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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5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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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2]
노동운동과 어용노조

원영수 || VIEW : 2513/305
 
미국의 노동조합연맹(AFL)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경제적 요구에 한정시켰고, 투쟁보다는 협상을 고집했다. 더 나아가, 아래로부터 투쟁이 터져 나오는 경우 폭력배를 동원하여 진압했다.
    지난 200여 년간 노동자의 권익을 찾기 위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역사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피눈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어용과 타협, 변절의 역사 또한 도처에 깔려있다. 그리고 단지 역사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노동운동을 좀먹는 비리세력, 타협세력은 노동운동 안팎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와 노동조합

    19세기를 전후하여 영국을 필두로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조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자본에 임금노예로 종속된 노동자들이 단결을 이루어 살인적 기아임금과 비인간적 노동조건에 항의하여 노동조합과 집단적 계약을 요구하는 초보적 운동이 등장했고, 그 조직적 성과물이 노동조합이다.
    당초 일부 산업지대와 특정 숙련공에 한정되었던 노동조합은 근대적 대규모 공장제도가 자리잡음에 따라, 반숙련 비숙련 노동자 대중의 조직으로 발전했다. 이런 노동조합은 개별 사업장과 지역을 넘어서 전국적인 산별노조, 더 나아가 전체 산업의 노동자를 포괄하는 노총(national center)을 이루는 단계로 나아갔다. 더불어 국제적 수준에서도, 19세기 말에 국제적 산별노련이 결성되었고, 20세기 초에는 전세계 노동자들을 한데 묶는 국제노총도 등장했다.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은 단지 사업장 수준에서 경제적 이익옹호에 머무르지 않았다. 노동운동은 임금과 노동시간, 노동조건 등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보통선거권 등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발전했다. 이런 정치세력화의 성과로 19세말 유럽의 경우 대부분의 노동운동은 사회당, 사민당, 노동당 등 사회주의정당을 통해 노동자들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대중정당을 발전시켰다.


    어용노조 : 자본의 앞잡이

    그러나 노동운동의 이런 비약적 발전에는 어두운 면도 동시에 존재했다. 노동운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역할을 경제적 이해증진으로 한정하는 노동조합주의, 즉 실리주의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자본과의 투쟁보다는 자본과의 협력을 통해 조합원의 이해증진을 추구했고,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반대했다.
    이들은 자본과의 투쟁보다는 협상을 옹호했고, 정치투쟁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사무엘 곰퍼스가 이끄는 미국의 노동조합연맹(AFL)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경제적 요구에 한정시켰고, 투쟁보다는 협상을 고집했다. 더 나아가, 아래로부터 투쟁이 터져 나오는 경우 폭력배를 동원하여 진압했다. 따라서 미국의 노동조합운동은 자본에 대한 투쟁만이 아니라, 어용노조와의 투쟁을 통해서 성장해야 했다. 1930년대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점거파업과 대중파업을 통해 미국의 산별노조(CIO)는 어용노조와의 투쟁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 사례이다.


    냉전시대 : 노동운동의 분열과 어용노조

    냉전시대는 노동운동을 왜곡시켰다. 2차대전을 경계로 어렵게 노동운동의 단결을 이룬 세계노련(WFTU)은 미국의 사주를 받아 이탈한 일부 반공주의 노조들로 인해 세계노련과 국제자유노련(ICFTU)으로 다시 분열되는 역사를 맞아야 했다.
    특히 매카시즘을 통해 전투적 산별노조를 흡수통합한 미국의 노총(AFL-CIO)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의 앞잡이가 되었다. 미국노총은 미국무부․CIA와 협력하여 남미의 군부쿠데타에 협조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친자본적 미국식 노조를 이식하기 위한 공작을 벌였다. 그들은 한때 한국에도 사무실을 열어 반공주의와 노사협조주의를 전파하는 전도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철도노조 민주화과정에서도 익히 알고 있듯 한국노총은 노동자를 감시하고, 자본의 편에서 구타와 감금 등을 행사하는 구사대의 역할에 앞장섰다.


    한국노총 - 오욕의 역사

    민족분단 시대 남한의 노동운동 역시 냉전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일제 민족해방투쟁과 계급해방투쟁을 결합한 일제하 노동운동의 자랑스런 전통은 궤멸되었고, 국가와 자본에 결탁한 반공주의 노조인 대한노총(후에 한국노총)이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이 되었다.
    냉전의 질곡 속에서 남한 자본주의와 함께, 또는 1970년 전태일의 정신과 더불어 새로 등장한 경공업 여성노동자 중심의 1세대 민주노조운동은 불행히도 독재정권과 자본만이 아니라 한국노총과도 맞서서 투쟁해야 했다.
    한국노총은 동일방직, YH무역 등 민주노조투쟁을 대변하기보다는, 살인적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자본의 편에서 구타와 감금 등을 행사하는 70년대판 구사대의 역할에 앞장섰다.


    민주노조운동 - 오욕의 역사를 투쟁으로 다시 쓰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등장한 2세대 민주노조운동 역시 한국노총의 틀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전노협의 건설은 어용노조로부터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투쟁의 집약이었고, 이는 1995년 민주노총의 설립으로 어용노조를 뛰어넘어 민주노조가 주도하는 양대노총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2006년 공무원 노조의 가입으로 민주노총이 제1노총이 되는 현시점에 이르고 있다.
    군사문화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노조민주화 투쟁은 어용세력과의 투쟁을 통하여 현장의 조합원이 주인되는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투쟁이었다. 또한 민주노조가 수립된 이후에도, 자본측은 어용세력을 통해 폭력과 협박을 통해 민주노조를 존립부터 위협하고 또는 매수와 포섭을 통해 무력화시키는 공작을 되풀이해 왔다.
    기본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은 한편에서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노동조합과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이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권과 자본의 앞잡이 어용노조에 맞선 투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오욕의 역사를 투쟁을 통해 돌파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21세기의 냉혹한 현실 - 어용노조의 유혹은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전투적 민주노조운동을 압살하기 위한 정권과 자본의 공세는 끊임없이 지속되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1997~98년 IMF경제위기를 매개로 가속화된 정권과 자본의 구조조정, 노동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공세는 현장의 공동화를 가져오면서 민주노조운동 전반에서 타협적 기조를 확산시켰다. 특히 노사정 사회적 협약을 둘러싼 내부의 갈등은 현시기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위기를 촉발시켰다.
    이런 노동운동의 위기는 다양한 수준에서 표현된다. 연이은 비리사건에서 드러나는 노사유착, 노사정 협약을 매개로 한 타협주의, 현장의 정서와 목소리를 외면하는 관료주의 등. 이런 노동운동의 위기는 어용노조의 독버섯이 피어나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과는 달리, 현장의 정서를 핑계로 더욱 교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낮에는 투쟁을 외치지만, 밤에는 저들과 야합하는 지도자들, 이들의 타협을 남의 일로 여기는 조합원들, 법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자본의 공세 속에 민주노조는 조금씩 조금씩 그 활력을 잃어가고, 자주성과 민주성, 전투성을 내건 민주노조는 껍데기만 남는다.
    어용노조는 과거의 역사, 또는 외국의 사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투쟁으로 돌파해온 민주노조 내부에도 숨어있다. 민주노조가 정규직 대공장노동자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현장의 정서를 핑계로 비정규직의 눈물을 외면하는 한, 새로운 어용노조가 민주노조운동의 주류이자 주력이 되는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원영수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제 565호
2006년08월05일 17: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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