차를 탔다. 그 덕분에 게임을 하면서 올라갈 수 있었다. 진 사람은 꿀밤을 맞았다. 내가 계속 지니까 나는 꿀밤 맞는 게 싫어서 엄청 아픈 척 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때 남편은 꿀밤대신 내 빰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는 듯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그러자 그 게임이 더 재미있어졌고 나는 더 많이 졌던 것 같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여수에도 갔고 화천에도 갔고 땅끝마을도 갔다.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였다.
“저는 동화 쓰는 게 꿈이에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취재도 하고 싶어요.”
“그럼 나랑 같이 다니자. 기차 타고.”
그 자리에서 나는 이 남자다 싶었다.
아직까지 남편하고 취재를 하러 간 적은 없다. 그 대신 기차는 많이 탔다. 아마 기차를 가장 많이 탄 철도원 아내를 뽑는다면 내가 뽑히지 않을까?
기차를 타고 쌍계사에도 가 보았고, 보성 차밭에도 갔고,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와 하동, 보성, 화순을 지나는 경전선도 타 보았다. 여태 타본 기찻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에 갔다가 일본으로 떠나는 배도 타 보았다. 남편은 내 여동생과 내 표를 끊어주었다. 그렇게 간 일본 여행도 잊을 수 없다.
아마 남편과 나 사이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 중 3할은 여행일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과부처럼 지내지만 멀리 떠나는 기차여행에서는 금슬 좋은 신혼부부가 되었다.(물론 안 싸우며 다녔다면 거짓말이지만)
늘 쌓여 있는 피로 속에서도 내가 떠나고 싶어 하면 기차여행을 잡아주는 남편, 철로가 놓인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이라 일이 끝나면 누구보다 집안에서 쉬고 싶을 텐데도 구경을 멈추지 않는 나, 그리고 엄마를 닮아 여행을 좋아하는 딸들한테 남편은 멋진 안내원이 되어 준다. 너무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순간에 말이다.
철도원의 가족으로, 또는 그의 아내로 살면서 가장 행복한 점은 이런 것일 것이다. 일 욕심 많고 투정 많고 게다가 여러모로 서툰 게 많은 나를 지금껏 위로해 주고 채워주려고 하는 것은 10억짜리 기차를 끌고 다니는 남자가 보여주는 사랑일 것이다.





김용란

제 561호
2006년06월22일 10:3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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