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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철도 노동자 파업 '정당'하다
철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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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3월 07일 12시 29분 54초
한겨레 신문 여론 칼럼 "왜냐면" 철도 노동장의 파업에 대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구로열차승무지부의 김명환 동지의 "기차를 세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는 제목의 기고에 대해, 철도청 노정과 김동석씨가 "철도파업 노동자의 논리적 비약"이라는 제목으로 반론을 기고하였습니다.
다음으로 김동석씨의 주장에 대해 민주노총 법률원 강문대 변호사가 "철도노동자 파업 '정당'하다"는 재반론을 기고하였습니다.
최근 순서대로 글을 올립니다.

1)철도 노동자 파업 '정당'하다

관련기사

철도파업 노동자의 논리적 비약/ 김동석
기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 김명환





<한겨레> 3월5일치 '왜냐면'에 실린 철도청 노정과 김동석씨의 철도노조 조합원 김명환씨 글에 대한 반론,“철도노조파업의 부당성”에 대해 강문대 변호사가 재반론을 보내왔습니다. 그 전문을 싣습니다./ `왜냐면' 편집자

철도청 노정과의 김동석씨는 철도노조 조합원인 김명환씨의 글에 대한 반론의 첫머리와 말미에서 “철도의 파업으로 인해 많은 국민에게 불편과 우려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해 사과 드린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 철도 노조원들의 이번 파업으로 인해 국민들이 입은 불편과 우려에 대해 철도청에서는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 철도청에서 진작부터 철도 노동자들의 주장과 근로조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철도노조와의 교섭에 조금만이라도 더 성실하게 임하였더라면 이번 파업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도노조의 김재길 위원장은 구속 영장 실질심사에서 이번 파업은 정부가 사실상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김동석씨의 글은 이번 파업의 법률적 의미 및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점에서 부당하다.

첫째, `정부정책'이라고 해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일면적 진실에 불과하다. 경영에 관계된 사항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파업 및 정부에 대한 주장을 관철하려는 파업, 소위 `정치파업'에 대해서도 그것들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 경우에는 그 정당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현재 노동법 학계의 통설이다. 국제노동기구(ILO)도 당연히 그렇게 판단하고 있고, 프랑스와 미국의 법원도 위와 같은 취지로 판단하고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경영 사항과 `정치적' 사항이라고 해도 그것들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관계된 것이라면 당연히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민영화(사유화) 정책이 시행될 경우, 정부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외국의 사례와 기존 민영화 사업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대규모의 정리해고, 노동강도의 강화가 이루어질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위 민영화 정책 역시 당연히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철도청과 철도노조가 2002년2월27일에 체결한 합의서에 민영화 관련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정부와 철도청이 법논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위와 같은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저항권'과 `노동3권'이 동일한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위 김명환씨도 두 권리가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두 권리는, 사회적 약자가 기존 정치권력과 소유권에 대해 다소의 위력을 사용하여 `불법적으로' 대항하더라도 민형사상 면책될 수 있도록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과 우리 현실에서는 위 각 권리를 행사한 자에 대해 기존 지배권력이 언제나 사회적 혼란 세력 및 불순분자로 매도해 왔고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했다는 점 등에서 공통점을 갖는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헌법상으로는 물론이고 법률상으로도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을 행사하고자 할 경우에도, 마치 일제하의 독립운동이나 군부독재하의 민주화운동을 할 때처럼, 굳은 각오와 결의를 다지지 않으면 안되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노동자들에게는 `노동3권'이 `저항권'과 같은 비장한 의미로 인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할 것이다. 하긴, 정부가 국가의 기간산업을 통째로 외국 자본과 재벌에게 팔아 넘기는 것을 노동자들이 나서서 저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노동3권을 넘어선 저항권의 행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정부정책이 국민의 인기에 영합해서 행해져서는 안 되는 한편, 각 국민은 법률상 자신에게 허용되어 있는 권리 범위 내에서 정부정책에 대해 소신껏 반대할 수 있다.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는 정부가 국민의 재산 및 안전과 관계된 문제를 국민들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도 없이 졸속으로 처리하는 상황에서는, 민주시민이라면 더욱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근로조건과 관계되는) 정부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자신에게 허용되어 있는 노동3권을 이용할 수도 있다.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것이 노동자이고, 정부정책으로 인한 혜택과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입게 되는 것이 노동자들인 점에서랴 이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넷째, 필수공익사업에 대한 직권중재 제도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수년 전 헌법재판소에서 다수의견(5명)이 위헌으로 의사표명을 했던 점(6인에 이르지 못해 위헌결정이 내려지지는 못했다), 위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최근 서울행정법원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점, 직권중재가 이루어질 경우 그 대상 사업의 노동자들의 경우 사전에 단체행동권을 완전히 박탈당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하다고 할 것이다. 다행히 이번 철도파업에 대해 노동위원회는 직권중재를 행하지 않았는 바, 철도가 필수공익 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번 파업이 불법 파업인양 몰아가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다섯째, 반론자는 한국철도의 민영화 방안이 영국, 일본의 민영 철도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영국민영철도의 시설은 민영이고 한국철도의 시설은 공단이기 때문에 양 국간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철도의 시설공단은 무늬만 공단이지 실제는 대부분의 재원이 민간자본으로 이루어지는 상업적 공단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반론자는 민영화 전후 62개의 노선, 99년에 7개 노선이 폐지되고 현재 9개 노선이 폐지 예정인 일본철도와 달리 한국은 충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대책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수준인가 하는 것은 의약 분업 때 잘 드러난 것이고, 그것과 별도로 `수지 균형의 확보가 극히 곤란하여 경영상의 어려움이 발생한 경우 철도 서비스의 폐지가 가능하다'는 철도민영화법안 30조는 또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여섯째, 반론자는 작년 철도노동자의 직무상 사망자수가 34명이 아니라 11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을 오인 또는 왜곡한 것이다. 사실은 이렇다. 2001년 업무중 사망한 노동자는 철도조합원의 주장대로 34명이다. 열차접촉, 감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13명, 과로사와 과로로 인한 질병 악화 등에 의한 사망자가 15명, 업무관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6명이다.

철도청은 현재, 철도 노조원들의 `사법 처리의 최소화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는 노사합의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노조원에 대한 대대적인 고소 고발을 획책하고 있다. 지난 2월26일 국제자유노련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 “파업 노동자와 파업 지도부에 대해 검찰 또는 기타 기관이 행하고 있는 구속 위협을 철회할 것을 명할” 것을 요청하였다. 국철을 자주 이용하는 필자로서는, 철도 노동자들이 다시 `저항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강문대/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2)철도파업 노동자의 논리적 비약


철도의 파업으로 인해 많은 국민에게 불편과 우려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해 사과 드리면서 철도파업과 관련한 김영환님의 글을 읽고 상황 인식과 판단만은 좀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에 이 글을 쓴다.
구체적인 논의에 앞서 우선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국정을 총괄하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입법권을 갖고 있음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즉 과거의 군사정권과 달리 국민에 의해 탄생하고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명실상부한 '국민의 정부'라는 점이다.

김영환님의 글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논리에 비약이 있다고 본다.

첫째 노동자들이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니까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니라던 정부정책에 대해 정부의 입장이 변화되지 않았는가 하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부정책'은 단체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파업에 의해 국민들이 겪는 불편을 빨리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해당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지 이 자체가 정부 방침의 변화는 아니라는 점에 오해가 없어야 한다.

둘째 `저항권'과 `노동자의 권리(노동3권)'을 동일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법률에 정하는 것은 노동자에 비해 우월한 권력을 갖고 있는 사용자의 부당한 압력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여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부당한 국가 권력에 항거할 수 있는 저항권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저항권은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 이후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부정책은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반대한 파업을 과거 을사조약에 항거한 의병과 광주민주화항쟁과 동일하게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민의 기초에 의해 성립된 민주주의 국가이다. 일제의 강점기도 아니며 군사정권의 암울한 시대도 아니다.

셋째 정부정책에 대해 모든 국민이 논의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그 국민이 해당 산업의 노동자만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 국민은 해당 산업의 노동자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결정에 있어 그 정책이 부분(특정한 이해관계자)이 아닌 전체 국민과 국가의 이익 및 발전에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판단할 의무가 있다. 정부 정책이 노사의 교섭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정부는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더라도 그 것이 진정 국가와 국민을 원하는 길이라면 결정할 필요도 있다.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 또한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의견의 제시는 입법 예고에서의 의견 제시, 공청회 등 다양한 길이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결정하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넷째 필수공익사업장에서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강제중재제도의 문제와 철도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에 대한 주장이다.

필수공익사업장에서의 단체행동권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그것이 국민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치명적이기 때문이지 해당 사업의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문제는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또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입법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한 것이다. 나에게 유리하면 준수해야 하는 법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는 잘못된 자세라고 본다. 잘못된 법이 있다면 정당한 절차에 의해 고쳐야하는 것이지 그 것을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법 적용체계는 헌법, 법률, 대통령령, 부령의 단계를 갖고 있고 법률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제정한다. 그런데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은 주장하면서 똑같이 국회에서 제정한 단체교섭의 대상과 필수공익사업을 지정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그리고 국가공무원의 의무와 책임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도 또한 적용 받아야 한다는 점 또한 알아야 한다.

다섯째 철도민영화에 대한 반대의 근거로 영국의 실패와 일본의 적자선 폐지 사례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영국과 우리나라의 철도구조개혁 정책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또한 일본에서 적자선 폐지의 문제가 있었으나 일본과 우리나라는 여건이 다르며 관련 법률안에 적자선 폐지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철도구조개혁을 반대하는 것보다는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제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여섯째 인력감축과 1년에 직무상 사망이 34명이라는 주장이다.

철도직원들이 5년 동안 7,000명이 감축되었다고 하는데 그 동안 인력감축은 사전에 충분한 검토를 거쳐 계획을 수립하고 시설과 장비의 기계화·자동화, 안전장치보강 등 선행투자를 시행한 후 노사간의 협의를 거쳐 추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도 강제적으로 퇴직한 경우는 없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같은 기간 중에 직무상 사고가 감소('96년 107명 → '01년 69명)하고 있으며 2001년 직무사망자가 34명이라고 하나 이 중에는 출퇴근 중의 교통사고와 일반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포함되어 있고 실제 직무 사망자는 11명이다. 물론 직무상 사망사고는 노사모두 가슴아픈 일이며 단 한 명의 직무 사망자라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철도직원들의 근무환경이 다른 분야에 비해 위험하고 어려운 면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보다 좋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한다.

다시 한번 철도파업으로 인해 불편을 겪은 국민들에게 사과를 드리며 파업이라는 절박한 상황까지 가게된 성실하고 평범한 우리 직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김동석/ 철도청 노정과


이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기대합니다/`왜냐면' 편집자





3)기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나는 철도노동자들이 기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지난 25일 새벽 4시, 철도·발전·가스 3개 노조가 공동 총파업에 돌입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파업권을 제한 받고 있는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이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과 중재를 받지 않고 파업에 돌입한 것은 불법'이며, `민영화 문제는 정부의 정책이기 때문에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정부는, 이날 오전 태도를 돌변하여 가스 노조와 `민영화 문제는 추후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한다'고 합의했다. 노동자들이 노동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니까 정부의 방침이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불법 파업'에 방침을 바꾼 정부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기본권을 행사한 노동자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헌법에 대한 논의를 금지'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던 유신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 감히 정부의 정책에 국민의 기본권인 저항권을 행사하던 지금의 대통령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인 정부가 정부의 정책이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을사보호조약의 체결이나 한일합방조약의 체결이 `대한제국 내각의 정책'이기 때문에, 이에 반대해 저항권을 행사한 의병들에 대해서 정부와 언론은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가? 그래서 그 신문들은 일제 말기에 조선총독부의 정책인 징병과 징용을 독려하고, 독립군을 `폭도'로 몰아 부쳤던 것일까? `계엄사령부의 정책'에 저항권을 행사한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부쳤던 것일까?

나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모든 국민이 논의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은 모든 국민의 논의의 결과를 가지고 결정되는 것이다. 정부가 주문한 대로 보고서를 제출한 `회계법인'이나 `컨설팅회사'의 의견이 정부의 정책으로 결정되는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은 불법'이라고 강변하는 정부와 일부 언론에게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강제중재제도'야말로 국제적으로 유례가 없는 악법이며, 우리 헌법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에서도 군인과 경찰 등 국방과 치안에 관계되는 극히 제한된 직종에서만 파업이 금지된다. 파업이 금지되어 있는 프랑스 경찰이 한달 동안 시위를 하니까 수당을 인상해 주고, 덩달아 군인 신분인 프랑스 국방경찰 10만명이 지난해 12월 4일부터 4일 동안 전국적으로 파업을 하고, 1만 2천명의 국방경찰이 파리 시내에서 가두행진을 해도 '엄정히 대처'하지 않고, 국방경찰의 수당을 인상해 주고, 4천 5백명의 인력을 증원해 준 프랑스 정부와 이에 동의한 언론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언론'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반대 의견을 무서워하고 멸시하고, 그래서 그 의견을 이야기하고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을 권력의 횡포로 억압하던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래서 나는 그 시대를 증오한다. 김대중 정부에게 나는 주장한다.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부의 정책은 모든 국민이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이 시대를 증오하고 싶지 않다고.

`증오하고 싶지 않은 시대'를 위해 나는 철도노동자들이 기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철도노동자들은 지난 해 9월 20일부터 철도청에 `철도민영화 문제'와 `노동조건 개선문제',그리고 `해고자 복직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 단체교섭을 요구해왔다.

철도노동자들은 철도 민영화(사유화)가 결국 사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공공성과 안전을 저버리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영화를 시행한 영국 철도의 빈발한 사고와 일본 철도의 적자선 폐지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은 1년에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근무해야 하는 24시간 맞교대 근무제도를 개선해서, 1주일에 하루는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한다. 철도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게 해달라고 주장하며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복직시켜달라고 주장한다.

철도청은 `민영화 문제'와 `해고자 문제'는 철도청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철도노조는 정부에 `노정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끝내 철도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철도노동자들은 기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차가 멈춘 사실'에 대해서만 호들갑을 떠는 정부와 언론이 몹시 못마땅하다. 세상만사에 원인없는 결과란 없는 법이다. 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에 대하여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그 결과만을 부각하여 시민의 불편만을 크게 다루는 신문들에 분노를 느낀다. 나는 “경제가 괜찮아지려니 파업한다”따위의 말만 거듭하는 방송에 분노를 느낀다. 사회적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고치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열이 높다'고 아우성치는 한국 언론의 오래된 타성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철도노동자들이 지난 5년 동안 7천명이나 감축됐고, 그래서 1년에 30명씩 죽어가고 있고, 1년에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지난 100년 동안을 묵묵히 일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그래서 끝내 `기차가 멈춘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기차가 멈춘 사실'만 가지고 엄정한 대처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국민에게 1년에 단 하루의 휴일도 주지 않고 노동을 시키는 정부에 대해, 국민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는 '정부의 나라'가 아니다!

김명환/ 철도노조조합원


이 글에 관해 철도청, 정부 관련 부서 책임자를 비롯하여 공기업 민영화(사유화)에 찬성하는 사회구성원의 반론을 기대한다/ 왜냐면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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