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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5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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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노동자 철학 2]
오월은 푸르구나

김경윤 || VIEW : 901/124
File: 5월은푸르구나97.hwp(7.8 KB)
 
영국시인 T.S. 엘리엇(Eliot)은 그의 장편 시 '황무지'에서 이렇게 노래를 시작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4월은 사실 잔인한 달이 아니라, 풍요로운 달이다. 문제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다.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시간 4월에 우리의 삶도 소생되고 있는가? 새로운 꿈, 새로운 힘으로 차가운 현실을 뚫고 나오고 있는가? 문제라면 이것이 문제다. 시인 엘리엇은 현대사회를 ‘황무지’에 비유하며 현대인의 불모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자연의 계절은 순환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 그러나 인간의 계절은 모순과 의혹투성이이다.

사실 엘리엇의 시는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 앞에 재미난 구절이 있다. 소개하면,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 ‘죽고 싶어.’”

여기에 등장하는 무녀는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라는 트로이의 무녀이다. 그녀는 신들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다. 인간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녀는 영원한 젊음을 약속받지는 못했다. 축복이 저주로 변하는 순간이다. 영원한 젊음을 누리려 했으나 영원한 늙음만이 더해가는 저주. 그녀의 몸은 늙어 점점 쪼그라들고 결국은 조롱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이제 그녀의 소원은 불멸이 아니라 죽음이다.

현대인은 어떠한가? 과거에 비해 인간은 신의 능력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했으며, 정보화시대의 인간은 자신의 영토를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유전자혁명이 성공한다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생명력이 연장될 것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존재인 인간에게 위대한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면? 현대인은 어떠한 운명을 겪게 될 것인가?

사실 인간은 전 인류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정도의 생산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김구 선생은 이야기했다. 김구 선생이 꿈꾼 세상은 강한 나라, 부유한 나라가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였다. 인도의 정신 간디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했다.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단 한 사람의 ‘욕망’을 채우기에도 부족하다”고. 간디가 꿈꾼 세상은 김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경제적 성장과 무한의 욕망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힌 사람에게 행복은 결코 다가오지 않는다.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누는 것이 행복에 가까운 삶일 것이다. 지금을 보살피는 삶이 바로 행복일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나의 가난은」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5월은 나눔의 달이며 연대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모두 5월에 있다. 우리 역사에서 5월 18일은 참다운 나눔과 저항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던 날이기도 하다. 어린이날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현재로 끌어안는다. 어버이날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현재로 끌어안는다. 스승의 날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끌어안는다. 그리하여 광주민주화항쟁의 날 우리는 자랑스런 역사를 우리의 현재로 끌어안는다. 그 푸르른 삶이 5월이 우리에게 바라는 삶이다. 5월은 어린이만 푸르러지는 계절이 아니다. 5월은 모든 사람이 푸르러지는 달이며, 새롭게 자라나는 달이다.


김경윤 /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 운영위원

미분류호
2006년06월19일 1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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