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소식마당 > 언론보도

 

[중앙경제] 초점- 공기업 파업 왜 일어났나
철도노조
159 1468  /  0
2002년 03월 04일 10시 10분 42초
▶ e-labor ▶ 최신 노사정뉴스 ▶ 초점 - 공기업 파업 왜 일어났나

초점 - 공기업 파업 왜 일어났나



'공공부문' 이유로 '근로조건 개선·정책수정' 목소리 외면
정부 '교섭의지' 전혀 없이 '파국'땐 책임방기...정치권 '눈치보기'도 한몫



철도와 가스, 발전산업노조가 노정간의 교섭 결렬로 25일 새벽부터 파업에 돌입해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해당 사업장들 모두 국가기간산업에 해당함에 따라 국민생활에 현저한 타격을 줌은 물론 예년보다 일찍 노사관계가 혼란사태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현 정권 임기 마지막 해에 벌어진 대규모 노정충돌이란 점에서 정부로서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철도청은 노조간부인 16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철도, 발전, 가스노조 위원장과 집행부 전원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해 검거에 나서는 등 예년처럼 파업 - 언론의 '국민 볼모' 여론몰이 - 파업지도부에 대한 구속과 형사처벌의 악순환이 재현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번 파업의 핵심부대로 부각된 철도노조의 경우 50년 만에 탄생한 '민주집행부'로 불린다. 이전 노조는 3중 간선제로 임원을 뽑아 옴으로써 노조가 민주적 운영과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다. 또한 철도청 등과 다분히 '협조적'노선을 걸음에 따라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 지난 해 5월 첫 직선제로 김재길 현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철도노조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졌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직선제 위원장의 등장으로 철도 민영화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조가 강경 노선을 택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문제는 철도청과 정부가 협상 파트너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협상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노조는 지난 해 11월부터 민영화 반대, 근로조건 개선, 해고자 복직 등 3대 요구조건을 내걸고 특별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철도청은 7차례나 응하지 않다가 중앙노동위원회의 사전 조정회의를 거쳐서야 12월 13일 처음 교섭 석상에 앉았다.

민영화 문제는 정부의 공기업개혁 방침인 만큼 철도청이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한다 해도, 24시가 맞교대와 교번 근무 등에 따른 열악한 노동환경, 30명 넘게 사망하는 산재사고의 개선에 대해서까지 나몰라라 하는 건 '책임경영'을 외치는 공기업의 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11월 28일과 29일 양일 간의 파업 찬반투표에서 72.23%의 조합원이 찬성표를 던졌음에도 정부측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한다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

더구나 첫 교섭석상에서 청의 한 교섭위원은 '새 옷에 헌 옷을 대는 격'이라고 말해 노조로부터 "민주노조와 조합원들을 무시하는 발언"이란 비난을 샀다. 또 중앙노동위원회는 '주 1회 이상의 본교섭을 용산과 대전을 번갈아 가며 진행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철도청은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주 1회만 대전에서 열자'고 나오는 등 협상내용에 대한 접근보다 형식에만 열을 올려 교섭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없음을 보여줬다.

성과없는 교섭이 이어지자 철도노조는 지난 1월 25일 철도청에 '특별단체교섭 결렬'을 통보했다. 이유는 '청측이 실무교섭에서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민영화 부분도 그렇다. 국가 기간산업의 미래와 공공시설 수요자인 국민생활을 좌지우지할 민영화 문제를 개혁의 당사자를 도외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해왔다는 비난이다.

정부는 철도민영화를 위해 지난 해 2월과 7월에 각각 입법예고 한 철도산업구조개혁법안과 철도시설공단법안에 대해 한 차례의 공청회도 열지 않다가 8월 22일 과천시민회관에서 노조쪽을 배제한 채 공청회를 열려다가 노조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정부는 당시 국무회의를 앞두고 최소 한 차례의 공청회가 필요했기 때문에 '졸속 공청회'를 추진했던 것이다.

이어 11월 8일 열릴 예정이던 공청회도 역시 노조 반발로 무산됐다. 공청회를 앞두고 건교부 장관이 노조위원장에게 '철도 민영화를 강행하겠다'고 말해 공청회 자체가 여론 수렴을 위함이 아닌 민영화 '수순 밟기'란 속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난 1월 17일 한나라당이 정부의 철도민영화 방침 후 처음으로 노동계와 학계를 참여시켜 철도민영화 공청회를 '성공적'으로 여는 풍경이 연출됐다.

공기업민영화에 대해서는 노동계 전체와 학계,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연구기관에서조차 반대의 목소리를 냈음에도 정부는 적극적인 의견수렴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정치권도 올해 양대 선거를 앞두고 공기업 민영화 과정의 추이를 지켜보며 얼마의 표를 얻을지 또는 잃을지 여부에만 관심을 두는 등 눈치보기에만 급급한 게 사실이다.

지난 달 19일 허영구 민주노총 직무대행과 김재길 철도 위원장, 한국노총 주요간부들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철도, 가스, 발전산업, 지역난방, 전력기술, 고속철도건설공단 등의 민영화 방침이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와 연관되어 있고 대규모 노동쟁의라는 측면에서 국무총리와 해당부처 장관이 교섭단이 돼서 교섭에 나서라"고 주장했다. 해당 사업장의 대표들 모두 진정한 교섭자세가 없기 때문에 정부대표가 직접 나설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항시 '엄정한 법 집행'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해온 정부가 이를 수용할 리는 만무했다.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과 산별대표자들도 20일 이한동 국무총리를 면담해 노동계의 뜻을 전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5일 파업이 임박해서야 철도노조의 근로조건 개선문제가 노정협상에서 진전되고, 가까스로 가스공사노조의 요구조건도 일부 수용되었다, 파국을 치르고서야 협상이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노조에겐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실상 노사관계 문제에 관해서는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아무도 파국의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게 우리나라 공기업의 반쪽 주인인 '정부'의 태도다. 또한 철도 가스등은 필수공익사업장인 만큼 파업은 말아야 하며, 일각에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사업비와 인건비가 지급되는 만큼 정부방침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불합리한 근로조건을 저능아처럼 견뎌내야만 옳은 일일까. 철도부문에서는 지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6천7백명이나 감축되었고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24시간 맞교대 근무형태가 지속되면서 휴가도 못 누리는 장시간 노동 속에서 매년 수십 명씩 산재로 죽어가고 있다.

'공공부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성원들의 근로조건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방식이 지속되는 한 공기업 개혁은 비효율적이란 비난을 면키 어려울 뿐 아니라 노사관계 또한 결코 대립과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www.elabor.co.kr (주)중앙경제 황의택 기자



  
쓰기 목록 추천 수정 답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