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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노] 철도노조 '2·25파업' 주역 김재길 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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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9월 23일 10시 12분 15초
철도노조 '2·25파업' 주역 김재길 전위원장

기획인터뷰 "어떻게 지내십니까?"

김동원 본지 편집국장


"사퇴요? 당연한 거죠"
'2·25파업' 비판 더 잘 싸우기 위한 바람…현장에서 조합원 만나고 싶다

올해 초 분단이후 최초의 철도노조 '공인' 파업을 이끈 김재길 철도노조 전 위원장. 그는 지난달 28일 이·취임식을 끝으로 철도노조 위원장직과 관련한 모든 공식업무에서 손을 뗐다.

이제 그는 노조지도위원이란 직함을 갖게 됐지만 엄밀히 말하면 또 한사람의 철도 '해고자'가 된 것이다. 지난달 있었던 철도노조 임원 선거에서 '계승이냐' '단절이냐'는 쟁점의 당사자이기도 했던 김재길 전 위원장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지난달 28일 오후 지하철 1호선 용산역 부근의 철도노조 건물 2층 연회장에선 철도노조 위원장 이·취임식이 열렸다. 여느 노조라면 한바탕 홍역과도 같은 선거전을 치른 뒤 의례적 행사였을 이·취임식이었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을 가득 메운 300여명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상기된 표정에선 이날 행사가 남다른 의미가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민주' 철도노조의 뿌리내리기라고 할까. '직선제'로 상징되는 지난한 노조민주화 투쟁 끝에 세운 민주노조 깃발을 새로 선출된 집행부에서도 지키게 됐음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더욱이 새 집행부는 지난 2월 분단 이후 철도노조 사상 최초로 '공인'인 파업을 이끈 초대 직선위원장 김재길의 임기 중 자진사퇴라는 '결단'으로 잉태됐다.

"'결단'이란 표현이 더 부담스럽군요. 조직의 지도부로서 사퇴 결심은 당연한 거였는데요."
철도노조 전 위원장 김재길은 자신의 중도 사퇴문제와 관련해선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언제부턴가 노동조합 역시 일종의 권력 요소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런 현상은 사업장이 클수록, 노조가 결성된 지 오랠수록 심하다. "나 아니면 안돼"하는 데서 비롯된 반목과 갈등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현장을 등지게 했다.

노조안정화, 하반기 투쟁 전제

김재길의 자진 사퇴가 각별하게 다가오는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2월 파업의 합의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하반기 투쟁이 중요해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조직 혼란은 절대 금물이지요. 위원장이 징계 받은 상태에서 철도청이 이를 물고늘어지면 초점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민주철노는 탄생한 지 이제 1년밖에 안됐어요. 철도청은 탄압과 교섭회피의 빌미를 찾고 있고 어용세력도 여전합니다. 하반기 투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조직 안정화가 시급했습니다."

이런 그의 입장으로 보면 한편, 자신이 이끌었던 '2·25파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의 소산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2·25파업'을 온전히 성취하는 것 말이다.

"지난 94년 기관사가 주축이 된 전기협이 파업했을 당시 노조집행부는 전경들에게 수고한다고 도시락을 나눠주고 나중엔 파업참가 조합원 징계에 앞장섰습니다. 그런 노조집행부에게 당했던 설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철도 노동자들의 피해의식은 컸다.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바른 말'하면 징계 받고 몸부림치면 동료들의 곁을 떠나야 했던 시절이었다. 94년 전기협 파업으로 60여명이 그렇게 해고되고 230여명이 징계를 받았으며 1,000여명이 전출 당했다.

"이런 과거 상처 때문에 솔직히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파업을 준비하면서 간부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지요. 그러던 중 2월 24일 지역별로 조합원들이 결집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직선 위원장이고 '민주파'라고 하지만, 출범한 지 몇 개월밖에 안된 집행부로선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초대 직선집행부에게 신뢰를 보내준 것이다. 파업 첫날 5개 권역별로 집결한 파업대오에 조합원 참여율은 50% 넘어섰고 이튿날 60%로 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부별로 진행돼 온 일상활동이 위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

당시를 회상하며 격정이 밀려오는 듯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연신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는 그였다.

물론, 파업을 더 지속하는 게 옳았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실제 지난달 선거에선 이 문제가 쟁점이 되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파업을 더 지속하지 않은 데 아쉬워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의 파업 참여가 절정에 이른 직후, 하강국면을 맞는 때가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주지방본부의 경우 조합원들이 비닐 하나로 3박4일을 버티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못한 점, 그리고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인정합니다."

김재길은 다른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2·25파업'을 통해 단결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을 최대 성과로 꼽았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2·25파업'은 더 나은 승리를 위한 발판이라고도 했다.

이런 '2·25파업'을 끝낼 당시 김재길은 눈물을 보였다. 지난 2월 27일 노사정위원회에서 철도청과 협상을 타결 지은 뒤 해고자들과 산재사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였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더군요. 사실 위원장에 선출된 뒤 주로 한 일이 순직한 조합원 영전 찾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괴로웠습니다. 협상을 타결 지으면서 숨진 조합원들, 그 유족들, 해고자 선배님들, 함께 어렵게 투쟁했던 간부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잠시 얘기를 멈췄다. 담배를 또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현실은 엇갈렸다. 파업의 후유증이 또 다른 모습으로 불거진 것이다. 바로 '민주 진영'의 분열이었다. 특히 '2·25파업'의 지속여부를 놓고 평가가 상반됐다. 지난달 선거기간 동안 그는 비판의 대상이 돼야 했다.

민주파 '단결'에 보탬이 되고 싶다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섭섭하다거나 그런 것도 없구요. 더 잘 싸웠으면 하는 바람과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기호 3번 선거진영 역시 지금껏 투쟁하면서 같이 징계받고 어려움을 함께 해 온 동지들입니다. 서로 더 많이 고민하고 발전적으로 문제가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재길은 민주진영의 '단결'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래도 남는 문제 하나. 바로 상급단체 변경 문제였다. 이것 역시 그에겐 화살이 됐다.

"조합원들의 자주적 판단이 답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새로 구성된 집행부 역시 올해 안에 총투표 입장을 밝혔잖아요? 상급단체 선택문제는 조합원의 권한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조가 민주적 조직이라면 거기에 맞게, 조합원 판단에 맡기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합원들도 '우리가 투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얘기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3명 후보는 총투표 시기문제만 달랐을 뿐입니다."

끝으로 김재길에게 노동운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조합원 신뢰는 운동 원동력"

"지부장을 할 때도 그렇고, 노조민주화 투쟁할 때도, 선거할 때도, 이번 파업투쟁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조합원의 신뢰입니다. 노동운동하는 사람은 조합원의 신뢰로 호흡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믿는 과정, 신뢰를 뼈 속에 담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신뢰는 운동의 원동력이지요."

'노조지도위원'이란 직함이 있지만 엄밀히 말해 김재길은 이제 해고노동자 신분이다. 복직이란 목표를 위해 또 다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당장 조합원에게 향하고 있는 것 같다.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습니다. 사실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해고자 신분으로 노조의 현안을 해결할 능력은 없지만 현장에서 조합원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게 노조지도위원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김재길은 지난달 14일 내려진 철도청의 파면조치에 불복, 행자부에 소청을 준비중이다. 그는 또 자신의 구속사유이기도 했던 '2·25파업'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항소할 계획이다.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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