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기자 현장속으로>
금강산육로 열려야 한다
나의 집 서재 책상위에는 어지럽게 흐트러진 책들위에 먼지가 푹푹 쌓여있다. 작년 12월 2일 나는 기자가 되었다. 나는 기자가 되기 직전까지 EBS에서 불교강의를 했다. 그때 흐트러놓은 대장경 책더미들을 정리할 틈도 얻지못한채 나는 시세의 홍류에 휩쓸려 갔다. 두달 동안 눈코뜰새없이 살았다. 잠부족을 한(恨)하면서. 겨우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 구정연휴였다. 연휴의 고마움을 이토록 절감한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야∼ 이제 책상위 먼지를 털 수가 있겠구나 흐트러진 책을 하나 둘 서가에 다시 꽂고 있자니 불교철리의 심오한 단상들이 새록새록 가슴속에 되살아난다. 학문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과 함께!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장도 살아있는 우리 철학사의 일부일 뿐이야! 이렇게 위로하면서 오랜만의 한가로움을 달래야만 했다.
모처럼만에 아내와 영화 하나를 봐야겠다. ‘이중간첩’을 선택했다. 밤늦은 시간, 서울극장의 쓸쓸한 상영관의 어둠을 헤치고 나오면서 나는 분노의 일갈을 터트렸다. 신인감독에 대한 기대가 너무도 일그러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이중간첩 이야기도 아니었다. 단순한 위장남파간첩의 클래시칼 스토리에 불과했다. 흘러가 버린 구시대비극의 말엽적인 이야기를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나열해놓았다. 북파공작선, 동백림사건, 인혁당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의 의미없는 죽음…. 도무지 변해가는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전혀 반영되어 있질 않다. ‘제이에스에이’에서 ‘쉬리’의 아류로 퇴보한 시대착오적 졸작이었다.
우리는 북한을 좀더 깊게 이해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상식이 허용하는 맥락에서,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집단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의 성립은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고 폐쇄적인 테두리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존재이유를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나름대로 모종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질서를 우리 기준에 따라 일방적으로 해석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그들의 삶의 실상, 그 가치관을 깊게 이해해야 한다. ‘이중간첩’식의 안일한 이해방식은 매우 위태롭다.
부시대통령 새해 국정연설의 “무법정권”이라는 언급을 “침략선언”으로 분격하면서도, 아태평화위 대변인이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업지구건설 사업등을 “훼방이 크면 클수록 우리민족끼리 더욱 진취적으로 통크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북한이 북핵문제를 포함한 남북교류문제에 관하여 유연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일면을 입증하고 있다. 그나마 그것은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어온 민간교류의 성과라고 보아야 한다.
2235억원을 둘러싼 의혹의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반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상규명이 전제되지 않은 대국민설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상규명의 차원과 남북교류의 차원은 별도로 적극 진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다를 통해 북한을 가는 것과, 육로를 통해 북한을 가는 것은 비슷한 스토리인 것 같지만, 전혀 그 상징성이 다르다. 육로개통은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던 반세기의 철책선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제2차 세계대전후 성립한 냉전시대의 하한선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서구라파 계몽주의의 부산물인 이데올로기의 종언의 진정한 시작을 의미하는 세기적 사건이다. 그것은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지는 것보다 더 중대한 세계사적 사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사건을 음모와 비리와 억압과 구속으로 포장해서 만방에 공표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국제적 망신을 작심하지 않는 이상, 국가적 체면과 민족의 평화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정몽헌회장과 김윤규사장은 영예롭게 육로관광의 당사자로서 최초로 북녘땅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마땅하다. 출국금지는 검찰수사편의를 위한 일방적 방편에 불과한 것이며, 또다른 편의를 위해 얼마든지 해제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우리국민과 당사자들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노자(老子)의 말을 선사하고 싶다.
堅强者, 死之徒;
柔弱者, 生之徒.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김용옥 기자/doholk@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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