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소식마당 > 언론보도

 

[한겨레] 5천 기관사의 눈물을 아십니까?
운영자
1025 1101  /  2
2003년 07월 15일 12시 55분 17초
5천 기관사의 눈물을 아십니까?
[속보, 정치] 2003년 07월 14일 (월) 21:09


대통령님께 올리는 글 20여년을 철길에서 살아온 평범한 기관사입니다.
참여정부 탄생과정을 지켜보면서알 수 없는 흥분과 동질의식을 느끼며 아이들에게 밤늦도록 대통령님께 거는기대를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처럼대통령께서 걸어오신 길을 마치 저 자신의 무용담인 양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는가슴 한가득 뿌듯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번 철도파업으로 국민과 대통령께심려를 끼쳐드린 점, 파업에 참가한 한 사람으로서 고개숙여 죄송한 마음전합니다.

그러나 이번 우리들의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 과정을 지켜보면서 왠지가슴 한편으로 섭섭하고 답답한 마음 삭일 수가 없어서 이렇게 감히 펜을들었습니다.

비록 회신 없을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언정 우리들이 처한 현실을몇가지라도 말씀드리고 매를 맞아도 달게 맞고 싶어서입니다.

첫째, 왜 기관사들이 항상 파업의 선봉에 서는가 그 옛날 포연 자욱한 전선에서 피난열차를 끌던 선배들의 무용담을 들으며삼색견장에 실낱 같은 자존심 하나를 걸고 오직 두 줄기 철길만을 달려왔습니다.

격동기마다 민족과 명운을 함께하며 100데시벨 텅텅거리는 굉음 속에서 세상살이풍경처럼 흘려보내며 석탄가루 같은 밤을 삼키며 숙명처럼 철길에서 청춘을묻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노란 삼색견장을 떼어 분노의 가슴에 묻습니다.

이제기관사란 직업을 제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6·23 때 뒤틀리고 대구참사때 뭉개지고 오늘은 공공철도 건설을 요구하다가 다시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왜 유독 기관사들이 저토록 파업에 적극적이냐”고 의문을 던지기도합니다.

6·23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왜 또 미련스럽게 기차를 세웠겠습니까그 이면에는 우리 기관사들의 숨은 비애가 있습니다.

△‘열차 안전운행의 최종 책임자’라는 명예()는 ‘열차 사고의 모든 책임을진다’는 또다른 ‘멍에’일 뿐입니다.

꿈에서도 사고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365일 단 하루도 법정휴일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마음 편히 휴가 한 번 가고싶습니다.

△365일 단 하루도 같은 출근시간이 없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출퇴근을하다 보니 가족의 생활리듬마저 깨집니다.

직장생활 20여년이지만 아직도 아내는출근시간을 묻습니다.

△평생의 일터가 달리는 기관차 안입니다.

난청과 위장병 등스트레스성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퇴직 후 기관사들이 단명하는 것은 이제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당한 대우는 고사하고 만성적인 승급 적체와과도 업무로 하루하루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5천 기관사가 있지만노조말고는 철도청에 우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줄 책임있는 운전본부 하나없습니다.

철저한 국외자의 삶 속에서 섭섭함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쌓이다 보니우리 기관사들을 파업의 중심에 서게 했던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집단이기주의자도 노동귀족도 아닙니다.

파업 기간 중에 우리들을 가장 억울하게 했던 것은 바로 보수언론의 무차별,무분별한 왜곡 보도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벌을 줄 때도 무작정 잘못을 시인할 걸강요하면서 회초리만 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파업을 철회한 뒤 모처럼 재계나언론들이 대통령을 칭송하는 기사를 읽으며 또한번 가진 자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을절감해야 했습니다.

△철도를 부채 없이 산뜻하게 출발시켜 달라.

△시설과 운영의 통합으로시스템산업의 안전성을 확보해 달라.

△오직 연금 하나 믿고 살아왔는데 더도 덜도말고 있던 권리만 인정해 달라.

이것이 집단이기주의라면 응당 그 죄를 달게받겠습니다.

그 밖에도 △일년에 30명의 동료들, 그 서러운 살점들을 철길에 묻은죄 △밤을 낮으로 삼아 뜬눈으로 철길에서 밤을 새운 죄 △명절날 청장 하사품으로받은 라면 한 개, 생으로 깨물어 먹었던 죄.

이것이 정녕 노동귀족이라면 응당 그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지금 징계 폭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8천 노조원들이 지금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있습니다.

우리는 철길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철도를 사랑했기에 철도를 한번 바로 세워보고 싶었습니다.

정녕 불법이라면불법의 이면이라도 헤아려주시길 간청드립니다.

그래도 한걸음씩이나마 세상이정의롭게 되리란 것을, 우리가 결코 부끄러운 철길 인생이 아니란 것을 아이들에게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리란 걸 믿고 싶습니다.

실명을 밝히지 못해죄송합니다.

김철호(가명)/철도 기관사·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쓰기 목록 추천 수정 답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