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를 타보니...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건설교통부와 철도청, 철도시설공단 국감을 앞두고 ‘고속철도 개선을 위한 현장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이 의원과 이 의원 보좌관이 20여회 이상 직접 KTX를 이용하면서 느낀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담고 있다. 개통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KTX의 대표적인 이용 불편사례를 현장보고서를 토대로 살펴본다.
■ 딱딱한 의자.
KTX 안내책자에는 “의자를 뒤로 눕히려면 등은 멀고, 엉덩이를 아래로 누르며 당기면 된다”고 설명돼 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지나가는 승무원을 붙들고 물어서야 의자를 젖힐 수 있었다. 그러나 좌석이 조금밖에 젖혀지지 않아 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의자가 의외로 딱딱했다. 좌석이 허벅지를 편하게 받쳐주고 무릎부위를 감싸줘야 편안할텐데 그러지 못했다. 강연장 의자에 앉은 것 같았다. 앞좌석 뒤에 있는 발받침도 멀었다. 다리를 올려놓아도 편하지 않았다.
■ 옷걸이가 없다.
나는 옷걸이에 상의를 걸었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떤 승객은 선반 위에 웃옷을 올려 두었다. 웃옷을 벗지 못해 그냥 입고 있는 승객도 있었다.
옷걸이는 차창 사이의 벽에 붙어 있다. 그러나 좌석의 간격과 차창의 간격이 서로 어긋난다. 그래서 어떤 좌석에는 옷걸이가 있고, 어떤 좌석에는 옷걸이가 없다.
일반실은 1, 3, 5, 7, 8, 10, 12, 14, 15번에만 옷걸이가 있다. 2, 4, 6, 9, 11, 13번에는 없다. 특실에도 3, 5, 7, 9, 11번 좌석에는 옷걸이가 없다. 옷걸이가 있는 좌석을 만나는 것은 순전히 행운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승무원의 설명이 기막히다.
“아닙니다. 그건 옷걸이가 아닙니다. 커튼 걸이입니다. 자, 보십시오...”.
승무원은 커튼을 걷어 보였다.
■ 무성(無聲) TV, 무성의(無誠意) 안내.
천정의 소형 TV는 쉴 새 없이 화면을 바꿔가며 뭔가를 보여주었다. 이어폰을 찾았다. 그러나 없다. 일반실 좌석에는 이어폰이 없는 것이었다. 벙어리 TV, 무성(無聲)TV였다. TV는 같은데 이어폰은 특실에만 있다.
게다가 TV 자막에는 정차역 안내가 없다. 깊은 잠에라도 빠졌던 사람은 열차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음 정차역이 어디인지는 정차 직전에 안내방송으로 알려줄 뿐이다. 뉴스는 불과 몇 꼭지를 성의없이 반복해 보여준다. 날씨 안내도 거의 없다. 무성 TV의 무성의 안내다.
■ 식사가 마땅찮다.
오늘 점심은 무얼 먹지? 평소 같으면 행복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KTX에서는 고통에 가까웠다. 식당차가 없다. 홍익회 리어카에는 먹을 것이 과자 밖에 없다.
여승무원이 다가오기에 물었다. “왜 차내에 식당 칸이 없을까요?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에 익숙한 철도손님들이 당장 불편을 느낄 텐데요..”.
“이 차는 고속이잖아요? 새마을호나 무궁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까? 전에는 차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차내에 있는 시간이 많고 천천히 식사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고속시대인만큼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이 차는 원래 서울-부산을 2시간만에 주파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국내선 항공기처럼 식사서비스를 할 수 없도록 돼있습니다. 그렇지만 손님들이 원하시므로 차내 식사문제는 도시락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 화장실과 세면대, 꼭 함께 있어야 하나.
화장실에 가 보았다. 개수대와 핸드 드라이어, 좌변기 등이 마련돼 있다. 한번에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한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이 꼭 현명한 배치일까.
열차 안의 화장실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마침 사람이 화장실 안에 있었는지 인기척이 났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오더니, 잠시 후 안에서는 드라이어 소리가 났고, 이어 쏴-하는 물소리가 났다. 그러고도 나올 기척이 없다. 화장실에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해결토록 과잉배려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열차는 제한된 공간이다. 사용 인원을 가급적 분산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냥 손만 씻으려고 세면대를 찾는 사람 때문에, 정작 화장실을 사용할 사람이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좌변기와 세면대는 떼어놓든지, 세면대만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면 어떨까.
■ 터널 안에서는 잠자지 말라?
대전역을 지나고 얼마쯤 더 달렸을까. 어느새 잠이 들었나보다. 쌔앵-하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열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소리였다. 연거푸 나타나는 터널을 지나면서 귓전을 때리는 소음이었다. 잠이 화들짝 달아나 버렸다. 그런 소음 속에서 잠을 지속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잠시 후였다. 삐-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음 내리실 곳은 대구역입니다” 방송 신호음도, 안내방송 목소리도 너무 요란했다.
■ 역방향 좌석과 ‘중간석’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잡고보니 ‘중간석’이었다. 일반석의 중심부, 역방향 좌석과 순방향 좌석이 마주하는 곳. 가운데에 테이블을 둔채 서로 바로보고 앉는 자리다. ‘가족석’이라고도 불린다. 막상 타고보니, 이 좌석은 듣던대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비좁다. 다리를 바로 펴고 앉을 수 없을 정도다. 대구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다리에 쥐가 나기를 여러 차례. 너무 불편해 몸을 조금만 움직이려 하면, 어김없이 맞은편 손님의 무릎에 부딪치고 했다. 앞의 손님이 다행히 젊은 청년이어서 망정이지, 치마 입은 여자 승객이었더라면 곤란할 뻔했다.
또한 일반석의 절반은 역방향이다. 경부선도 호남선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역방향 좌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우 민감한 사람은 멀미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프랑스에서 그렇게 하면 한국에서도 그래야 하는가.
미디어다음 /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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