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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민들 “IMF때보다 더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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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3월 13일 10시 42분 52초
서민들 “IMF때보다 더 힘들어요”


12일 새벽 4시30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현대시장 앞 네거리 인력시장에 사람들이 한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50~60대 남자들이었다.

잠시 뒤 나타난 승합차에서 누군가 내리더니 “미장, 아시바(비계, 건축 주변 보조물 설치 및 제거), 철근!”이라고 외쳤다. 승합차는 몇 사람을 싣고 갔다. 그러나 사람 수는 줄지 않고 점차 늘어났다. 5시30분께는 40여명으로 불어났다.

유아무개(45)씨는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새벽에도 이곳에서 꼬박 두 시간을 기다렸지만 몸을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요즘엔 일하는 날이 일주일에 3일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 포장마차에서 라면으로 아침 허기를 채운 미장공 김아무개(59)씨는 “한 달에 보름은 (일)해야 먹고 사는데, 이 달에는 하루 일했다”고 하소연했다. ‘마지막’ 승합차가 떠나간 뒤, 거기에도 끼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경기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온나라가 불황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서민들이 겪는 불황의 ‘체감온도’는 더욱 곤두박질치고 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나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앞이 안 보인다”, “아이엠에프 때보다 더하다”는 한탄도 쏟아진다.

서울 강남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40)씨는 “설이 지나면서 ‘사람 쓰겠다’는 전화가 뚝 끊겼다”며 “파출부의 경우, 대기자의 절반도 일을 못 나간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서울시내 직업소개소들은 아예 심부름센터로 ‘업종변경’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말 실업자 수(실업률 2.7%)가 11만7천명이었으나 지난 1월에는 16만1천명(실업률 3.5%)으로 불과 한 달 만에 5만 가까이 늘어났다. 전국노점상연합회 김경림 선전국장은 “살길이 없어 노점상을 하겠다는 상담전화가 일주일에 서너통이던 게 최근에는 10~15통으로 늘었다”며 “하지만 기존 노점상들도 ‘죽겠다’고 하는 판이라 말리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불황의 여파는 서민들의 ‘쌈짓돈’이 오가는 재래시장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시장에서 10년째 과일가게를 하는 김아무개(48)씨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도 몇 달 전 매상의 절반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아예 가게를 내놨지만 보러오는 사람도 없다”고 허탈해했다. 이곳에서 어묵 등을 파는 김아무개(55)씨는 “지난해는 하루 10만원어치를 팔았는데 올해는 하루 수입이 4~5만원”이라며 “농사일을 접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보증금 500만원, 월세 17만원짜리 단칸방 생활을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유흥가 주변 가게들도 불경기 늪에서 허덕이긴 마찬가지다. 지난 11일 밤 단란주점과 노래방이 즐비한 서울 불광동 ‘먹자골목’에는 밤 10시 이후 지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긴 유흥가 안쪽 가게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이 골목 상가번영회 부회장 안성(50)씨는 “매출액이 월세 낼 만큼도 안 돼 종업원들을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상인들 사이에선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일 정도”라고 혀를 찼다.

ㅁ식당 주인 이아무개(51)씨는 “북한 핵문제나 이라크 전쟁 같은 게 빨리 마무리되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석진환 김태형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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