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 사라진 역전광장…‘서민쉼터’ 옛말
문화연대, 민자역사 ‘영등포역’ 가보니
“영등포역 광장 앞 시계탑 몰라요?”
지난 24일 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 문화연대의 민자역사 답사현장. 나이 사십이 넘은 김낙현 철도노조 정책위원회 팀장을 둘러싼 10여명의 대학생들의 눈망울이 동그래진다.
“예전에는 영등포역 광장 시계탑 앞에서 사람들이 만나곤 했어요. 하지만 1991년 민자역사 설립 때 없어지고, 광장은 조그마한 백화점 현관으로 전락했죠.”
요즈음 대학생들은 엠티 때 모이던 역전 앞 ‘명물’을 알지 못한다. 대신 이들은 “우리는 영등포역에서 약속을 잡으면 보통 지하 롯데백화점 출구 옆의 롯데리아 앞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합실옆 통로에선 백화점 행사
“공공성 대신 영리추구 공간으로”
1991년 서울역, 동인천역에 이어 민자역사로는 세번째로 건설된 영등포역은 지하 5층 지상 9층 연면적 37,218평의 매머드급 복합역사다. 이 가운데 대합실을 포함한 역무시설은 지하1층~지상 3층까지 5114평으로 13.7%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32,104평(86.3%)을 롯데백화점이 판매 및 주차시설로 쓰고 있다. 민자역사 관리사인 롯데역사는 30년 동안 운영권을 가지며, 역무시설은 철도청에 기부채납했다. 공용통로는 양쪽의 공동관리구역이다.
민자역사가 생기고 난 뒤 가장 큰 변화는 역 앞 광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답사팀이 확인한 결과, 민자역사 앞 광장의 폭은 약 15m밖에 되지 않아 더이상 광장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김 팀장은 “예전에는 이보다 네 배 가량 더 큰 광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답사팀은 3층 열차 대합실로 향했다. 고속철도 개통으로 쇠락하긴 했지만, 아직도 하루 298편의 열차를 기다리는 2만1000명의 서민들의 ‘쉼터’다. 하지만 400여평의 좁은 공간에 의자는 144개뿐이어서 평일 밤인데도 자리잡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김 팀장은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뤄 신문지를 깔고 앉는 형편”이라며 “열차 승객들은 보통 30분 전에 와서 기다리는데, 좁고 불편한 대합실에 쉴 수 없어 백화점으로 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합실 바로 옆 공용통로 한가운데에서는 백화점이 연 바자회가 한창이었다. 열차 시각에 쫓긴 승객들이 사람들이 바자회 판매대를 급히 피해가는 모습이 보였다.
답사팀은 다시 전철 출입구가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전철 출구 앞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김 팀장은 “같은 민자역사 건물이지만 백화점은 수시로 수리공사를 하지만, 공용통로는 이렇게 찬밥 신세”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류제홍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은 “전국의 역이 민자역사로 바뀌면서 공공 공간에서 영리추구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며 “시민들의 보행권과 공공시설 이용 편의를 지킬 수 있는 공간 재편 원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민자역사는 서울역, 영등포역, 수원역을 비롯해 8곳이고, 공사 중이거나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역이 9곳이다. 김 팀장은 “부천역, 산본역에 경륜장이 들어와 있는 등 역 공간에 대한 공공성이 계속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연대는 앞으로 철도노조와 함께 전국의 민자역사 실태조사를 벌인 뒤,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할 계획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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