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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5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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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임금에 대하여

채만수 || VIEW : 946/121
File: ~한민국과임금에대하여97.hwp(12.3 KB)
 
'2002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2002년 어느 날 '인권운동사랑방'의 홈페이지 써버가 마비되고 다운된 적이 있다. 한겨레신문은 오늘날에도 역시 그 홈페이지 상단에 '2006 독일 월드컵'이라는 배너를 달고 있지만, 당시도 역시 난다 긴다 하는 언필칭 '진보적 지식인들'을 동원, "대~한민국"을 선도하고 있었는데, 이에 인권운동사랑방이 "진보적 지식인들이여, 국가주의를 선동하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그 홈페이지에 실은 데에 대해서, 엄청난 수의 '붉은 악마들'이 자신들은 선동에 놀아나고 있는 게 아니라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며 공격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이 자주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경우 지배계급이, 즉 자본이 여러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주입하고 유도하는 대로 사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TV, 라디오, 신문 등 대자본이 소유 장악하여 활용하는 대중매체가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은 더욱 그렇고, 특히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간에 이해가 상충되는 사안일수록 그렇게 노동자계급을 장악하기 위한 자본의 허위 이데올로기가 횡행한다.

자본과 그들의 나팔수들인 언론이나 제도권 지식인들이 유포하는, 임금을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 역시 대표적으로 그러한 허위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이다. 임금이야말로 바로 자본가들의 이해와 노동자들의 이해가 직접적으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부면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언론 등은 말한다. 임금은 노동의 대가이며, 따라서 파업이나 결근 등으로 '무노동'이면 '무임금'이라고. 그러나 임금이 노동의 대가라는 저들의 주장은 철저한 거짓말이고, 따라서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주장 역시 순 억지일 뿐이다. 임금은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노동, 그 노동이 창조하는 가치의 일부일 뿐이고, '자본가계급+노동자계급'으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가 존속하고 확대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노동자계급의 생존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비로서, 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의 극히 일부가 지불되는 것이고, 그 노동의 더 많은 부분은 자본에 의해서 '노동자에게 지불되지 않는 노동'으로서, 잉여가치, 잉여노동으로서, 이윤으로서 착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임금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는 주장의 하나에, "임금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따라서 국가경쟁력이 떨어져 경제위기가 온다"는 것이 있다. 물론 거짓 억지 주장이다. 그런데, '진보적'이고 '노동자 편'인 듯이 행동하는 일부 경제학 교수들 중에는 이러한 억지 주장을 이렇게 반박하는 경우도 있다. 즉, "한국은행의 통계를 분석해보면, 상품가격 중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8%밖에 안 되고, 따라서 임금을 10% 올려도 물가는 0.8%밖에 오르지 않는데, 물가인상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하는 식으로! 매우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이 역시 거짓이다.

사실을 사실 대로 말하면,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물가는 전혀 오르지 않는다. 왜냐? 상품의 가격은 결국은 그것을 생산하는 데에 그 사회에서 평균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고, 임금이 오른다고 해서 그 필요노동시간이 증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 이래의 저 유명한 '노동가치론'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이 역시 단지 자본의 이해에 봉사하기 위한 억지일 뿐이다.

주어진 지면이 극히 작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지만, 저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말처럼 만일 상품의 가격이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면, 자본가들은 왜 그토록 생산성 증대에 목을 매겠는가?

어떤 공장, 예컨대 어떤 자동차 공장에서 지난해에는 노동자 한 사람 당 1주일에 소형차 1대를 생산했는데, 금년에는 설비를 개선하고 노동방식을 바꾸어 같은 차 2대를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작년에 비해서 금년의 노동생산성이 2배 증대한 것이고, 자본가들은 그런 식의 생산성 증대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왜 그럴까? 다름 아니라, 금년에는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데에 작년의 절반의 노동시간밖에 필요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작년의 절반 가격으로 생산하는 것이어서 그만큼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생산성'에 그토록 매달리는 이유를 달리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상품의 가격은 그렇게 그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며, 따라서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물가는 절대 오르지 않는 것이다.

임금이 오르면 변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자본가의 이윤이다. 임금이 오르면 이윤이 줄어드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노동하여 창조하는 가치―이를 '가치생산물', 혹은 '부가가치'라고 한다―의 극히 일부를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자본가가 이윤으로 착취한다고 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인데, 노동시간이 일정할 때, 따라서 가치생산물 혹은 부가가치의 크기가 일정할 때, 임금이 증대하면 그 나머지인 이윤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누르기 위해서 온갖 억지 주장과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비, 즉 노동자 가족의 생계비라고 했지만, 오늘날 보는 것처럼 그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대공장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임금을 받고, 중소기업의 대부분 노동자들이나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형편없는 임금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쨌든 굶어죽지 않고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말하자면 '정당한' 재생산비는 어떤 크기의 것일까?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논밭의 작물은 충분한 영양분과 물을 공급받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가 시들어 죽는 게 아니다. 어느 한도를 넘으면 시들어죽겠지만, 대개는 자란다. 다만, 위축되고 뒤틀린 형태로! 임금의 크기와 노동력 재생산의 관계도 그와 같다. 어느 한도까지는 임금이 적다고 해서 굶어죽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노동력이, 즉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특히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뒤틀린 형태로 재생산될 뿐이다.

단결과 투쟁을 통해 '정당한' 재생산비를 획득하느냐, 그리고 나아가서는 착취 없는 세상을 건설하느냐, 아니면 '애국'이니, '사회적 합의'니 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놀아나고 혼을 빼앗겨, "대~한민국" 따위나 외쳐대면서 자신과 가족의 위축되고 뒤틀린 삶을 이어가느냐? 이는 물론 노동자들 자신의 각오에 달렸다.


채만수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장

미분류호
2006년06월19일 6: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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