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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선봉’이라는 찬사가 철도노조의 조직 피로도를 해소해주는 것은 아니다. |
어떤 투쟁도 조직의 피로가 쌓이게 마련
실제로 단기적 기준으로, 실리적 관점으로 보자면 지난 수년에 걸친 철도노조의 장렬한 투쟁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오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투쟁의 성과란 단기적 관점으로만 평가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평가하는 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없을 때 우리는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이름의 패배주의에 빠지기 쉽다. 역사적 관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10년 전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괴롭힌 임금가이드라인에 맞선 투쟁이다.
투쟁의 성과란 단기적 관점으로만 평가될 수 없어
공공부문의 임금이 노사간 힘겨루기를 통한 교섭으로 결정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 받아들여진 것은 불과 10년 전.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민간 제조업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임금인상이 이어지자 정부는 이를 공공부문의 임금억제로 상쇄하기 위해 공기업에 대한 강력한 임금통제 정책을 채택한다. 재경부가 나서서 임금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그를 어기는 공공부문의 기관장에 대해서는 엄격한 문책을 단행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부 지배 하의 공기업들에 있어서 임금가이드라인은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기관장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임금가이드라인의 불가피성을 얘기했고 결국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 불만은 많았지만 별 수 없이 이를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러한 불만이 누적되면서 공공부문의 민주노조운동이 살아났다. 견고해보이던 그 불가피성이 서서히 변화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94년 철도노조와 지하철의 파업, 95년 한국통신노조의 투쟁은 이러한 정책에 대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지금 경영진들이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얘기하듯 그 당시에도 경영진들은 임금가이드라인 수용의 불가피성을 얘기했다. 하지만 결국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 앞에 이 불가피성은 역사적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임금가이드라인을 역사에 묻는데 선봉에 섰던 노조들, 특히 KT노조의 조직피로도와 그에 따른 상처는 작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의 일부 철도노조원들이 지적하는 것과 같이 KT노동자들도 ‘우리가 임금가이드라인 철폐에 이용되기만 했지 우리들의 희생은 너무 컸다’는 불만이 현장으로부터 제기되기도 하였다. 조합원에게 나의 임금이 정부 통제에 의해 억제된 것에 대한 분노 이상을 만들어내지 못한 운동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그 당시 KT노조를 이끌었던 필자를 비롯한 지도부가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투쟁에 실패한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심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KT 지도부,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심어주지 못해
임금가이드라인에 맞선 공공노동자들의 투쟁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을 철회시켰다는 외적인 성과에 있는 게 아니다. 임금가이드라인 정책이 공식 철회된 이후에도 정부의 예산통제는 형태를 바꿔가며 부활하곤 했었다. 따라서 임금가이드라인 반대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자각이 지금의 공공연맹으로 발전되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단기적 관점이 아닌 역사의식을 갖고 투쟁은 평가되어야 한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투쟁이 갖는 역사적 의의도 이와 같아서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겠지만 결국에는 공공대산별노조라는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지금의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은 실속 없는 저항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역사를 믿지 못할 때 노동자의 선택은 현실이라는 이름의 투항이다. 그리고 그 귀결점은 KT의 구조조정 사례가 보여주듯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조정과 그를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임금노예로서의 삶뿐이다.
이해관 / 한통 해고동지



‘투쟁의 선봉’이라는 찬사가 철도노조의 조직 피로도를 해소해주는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