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파업 이후 '서글픈 추석'
철도청은 지난 6월28일 철도노조 파업 이후 노동자들에게 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해고 58명, 해임 21명 등 중징계 조합원만 204명에 달하고 경고를 당한 조합원까지 합하면 9천명에 달한다.
<인터넷한겨레>는 철도노조 파업이후 관심 밖으로 밀려난 철도노조 조합원과 가족들을 만나봤다.
해고 58명, 해임 21명, 총징계 9천명의 사업장
지난 2일 용산구에 위치한 전국철도노동조합 건물 입구, 노조 사무실 밖에서 대여섯 명이 침울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5일은 천환규 철도노조 위원장을 포함해 5명의 지도부에 대한 선고공판을 앞둔 까닭이다. 평조합원들도 7차 징계위원회까지 열린 현재 9천여명의 조합원들이 경고 및 징계를 받았다.
백남희(37) 철도노조 선전홍보국장은 "파업이후 조합이 침체돼 있는 분위기"라며 "조합원에 대해서까지 무더기 징계를 하고 있고 철도청이 합의했던 부분도 지켜지지 않아 할 일은 많고 힘에 부친 상태"라고 말한다.
이미 해고당한 백 선전홍보국장은 조합 간부라는 직책 때문에 고통을 삭이려 했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만만치 않다. 5, 7살배기 딸아이들은 유치원을 그만뒀다. 백씨의 부인은 "이번 기회에 철도를 떠날 수 있어 잘됐다"고 하면서도 경제적 고통을 함께 당하고 있다. 백씨의 노모(76살)는 외아들인 백씨가 여전히 철도청에 다니는 줄 알고 있다.
파업 이후 달라진 철도노조 사업장 분위기
파업이후 철도노동조합의 침체된 분위기와 노동조합의 변화된 위상은 곳곳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2일 5시40분께 백 선전홍보국장과 같이 서울정비창에 근무하는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정비창 관리팀 직원들이 입구를 막았다. 철도노조 선전홍보국장과 기자라는 신분을 밝혔음에도 관리팀 직원들은 허가없이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출입을 막았다.
단체협약에 명시돼 있는 상급단체 상근활동가의 출입자유가 순식간에 박탈되는 순간이다. 이외에도 자연스러운 출입을 보장해줘야 할 서울정비창 입구에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가 설치돼 있었다.
관리팀 직원들과 30여분의 실랑이 끝에 간신히 서울정비창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정비창에서 근무했던 조합원들은 지난 6월 파업전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며 조합원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파업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어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들은 "두달 전까지만 해도 같이 일했던 동료들인데..."라며 자신들을 감시하는 동료들에 대해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해고로 일터 빼앗기고 퇴직금마저 반토막
용산차량지부의 경우 파면 5명, 정직 2명을 비롯해 노조간부가 아닌 평조합원의 징계 수위가 유난히 높다. 이 때문에 지난 7월 15일부터 중징계를 당한 7명의 조합원이 50여 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일터를 빼앗긴 노동자들에게 천막은 일터를 찾기 위한 몸부림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천막마저 '도난사고'로 인해 그 자리에는 덕지덕지 써붙인 성명서와 구호들과 징계를 당한 노동자들의 한숨이 배어 있었다.
박해철(37) 철도노조 용산차량지부 정비창 본과 국장은 아직도 해고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내한테 노조활동을 해도 징계나 파면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이렇게까지 징계가 세게 나올지는 몰랐다. 파면을 당했는데 실감이 안 난다. 아내는 '한여름 밤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도 똑같은 심정이다. 답답하니까 늘어나는 것은 술과 담배뿐이다."
다른 조합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10년 넘게 철도청에서 근무했던 이만호(36) 조합원은 "철도공무원으로 12년 근무하면서 남은 게 마이너스 100만원이다. 해고로 인해 퇴직금이 절반으로 줄어 2300만원이고, 전세 얻을 때 빌렸던 2400만원을 제하면 100만원이 적자"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땀흘려 일하면서 '꿈'을 키웠던 직장에서 얻은 게 빚 밖에 없다"며 담배연기를 연신 뿜어댔다.
이씨도 경제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개학을 맞아 큰딸이 학용품을 사들고 왔는데 '저게 얼마야'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애 아빠가 돼서 그런 걱정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당장 돈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이제는 피아노학원 다니는 큰딸 피아노 교습 중단시켜야할 것 같다. 예전에 큰 딸이 10살이 되면 피아노 사주기로 했었는데, 이제 큰딸이 중학교 들어가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년이면 작은 아이도 유치원도 보내야 하는데…"
월급은 안 나오고... 추석은 닥치고....
그나마 맞벌이부부는 그 충격이 덜하다. 하지만 남편 수입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주부들에게 남편의 해고는 충격 그 자체였다. 정비창 소속 조합원 부인인 이지연(39, 주부)씨는 남편의 해고 소식에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벌써 두 달 지났는데, 처음 해고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황당하고 답답했다. 딸아이 하나이기 때문에 애가 둘이 있는 집보다는 괜찮지만 겁이 났다. 나라도 나가서 뭘 해야 하는데 일하러 나갈 곳도 마땅치 않다. 어느 집은 남편이 지방 내려가서 막노동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집은 집값이 싼 곳으로 이사 가기도 했다. 나도 여기 저기 알아보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 요즘은 내가 왜 이런 세상에서 태어나 애를 고생시킬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씨는 당장 들어갈 아이 분유값과 며칠 후 닥칠 추석이 걱정이다. 부모님 용돈부터 제사용품까지 돈들어갈 곳은 많은데, 더이상 남편의 월급은 나오지 않는다.
"추석 준비를 하려면 20만원이 드는데 걱정이다. 정직 먹은 사람들도 월급이 안나와 서로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 없는 처지이니, 돈 빌릴 때가 없어 미치겠다. 왜 이런 일이 우리한테 생겼는지 모르겠다. 부모님한테 생활비도 드려야 하는데 드리지 못해 면목이 없다." 이씨의 말투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태세였다.
복직 합의 무시하는 '철도청'
간신히 해고의 '충격'에서 헤어났다 하더라도 조합원들의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20년 가까이 철도청은 해고 노동자를 복직시킨 사례가 없기 때문에 해고당한 노동자는 사실상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설령 복직의 미련을 갖고 있더라도 법적인 수단을 통해 구제를 받으면 가능하지만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 해고를 당한 한 조합원은 "이번 징계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설령 얘기가 됐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책임자가 바뀌기 때문에 그때 또 다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당장 한달 월급이 안나와도 힘든데, 몇달 아니 몇년을 기다려야 될지 모르는 것 만 믿고 어떻게 버틸 수가 있겠냐"고 철도청의 이번 징계를 사실상 '사망선고'로 받아들였다.
지난 4월20일 철도청과의 합의로 45명의 노동자가 복직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철도청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합의대로라면 지금쯤 45명은 다시 바쁜 직장생활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했을텐데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철도공무원으로 17년을 근무한 마두창(44) 조합원은 "다른 길을 찾기 힘든 나이이고 철도일 외의 다른 경력도 없어 걱정이다. 설령 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현재의 벌이를 유지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두 아이의 교육비가 무엇보다 걱정이다"고 말했다.
철도파업이 끝난 지는 두 달이 넘었다. 파업에 따른 대량징계로 인해 추석을 맞는 철도노동자와 가족들에겐 "모든 것이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남의 말이다.
이승훈 김미영 이승경 <인터넷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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