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분배’ 우선순위 논란 예고
“5도가 될지 10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정책방향은 분명히 지금과 달라질 겁니다.” 재정경제부의 한 국장은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민노당이 얻은 10석은 국회에서 독자적인 정책을 관철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상징적인 의미 이상의 힘을 갖게 될 것으라는게 정부와 재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들이 아스팔트에서 외치던 ‘경제적 약자를 보호·지원해달라’는 주장이 보다 공개적이고 관심을 모으는 자리에서 논의되면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훨씬 커진다는 것이다.
◇정부·재계와 마찰 예고=민노당의 경제정책은 현 정부 경제팀 및 재계와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한 현 경제팀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정책을 펴고 있다. 이부총리는 지난 2월 취임 이후 줄곧 ‘분배보다는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민노당은 ‘분배를 통한 성장’을 모토로 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세제개혁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유세다. 토지·건물·주식·금융자산·골프장 회원권 등 재산의 합계액이 10억원을 넘는 사람에 대해서는 초과분에 대해 누진과세하자는 것이다. 또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을 대폭 높이고 주식양도세를 신설, 세금을 늘림으로써 부(富)를 재분배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이부총리는 지난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부유세와 관련, “시장경제의 기본틀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또 법인세 최고세율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 모두 투자활성화를 위해 오히려 내리자는 의견이고, 주식양도세 신설 방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민노당은 재벌정책에 있어서도 상당히 급진적이다. 우선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통해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계는 당연히 “경영권은 고유 권한”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또 출자총액제한제도 강화나 산업·금융자본의 분리 강화, 재벌 지정기준의 확대 등의 주장도 대기업들이 싫어하는 내용들이다.
◇정부정책에도 영향 미칠 듯=민노당의 의석수는 전체의 3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얻는 바람에 캐스팅보트도 쥐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정책에 영향을 미칠 여건과 힘은 충분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전문가들은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확보함으로써 앞으로 정책수립 기능이 행정부에서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렇게 되면 정책수립 과정에 민노당이 관여할 공간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기존 정당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민노당의 등장은 각 당의 정책대결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정책수립 및 추진 과정에서 진보적인 색채가 뚜렷한 민노당을 의식해야 할 경우가 많아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안별로는 민노당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높다. 재경부의 한 국장은 “민노당의 주장이 100% 받아들여지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정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은 “국회는 여론에 민감한 곳이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민노당의 요구들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송태경 민노당 정책국장은 “원내 진입을 계기로 정책 연구·개발의 환경도 나아지는 만큼 좋은 정책을 통해 민노당의 진가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김석기자 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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