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짓밟는 철도구조 개혁법안
지난 19일 철도구조개혁법안이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에서 의결되었다. 국회의원들의 태도로 보건데 본회의에서도 통과될 게 유력하다. 지난 3~4년 동안 철도공공성 강화운동에 참여해 온 사람으로서 분노와 슬픔을 감추기 어렵다. 지금 국회에 상정된 철도구조개혁법안은 다음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정부는 여러번 철도건설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천명해 왔으나 막상 법안에서는 이를 방기하고 있다. 철도산업의 핵심이 될 고속철도 건설비 대부분이 민간자본에서 충당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총 18조원의 건설비중 65%인 12조원을 새로운 철도조직이 직접 벌어서 갚아야 한다. 이제 ‘구조개혁된’ 철도산업은 부채의 악순환에 빠지고, 수익적 운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처럼 국민은 막대한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간접자본의 건설비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철도의 공익성을 주창한다는 정부가 막상 건설 책임 이야기만 나오면 들은 채도 하지 않는다.
둘째, 선로 위로 열차가 달리는 철도산업에서 시설과 운영부문의 분리(상하분리)는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특히 한국철도의 경우 선로밀도가 매우 높고, 산악지형에 따른 난지형이 많으며, 신호 현대화마저 미비하여 철도산업의 상하분리가 적합지 않다. 열차가 운행되는 선로 위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개량사업(전철화, 복선화), 유지보수사업만은 운영부문과 통합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정부는 개량, 유지보수사업을 운영부문과 분리하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개량, 유지보수사업을 외주위탁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건비는 줄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철도노동자와 승객의 안전은 위험해진다. 지금도 매년 20~30명의 철도노동자들이 철도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셋째, 새로 발족하는 철도운영공사는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 법에 의하면, 사장은 대통령이, 이사는 주무장관에 의해 임면된다. 매년 철도운영공사는 기획예산처의 실적평가에 맞추기 위하여 수익경영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현행 공기업이 안고 있는 낙하산체제, 상업적 운영체제가 그대로 반복된다. 철도구조개혁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기간산업의 공공성이 강화되길 바랬던 사람들에겐 다시 좌절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철도민영화에 반대해 온 까닭은 철도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함이지 또 하나의 관료적, 상업적 공기업의 설립은 아니었다.
넷째, 지난 4월20일 정부와 철도노동조합은 “향후 철도개혁은 철도노조 등 이해당사자의 충분한 논의와 공청회 등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고, 이러한 절차를 거쳐 관련법안이 성안될 경우 조속한 시기에 국회 통과를 위해 철도노사가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정부연구기관과 토론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철도산업연구를 진행해 왔고, 공공철도 건설을 위한 법안 초안도 마련중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조합과 단 한번의 공식토론도 없이 법안을 급조하여 지난 3일 국회에 공개했다. 정부는 철도노동조합이 참가하지 않은 가운데 당일 형식적 공청회를 거친 후 총알같은 법안처리과정을 밟고 있다. 법안 제출 15일 이내에는 의사일정으로 상정할 수 없다는 국회법을 어기더니, 급기야 대체토론 없이는 법안심사소위로 넘길 수 없다는 국회법까지 어기면서 말이다. 지난 1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국회법 위반을 개탄하는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나는 정부가 왜 이토록 무리하게 법안을 일방 처리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보수언론의 공세에 주눅든 정부가 공연한 호기를 부리고 있다. 이 때문에 4월20일 노정합의를 파기 당한 철도노동조합은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하여 28일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철도구조개혁을 둘러싸고 사회갈등을 야기하는 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가 원했던 철도구조개혁이 고작 또 하나의 관료적, 상업적 공기업이었단 말인가
오건호/민주노총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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