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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인혁당, 이철의 눈물, KTX 여승무원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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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24일 17시 28분 04초
프로메테우스
이철 철도공사 사장에게 ‘혁명가의 투혼’이 있었을까

인혁당 재건위 재심 무죄판결 이후,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무죄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에서 이철 철도공사사장이 유족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었다. 이철 사장도 1975년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 때, 사형 직전까지 갔었던 인물임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됐다.

인혁당 재건위 재심 무죄판결로 이수병을 비롯한 8명의 인혁당 투사들의 억울한 누명도 벗겨지고, 그 명예도 복권됐다. 덩달아 인혁당의 청년조직이었던 민청학련의 핵심인물이었던 이철 사장과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의 명예도 복권된 셈이다.

지난 해 9월, 재심법정에 선 이철 사장이 “무고한 생명이 국가권력에 희생돼 사라진 지 31년이 지난 지금,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는 게 국민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눈물을 흘리자, 그 증언을 듣던 방청객들이 같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도 생각이 났다. 1975년에 어머니 뱃속에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자에게도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이었다.

인혁당 재건위 재심 무죄 결과에 세간의 관심이 쏟아질 때, 판결 결과에 가려 주목받지 않았지만, 무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에 선 이철 사장을 보면서 궁금해지는 건 “이철 사장에게도 ‘암장(마그마)’과 같은 ‘혁명가의 투혼’이란 게 있을까”였다. 이수병 열사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암장’을 읽고난 후, 이상수 노동부장관도 권고하는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에 고집스레 반대하는 이철 사장이 그 때의 혁명적 투사의 일원이었다는 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철 사장이 당시 그 엄혹한 사법살인의 분위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나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쉽게 이해가 되는 일이다. 이철 사장은 자신의 재심법정에서 스스로 증언한 것처럼 인혁당 재건위-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한 1974년 4월 말, 일본이 지금 우리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어 정부가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공안검사의 회유에 말려들어 “일본인 기자가 인혁당과 민청학련에 공산혁명을 사주했다”는 허위진술 조서 내용을 인정했다.

결국 그 허위진술로, 자신의 동지였던 여정남씨(민청학련 사건)와 선배 운동가들의 사법살인에 일조한 게 이철 사장이다. 사형이 선고되는 자리에서도 환하게 웃었다는 이수병 열사와는 너무나 다른 태도다. 지금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 또한 유신의 피해자였다고 말하지만, 동지들을 죽음으로 내몬 배신의 역사는 손바닥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겉모습이 강력한 투사라고 하더라도, 그 속까지 혁명의 투혼에 물든 투사인지를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죽음으로 유신정권에 맞선 8명의 인혁당 열사들에 대해서는 감히 그 진심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배신을 선택한 이철 사장이라면 그의 투사로서의 강직함, 혹은 고집은 ‘겉모습’뿐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도 있다.

그 고집이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에 대한 청와대와 국회, 사회여론까지 무시할 수 있는 오늘날의 고집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임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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