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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누이여
징하게 미운 누이여
미치게 미운 누이여
내가 시인이란 걸
치를 떨며 부끄럽게 한 누이여
결국 시를 쓰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게 하는 미운 누이여
누이여 아는가
내가 아침마다 먹고 살려고
출근하는 길이
청파동인데 서울지역본부 정문 앞을
날마다 지나쳐 걸어야 한다는 것 아는가
2월 어느 날 서울역 대합실에서 최소 한달은 싸운다고 결의식을 가질 때 절대 믿지 않았다는 걸, 그날 부른 파업가는 내겐 투쟁가가 아니라 노래방에서 불릴 대중가요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다는 걸, 누이가 침낭을 펼친 서울지역본부 건물 철조망에 노란꽃이 피어날 때도, 건물에 내림막이 펼쳐졌을 때도, 누이여
벌써 노란개나리 피고지고, 벌써 담벼락에 매달린 노란꽃 누렇게 바랬고, 노란꽃잎에 또박또박 쓴 글자들 하얗게 바래고, 내 절대 믿지 않으려했던 믿음 처절히 짓밟으며, 국회에서 들려나가고, 거리에서 쫓겨나고, 언론에서 누이의 소중한 순결 짓이겨질 때, 누이여
누이여, 사무치게 미운 누이여
오월 열하루날 누이의 몸이 닭장차에 실리고, 차마 누이가 실려 갈 때 다가서지 못하고, 누이 없는 틈에 살그머니 보금자리에 고개 숙이며 스며들어, 보았지 보고 말았어 먹지 않은 사과 한 알 오렌지 한 알 이층 계단에 뜯지 않은 라면 봉지와 함께 뒹굴고 있는 걸, 누이가 끌려간 회의실엔 노란 바람개비 네 개가 탁자 위에 주인 잃고 돌아갈 힘도 없이 멍하게 서 있는 모습을, 누이여
누이여 모르지 모를 수밖에 지금 차가운 마루바닥에 있을 테니 모를 수밖에, 누이가 떠나자 부랴부랴 그 날의 내림막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담벼락의 노란꽃도 우수수 바람에 사라져 보이지 않고 언제 꽃이 피었냐는 듯, 누이여
누이여 하지만 없애려 해도 결코 없어지지 않은 누이처럼, 지우려 해도 절대 지워지지 않을 누이처럼, 노란꽃 하나 사철나무 귀퉁이에 홀로 피어 누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누이의 노란꽃 뭉갠 이들은 아직도 모를 거야, 담벼락 아래 칼로 잘린 노란꽃잎 한 장 보도블록 위에 떨어져 행인들의 발길에 짓밟히면서도 피어있다는 걸 모를 거야 모를 수밖에, 누이가 민들레가 되어 웃고 있다는 걸, 누이여
모질게 피어나는 누이여
끈질기게도 피어나는 누이여
발길에 채이고
길거리에 내팽개쳐지며
피어나는 누이여
고속철도의 꽃이
비정규의 꽃이 되건 말건
투쟁의 꽃이 되건 말건
미운 누이여
누이의 삶은 이미 민들레꽃이 된 것을
누이의 얼굴은 이미 노란 민들레꽃이란 걸
못난 시인의 머리 쥐박으며
피어나는 희망의 기적소리라는 걸
미치게 잠 못 들게 하는 이 밤
환하게 달빛 아래
누이의 꽃
피고 피고 또 피고
* 오도엽은 1967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1997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리고 여섯 해 지나 만나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